2021년 부활절 메시지 마가복음 16장 1-8절 20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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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활절 메시지 마가복음 16장 1-8절 2021.4.42021-04-04T08:16: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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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부활절 메시지 막 16:1-8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있을 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구원을 받지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교회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에 이렇게 모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안식일이 지난 후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예수께 바르기 위해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 해가 뜨자 무덤으로 향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 듯 보면 ‘안식일이 지난 후’와 ‘안식일 다음 날’이 비슷한 것 같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유대인은 우리와 달리 하루의 시작이 일출이 아니라 일몰입니다. 즉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저녁이 되기 전까지를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이 지난 후’라는 것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라는 뜻입니다. 즉 토요일 저녁이 시작되었을 때를 가리킵니다. 반면에 ‘안식일 다음 날’은 토요일 다음 날인 일요일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그들이 토요일 해가 지자 향품을 준비했다가 다음 날 아침을 기다렸다가 무덤으로 향했다는 뜻입니다.
    여인들이 이렇게 향품을 준비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장례가 제대로 치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에 24시간 안에 시체를 매장하는데, 남자들이 시체를 무덤까지 운구하고 나면 여자들은 시체에 향유를 바르고 세마포를 쌉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시간이 오후 3시였고 안식일 시작은 오후 5시였으므로 그 안에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율법을 어기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해서 씻기만 하고 향품을 바르지 않고 곧바로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여인들은 이런 과정을 다 지켜보면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 않은 것을 알고서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향품을 사서 뜬눈으로 밤을 새다가 이른 새벽에 무덤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무덤까지 좇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들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적어도 직선거리로 120km나 됩니다. 도보로는 적어도 3일 이상이나 걸립니다. 더군다나 유대인은 저주로 죽은 시체는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예수께서는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운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이 끝까지 예수님을 좇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인들이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희생을 내포합니다. 희생하지 않는 사랑은 가짜입니다. 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진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짜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도 그분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 돌을 굴려 주리요.” 과거에는 유대인과 우리의 장례문화가 달랐습니다. 우리는 땅을 파서 매장했지만, 유대인들은 동굴의 안에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입구를 돌로 막았습니다. 마가는 그 돌이 ‘심히 컸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2미터-4미터 정도로 봅니다. 따라서 묘실로 들어가는 큰 돌을 옮기려면 남성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해보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무덤 앞에 있던 돌이 옮겨졌고 무덤의 문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아무 쓸데 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일을 종종 경험하지 않습니까? 미리 걱정했지만, 막상 당하고 보면 이미 해결된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여호와 이레’를 믿어야 합니다. 시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48:14). 여러분이 알고 있지만, 코로나19로 교회의 재정이 마이너스인 상태에서 선교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내서 계속 보내야 할지 아니면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일단 보류해야 할지를 두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전보다 오히려 더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무덤의 입구를 굳게 막은 돌문이 이미 열려 있듯이, 우리의 모든 걱정거리를 이미 해결해 놓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 내 길 예비하시니 참 감사합니다”를 찬양합시다.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시 5-6절을 읽습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그곳에서 뜻밖에도 흰옷을 입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누구일까요? 고대 유대 문헌에서 천사의 모습은 대개 미남의 젊은이로 묘사되고, 또 광채 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에 본문에 등장하는 흰옷을 입은 청년은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봅니다. 그들은 빈 무덤 안에 청년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청년은 더 놀랄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너희가 찾는 나사렛 예수는 살아났으니 더 이상 예수의 시신을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었던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보다 더 기쁜 소식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그분의 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것은 보통 영광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토록 기쁜 소식을 누가 가장 먼저 들었어야 합니까? 당연히 예수님과 3년 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제자들입니다. 특별히 수제자 베드로가 들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활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듣는 영광을 차지한 자는 제자들이 아니라 무명의 여인들이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은 남자의 재산 목록 1호로 여겨졌고, 사람의 숫자를 셀 때 여성은 헤아리지도 않았고, 공식 석상에서 발언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영광을 가장 먼저 제자가 아니라 무명의 여인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교회의 직분과 화려한 신앙경력을 보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희생하는지를 보고 평가하십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영광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말을 듣고 놀라자 흰옷을 입은 청년은 그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6절의 마지막 문장만 다시 읽습니다. “…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천사는 단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를 두었던 곳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즉 빈 무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신비에 속하므로 우리의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그런데 천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의 이성을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신앙은 신비하지만, 우리의 이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상식은 함께 하는 친구입니다. 믿음만 강조하고 상식을 무시하거나, 믿음은 가볍게 생각하고 상식을 앞세우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가 무엇입니까? ‘상식과 공정’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데 힘이 있고 자기 편인 사람에게는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는 불공정하므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상식도 신앙생활의 두 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면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미리 아셨고, 또한 곧바로 살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굳이 우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 앞에서 우셨을까요? 이별의 아픔을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육체의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천사가 나사렛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7절입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공관복음은 모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만나자고 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들을 베들레헴이나 나사렛이나 예루살렘에서 만나자 하시지 않고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갈릴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그들을 부르셨을 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어느덧 초심을 잃고 주님을 빙자하여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께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상황에서도 자리다툼이나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 같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며 도망갔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것은, 그들이 잃었던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더럽혀진 마음을 예수의 피로 씻고 조건 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이 유일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이 말을 하면서 덧붙인 말이 무엇입니까?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 말의 무슨 의미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14장 27-28절을 읽어야 합니다. 함께 읽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스가랴 13장 7절입니다. 여기서 ‘내가 목자를 치리니’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양들이 흩어지리라’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곁을 떠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후 갈릴리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스가랴의 예언을 인용하여 말씀하신 대로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따라서 천사가 제자들에게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라고 말한 것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고 구약 성경에 예언된 것이 성취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부터 예언되어 온 것이 성취된 것이고, 이미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약속이 이루어졌듯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재림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다른 행성을 개척하여 그곳으로 이주해야 한다며 ‘화성 이주론’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곧 주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흰옷을 입은 청년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8절을 다시 읽습니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서 놀라 떨었고 무덤에서 도망하였지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는 이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마태(28장 6-7절), 누가(24장 7-9절), 요한(20장 18절)은 그들이 부활하신 사실을 알자마자 즉시 이를 제자들에게 찾아가서 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마가는 다른 복음서와 전혀 다르게 여인들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을까요? 솔직히 저는 지금껏 수십 년 동안 부활절 설교를 했지만 이렇게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전혀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이를 다루면서 이것저것 찾아보았지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복음 전도는 부활 신앙을 가진 자라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여인들이 무덤을 찾은 것은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넣기 위해서였지 예수께서 부활하셨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즉 그들은 부활 신앙이 없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를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부활 신앙을 갖고 있는 데 복음을 전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의 비등점은 100도입니다. 아무리 가열해도 100도가 되기 전까지는 끓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어도 그 믿음이 충만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전도는 교회의 직분과 무관합니다. 그래서 평신도가 목사보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활 신앙이 충만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초대교회처럼 하면 됩니다.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 됩니다. 즉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전하도록 만든 ‘3분복음메시지’와 이를 가르치도록 만든 ‘1권1과’를 반복하면 믿음이 충만하게 되어 전도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화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미국 보스톤 교외에 ‘고든 코넬’ 신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럿셀 코넬’(Russell Conwell)입니다. 코넬은 남북 전쟁 시 북군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후퇴하다가 경황이 없어서 그만 자신의 지휘도를 갖고 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를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하 중에 링이라는 사람이 이를 눈치채고서 혼자 적진으로 들어가서 그 칼을 찾아오다가 그만 총에 맞아 쓰러졌습니다. 코넬 대령은 쓰러진 링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그렇게 하면 죽는 줄 몰랐느냐?” 링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당시 코넬은 무신론자였고 회의론자였습니다. 그런데 링의 부활 신앙에 그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링이 믿은 하나님을 위해서 제 몸을 바치겠습니다.” 그는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었고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서 세운 학교가 바로 코넬 신학교입니다. 나중에 고든이라는 사람이 세운 학교와 합치면서 현재는 ‘고든 코넬’(Gordon-Conwel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링의 부활 신앙이 코넬을 구원하고 변화시킨 것입니다. 부활 신앙만 갖지 말고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므로 말과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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