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송구영신예배 메시지 20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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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송구영신예배 메시지 202012.312020-12-31T21:13:3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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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송구영신예배 메시지 출 </b><b>3:1-12 </b><b>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b><b>2021</b><b>년을 맞이하다 </b><b>2020.12.31</b>

     

    방금 2020년을 보내며 회개의 시간을 가졌고, 이제 2021년을 맞이하면서 영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설교는 2021년 새해에 하는 첫 설교입니다. 새해 첫 설교를 어떤 본문으로 할지 고민하던 중 오늘 본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은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고 있었는데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다고 말씀합니다. <b>개역 개정에는 이렇게 </b><b>‘</b><b>광야 서편</b><b>’</b><b>으로 번역하고 있지만</b><b>, </b><b>표준새번역은 </b><b>‘</b><b>광야를 지나서</b><b>’</b><b>로 번역하고 있습니다</b><b>. </b><b>왜 모세가 광야를 지나서 호렙산까지 가게 되었을까요</b><b>? </b>그곳에 양에게 먹일 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양을 치던 곳에 풀이 많았다면 광야를 지나서 호렙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호렙산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시내산의 다른 이름입니다(신 9:8-9). 과거에는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곳으로 성지순례를 많이 갔습니다. 저도 십수 년 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시내산이 시나이 반도에 있지 않고, 아카바만 동쪽인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쪽에 위치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도착한 호렙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렙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른 것은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할 때 그렇게 한 것이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가 도착한 곳을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부른 것을 통해 모세가 도착했을 당시 그곳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호렙은 ‘건조한 땅’, ‘폐허’, ‘쓰레기’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곳도 황폐해서 양떼를 먹일 풀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만일 모세였다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도 허탈감에 빠져 극도로 실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학생에게는 시험에 붙을 줄 알았는데 낙방한 것과 같고, 직장인에게는 승진을 기대했지만 안 된 것과 같고, 사업하는 사람에게는 사업에 성공할 줄 알았는데 실패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b>그런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모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b><b>? </b>하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b>3</b><b>장 </b><b>2</b><b>절</b>을 보십시오. <b>“</b><b>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b><b>.” </b>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사자의 모습으로 모세에게 찾아오신 것을 뜻합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때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때임을 알고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b>사람이 찾아오는 때와 주님이 찾아오시는 때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b><b>.</b> 사람들은 출세하고 유명해질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권력을 쥐면 ‘문전성시’를 이루고, 권력과 재산을 잃으면 ‘문전작라’(門前雀羅)를 이루는 것입니다. <b>예수님을 보십시오</b><b>.</b>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고, 5병 2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등 기적을 행하실 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체포되어서 대제사장과 공회로 끌려가시자 수제자인 베드로마저도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떠났습니다. <b>베드로를 보십시오</b><b>.</b> 그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씻었다는 것은 고기를 잡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즉 고기를 잡는 데 실패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공했을 때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한 자리, 낙심하는 자리, 절망의 자리, 고독한 자리에서 만나주십니다.

     

    <b>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모세에게 어떻게 찾아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b><b>? 2-3</b><b>절을 </b>다시 한번 읽습니다. <b>“</b><b>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b><b>. </b><b>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b><b>”</b> 여호와의 사자가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그 나무가 타서 사라지지를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불꽃 안에서 모세에게 나타난 것은 그가 곧 <b>하나님이심을 뜻합니다</b><b>. </b><b>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는 종종 불을 동반하시기 때문입니다</b><b>. </b>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가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과 일대 전쟁을 합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하루 종일 “바알이여 바알이여!”하며 외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기도를 마치자 즉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주변에 있는 돌과 흙을 태워버렸습니다(왕상 18:38). 그러자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실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을 보면서 그들 가운데 임한 성령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갑자기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다든지, 가정에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난다든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는 단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서 왜 그런 일을 자신에게 허락하셨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b>모세는 불이 붙었지만 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갔습니다</b>. 그러자 <b>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b><b>? 5</b><b>절</b>을 다시 읽습니다. <b>“</b><b>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b><b>.”</b>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신 것을 그 뒤에 신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것과 연관시켜서 회개할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회개할 죄 때문이라고 하면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모세를 찾아오시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불꽃 가운데 나타난 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 다시 한번 여호와의 사자가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6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하나님을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6절).

    다른 하나는 <b>“</b><b>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b><b>.”</b> 하나님께서 왜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땅은 이 세상에 있지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입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신을 벗으라고 한 것입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즉 모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곳에 서 있기 때문에 그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실은 <b>룻기 </b><b>4</b><b>장 </b><b>7-8</b><b>절</b>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b>“</b><b>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b><b>”(</b><b>룻 </b><b>4:7-8). </b>보아스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려면 먼저 나오미의 가정에 책임과 의무를 가진 자가 이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그 의무를 이행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그는 보아스에게 그것을 사라고 하면서 신발을 벗어주었습니다.

    <b>그런데 당시 모세가 포기해야 할 권리가 있었을까요</b><b>?</b> 애굽에 있었을 때라면 몰라도 당시는 사람을 죽인 일이 탄로나 타지로 도망쳐서 양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포기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b>히브리서 </b><b>11</b><b>장 </b><b>24-25</b><b>절</b>을 보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b>“</b><b>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b><b>.”</b>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을 보고서 모세가 이렇게 했다고 기록했을까요? 성경은 모세가 하나님을 호렙산에서 만나기 전에는 그의 믿음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히브리서 기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라는 사명을 주셨을 때 그가 이를 받아들인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모세에게 그것까지 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아직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믿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오늘 내려놓아야 합니다.

    <b>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신 후 어떻게 하셨습니까</b><b>? 7-10</b><b>절</b>을 읽어보십시오. <b>“</b><b>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b><b>, </b><b>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b><b>, </b><b>헷 족속</b><b>, </b><b>아모리 족속</b><b>, </b><b>브리스 족속</b><b>, </b><b>히위 족속</b><b>, </b><b>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b><b>.” </b>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자신의 백성이 고통을 인하여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건져내어 젖과 땅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시는 일에 모세를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라는 사명을 주시면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9절과 10절에 있는 ‘이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라는 사명을 주시면서 ‘이제’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셨을까요? 그것은 지금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낼 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는 동안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러나 때가 차기까지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때가 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b>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기로 하셨을 때 하필이면 모세를 부르셨느냐는 것입니다</b><b>. </b>그것은 모세가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아무나 각 부처의 장관을 앉히지 않습니다. 그 부처의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합니다. 일반 기업에서도 적재적소에 맞게 인사를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해내는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시겠습니까? <b>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일에 모세를 가장 적임자라고 판단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b><b>?</b> 모세보다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세는 애굽에 있을 때 평소 자기 동족이 애굽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애굽인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 속에 묻어버렸습니다. 다른 히브리인은 동족이 애굽인에게 매 맞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매맞는 동족을 건져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만큼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b>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계 복음화에 사용하시는지 아십니까</b><b>?</b> 제가 거듭난 후 항상 기도한 것이 있습니다. 스테반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처럼 저도 그 길을 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와 관련하여 이카림 원장님에게 두 번이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한 번은 원장님이 정혜지 집사와 함께 홍콩에 갔을 때 <b>“</b><b>너의 사부를 바울 이후로 사용할 것이다</b><b>. </b><b>너에게 능력을 더 큰 능력을 부어 줄 테니 너는 나를 섬기듯이 그를 섬겨라</b><b>.”</b> 다른 한 번은 동신교회를 떠날 때 <b>“</b><b>이제 너희는 가라</b><b>, </b><b>힘들고 어려운 이 길을 갈 자는 안 목사밖에 없다</b><b>.”</b> 그리고 왜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만 붙여주셨는지 아십니까? 이 일에 가장 헌신적으로 협력할 자는 여러분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사역에 특별히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고 더욱 잘 감당하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b>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어떻게 했습니까</b><b>? </b>11절입니다. <b>“</b><b>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b><b>?”</b> 무슨 말입니까? 자신은 바로에게 가서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낼 만한 자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b>12</b><b>절입니다</b><b>. “</b><b>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b><b>.” </b>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b>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b><b>’</b>는 말씀은 그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할 수도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힘과 능력을 보지 말고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솔직히 우리가 소망과 기대를 갖고 새해를 맞이하지만 갑자기 좋지 않던 환경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새해가 작년보다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새긴다면 모세가 승리한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확신으로 새해를 출발할 뿐 아니라 그 확신으로 살아가므로 풍성히 열매를 맺는 2021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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