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추수감사절 메시지- 이것이 진정한 추수감사예배이다 살후 1장 3-4절 2017년 11월 12일

//2017년 추수감사절 메시지- 이것이 진정한 추수감사예배이다 살후 1장 3-4절 2017년 11월 12일
2017년 추수감사절 메시지- 이것이 진정한 추수감사예배이다 살후 1장 3-4절 2017년 11월 12일2018-12-03T23:35:5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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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한때 추수감사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는데 교회는 이에 큰 비중을 두고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추수감사절을 바른 감사를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최상의 감사가 있는가 하면 차선의 감사가 있습니다. 바른 감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최상의 감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금년 추수감사절 예배의 감사제목이 무엇입니까? 즉 무슨 감사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왔느냐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 예배는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제목으로 삼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정도에 따라 헌금액이 결정되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예배가 끝나면 언제 감사예배를 드렸느냐는 듯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를 원하실까요?
    본문을 보면 바울이 우리의 감사와 전혀 다른 감사를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감사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다시 본문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3-4).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환난과 박해 중에서도 믿음이 더욱 자라고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을 인함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감사 내용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우리의 감사와 그의 감사가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로 어떤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물질적인 축복이나 영적인 축복을 인해서입니다. 즉 주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개척한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고 서로 사랑한 것을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즉 그가 하나님께 드린 감사는 타자 중심적인 감사였습니다.
    한동안 한국교회에 ‘평생감사’라는 책이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약 4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였습니다. 저자가 친필 사인을 해서 주었기 때문에 한 번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감사를 네 파트 즉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어서 감사를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몇을 소개하겠습니다. ‘제로 감사’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없고, 없고, 또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했습니다. ‘가시 감사’입니다. 바울은 육체에 가시가 있는 상황에서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3차원감사’입니다. 일차원감사는 조건부 감사로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면 감사하는 것이고, 이차원감사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리는 감사이고, 삼차원감사는 불행하고 힘들어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벼랑끝감사’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조서가 발표된 상황에서도 감사했습니다. ‘4중주감사’는 네가지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있는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실패 속에서도 감사하고, 셋째는 슬픔의 자리에서도 감사하고, 넷째는 십자가를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책은 감사를 모두 다룬 책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책에 없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드린 감사입니다.
    전에는 그가 이것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수감사절 예배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모든 감사를 다루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책에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의 믿음과 삶을 인하여 바울이 감사한 것이 나오지 않았을까?” 여러분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왜 평생감사에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인하여 감사한 것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조금만 생각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바울처럼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은 자가 없을 뿐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의 믿음이 자라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전해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한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자들이 있었고 또한 그들의 삶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지난주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 어느 한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카톡을 여러분에게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전도하는데 꽤나 자신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자꾸 의식하고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런데 삼분복음 메시지를 미친 듯이 하고 거리에 나서니까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3분복음으로 5명이나 영접시켰습니다. 주일오후예배 보충시간과 수요예배 때는 전도간증 시간을 갖고 전도현장에서 복음 전했던 것을 나누고 간증한 분들에게는 선물을 하나씩 주고 있습니다. 전도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쉽다, 된다, 할 수 있다”고 계속 외치고 있습니다. 안 목사님을 만난 게 제게는 축복입니다. 삼분복음 정말 대단합니다. 전도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기도가 부족해서 문제입니다. 기도시간을 늘려서 매일 네 시간 기도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왜 저에게 보낸 카톡을 여러분에게도 보냈을까요? 우리로 말미암아 중견목회자가 은혜를 받고 복음전도자가 된 것을 인하여 너무 감사했고, 여러분과 함께 그런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번 추수감사절을 새로운 감사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었지만 우리가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드려보지 못했던 감사를 드리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물질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감사에서, 영적이고 타자중심적인 감사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한 형제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내용을 바꾸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190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에 쌍둥이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부모의 죽음으로 그들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열 살이 채 안되었지만 동생에 대한 형의 사랑은 마치 부모와 같았습니다. 형은 찬밥 한 덩어리라도 얻으면 동생을 먼저 먹였고, 헌 옷이라도 얻으면 좀 나은 옷을 동생에게 입혔습니다. 밤이 되면 울며 엄마를 찾는 동생을 끌어안고 잠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가장이 짊어지기에는 너무 버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였습니다. 형은 우연한 기회에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상황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항상 즐겁고 기뻤습니다. 동생도 주일이 되면 형의 손을 붙잡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사춘기를 맞이하더니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며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릴 사랑한다고? 왜 우릴 이렇게 고아로 만들었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면 왜 우리를 이렇게 가난하게 하셨어?” 동생이 교회를 멀리하더니 결국 질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거침없이 죄를 짓고, 끝도 없는 타락의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형이 아무리 사정해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형이 하나님께 기도할 것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안타까움이 더해갈수록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정이 넘도록 동생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형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하며 동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집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다름 아닌 동생이었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형은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음을 눈치를 채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생은 “형, 이제 나 어떡하지? 나 이제 어떡하지?” 하는 말만하고 더 이상 말을 잊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형은 “괜찮아 말해. 무슨 일이야!” 그러자 동생이 부들부들 떨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내가 사람을 죽였어.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형은 잠시 잃었던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해야겠기에 동생에게 피 묻은 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피를 걸레로 닦고, 동생을 벽장 속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얼른 동생의 피 묻은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곧이어 사람들의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곧바로 서너 명의 경찰이 문을 박차며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걷어차며 “네 옷에 피가 묻은 것을 보니 네가 사람을 죽인 게 틀림없어, 네가 죽였지?” 라고 말했습니다.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궜습니다. 그러자 경찰들은 곧바로 수갑을 채우고 그를 끌고 경찰서로 연행했습니다.
    동생이 워낙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에 범인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수사부터 모든 과정이 신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형은 수사관의 취조에 자신이 죄를 범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재판을 받아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수감되어졌습니다. 사형 집행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는 교도소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장님,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곧 죽을 사형수의 부탁을 좀 더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교도소장은 “한번 말해 보게. 들어본 뒤에 결정하겠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쓴 편지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해주시고, 제가 죽고 나면 곧바로 이 봉투에 적힌 주소로 꼭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그러자 교도소장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이윽고 사형이 집행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도소장은 약속대로 그가 남긴 편지를 부하 직원에게 봉투에 적힌 주소로 전달하도록 보냈습니다. 부하 직원이 그 주소로 찾아가 보니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폐허가 된 흉가였습니다. 대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발길로 차고 큰 소리로 불러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포기하고 그냥 돌아서려고 하는데, 웬 남자가 다 부서진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몰골은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긴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창백했습니다. 귀신같은 형상으로 다가오자, 겁에 질린 부하 직원은 편지를 마당에 던져버리고 줄행랑을 쳤습니다. 동생이 봉투를 보니 낯익은 필체였습니다. 동생은 집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봉투를 뜯어 편지를 펼쳐 보았습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에게/ 사랑하는 동생아, 나는 너의 죄의 옷을 입고 너를 대신하여 죽는다.”
    그는 처음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때에 형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생은 “형, 안 돼! 형이 나 때문에 죽으면 안 돼. 그럴 수 없어. 그러면 안 돼!” 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문을 박차고 형이 수감되었던 교도소를 찾아갔습니다. 교도소 문 앞에서 형의 이름을 미친 듯 불렀습니다. 그러자 경비를 서던 자가 그가 부르는 이름이 얼마 전에 사형당한 죄수의 이름인 것을 알고서는 교도소장에게 보고했습니다. 교도소장은 그를 앉혀 놓고는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편지를 보낸 자가 자신의 형인데 그는 결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사실 그 죄는 모두 자신이 지은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형이 집행이 된 마당에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 문제가 매우 복잡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그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집에 와서 “형, 이제 어떻게 해? 형을 다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해”라고 소리 지르며 울던 중, 문득 형이 평소 하나님을 잘 믿었기 때문에 분명 형이 천국에 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형이 믿고 사랑하던 하나님, 저는 지옥에 떨어져야 할 흉악한 놈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형을 꼭 한번만이라도 만나게 해 주세요. 형이 평소 저에게 예수께서 저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을 믿사오니 저를 구원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났더니 너무 기뻤습니다. 지금껏 그런 기쁨은 맛본 적이 없었습니다.이제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갑자기 지난번에 읽다가 그만 둔 형의 편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잔뜩 구겨진 그 편지를 다시 펴서 읽었습니다. 형이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습니다.
    “동생아, 이제부터 넌 나의 옷을 입고 나처럼 살아다오.”
    그는 곧바로 자신의 모든 물건을 마당에 모아 놓고서는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형의 옷을 입고 형이 하던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이 되면 형의 옷을 입고 형이 다니던 교회로 갔습니다. 형이 평소 앉던 자리에 앉아 형처럼 찬양하고 기도하고 봉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낡은 형의 옷을 입고서 형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변화되었다는 소문이 나자 이전에 어울려 지내던 불량배들이 찾아 와서 이전 삶으로 돌아갈 것을 유혹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단칼에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옷의 주인은 그렇게 살지 않았어. 이제 난 이 옷의 주인처럼 살아갈 거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감사절예배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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