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부활절 메시지(부활을 가져온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주의 사명을 감당하세요) 삼하 23:4절 2017.4.16

//2017년 부활절 메시지(부활을 가져온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주의 사명을 감당하세요) 삼하 23:4절 2017.4.16
2017년 부활절 메시지(부활을 가져온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주의 사명을 감당하세요) 삼하 23:4절 2017.4.162018-12-03T23:24:5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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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박차시고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세상이 아주 조용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죽어서 국장을 치르던 중 갑자기 관을 뚫고 살아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는데 왜 세상이 이토록 조용하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2,000년 이상 시간적으로 갭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눈에서 멀어진 만큼 무감각해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영어 속담 중에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와 여러분은 2,000년 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이렇게 기억하고 기뻐하고 찬양하고 있을까요? 그 일이 비록 2,000년 전에 일어났을지라도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주기 위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두려움과 죄와 각종 고통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2,00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도 지금 일어난 사건과 동일하게 기쁘고 감격이 넘치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의부활을 기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고 변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신 것을 영원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초대교회시대나, 중세시대나, 근대시대나, 현대시대와 상관없이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문제를 해결받는 것보다 더 크고, 시급하고, 위대하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혹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자신과 별 상관없이 느껴지는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자신의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하기 위한 것임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 즉 복음을 들으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도 지난주와 동일하게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새싹’을 소재로 부활절 메시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혹 지난주에 제가 ‘D3제주선교센터’에서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새싹과 관련하여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렸는지 생각나십니까? 그것은 ‘생명은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생명은 강합니다. 그러기에 눈에 보일까 말까하는 씨앗일지라도 자라면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므로 그로 말미암아 건물이 붕괴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새싹’의 생명보다 더 강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생명력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예수님을 누가 다시 살리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는 로마서 10장 9절에 기인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데 신약성경을 보면 특별히 공관복음, 즉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기자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다고 말하지 않고, 예수께서 스스로 살아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 28:6; 막 16:6; 요 20:9).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게 하신 주체가 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체를 예수님이라고 말할 때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완전히 죽으셨던 예수께서 스스로 다시 살아나실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일시적으로 기절하신 것이 아니라 로마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즉시 물과 피를 흘리신 것을 보고서 예수께서 진짜 죽으신 것을 확인한 것처럼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스스로 살아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삼위일체론으로 설명했습니다. 삼위일체적 신론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께서 스스로 살아나셨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론으로만 예수께서 스스로 살아나실 수 있었다고 말한다면, 장차 우리의 부활에 대해서 다른 한쪽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스스로 살아나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부활하실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수는 있었어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죽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는 있었어도,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은 죽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성경이 말씀하신 때가 이르자,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박차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던 것입니다(마 28:6).
    예수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갖고 계셨기에 다시 스스로 살아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육신적으로는 죽을지라도 마지막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새싹 안에 생명이 있기에 단단한 콘크리트를 뚫고 나올 수 있었듯이,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있었기에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화장을 해서 수목장으로 땅에 묻히고 강물에 던져져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단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만 기뻐하고 찬양하지 말고, 과연 우리 안에 죽은 후 스스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주 간단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살다가 마지막 날 부활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는지를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지금껏 우리는 장차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만 믿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부활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분당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구약성경 사무엘하 23장 4절을 읽다가 저의 눈에 들어온 단어가 있었습니다. 사무엘하 23장 4절을 한 번 읽겠습니다.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여기서 저의 눈에 들어온 단어는 ‘새풀’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냥 ‘새풀’이 아니라 ‘땅에서 움이 돋는 새풀’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땅에서 움이 돋는 새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저는 연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당시 저의 교회 이름이 ‘분당엘림교회’였는데, 비록 지금은 연역하지만 장차 주의 능력으로 큰 교회로 성장시키겠다는 의도로 ‘새풀교회’로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이름을 개명하고 나서 여러 가지 해프닝이 빚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에 뭔가를 문의하려고 전화를 걸어 “거기 수풀교회죠?”라고 했고, 또 어느 날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교회 앞을 지나가면서 “왜 ‘딱풀교회’라고 하지 않고 ‘새풀교회’라고 했지” 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교회이름을 ‘큰사랑교회’로 바꾸었습니다. 아마도 단 기간에 교회 이름을 이처럼 자주 바꾼 교회는 지구촌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던 중 과거 분당에서 개척했던 교회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금년도 부활절 메시지를 준비하게 된 동기가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새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본문을 영어성경으로 읽으면서 ‘땅에서 움이 돋는 새풀’(as the tender grass springing out of the earth)” 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움이 돋는’이라는 단어가 ‘springing’이었습니다. ‘springing’의 ‘동사형은 ‘spring’입니다. ‘spring’은 명사로는 ‘봄’ 또는 ‘용수철’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동사로는 ‘갑자기 되다. 뛰다, 휙 움직이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움이 돋는’이 ‘springing’으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어떻게 부활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한 순간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스프링은 눌렸다가 손을 떼는 순간 원 위치로 돌아가듯이, 예수께서 한순간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때는 한 순간에 이뤄집니다. 예수께서 공생애 중 죽은 자를 세 명이나 살리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눅 7:11-17),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눅 8:40~56),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요 11:1-16).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을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죽은 자들을 한 순간에 살리셨습니다. 죽은 자들을 향하여 ‘일어나라’고 명령하는 순간 즉시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부활이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엄청난 파워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죽음을 이기고 나올 만큼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 어떤 것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엄청나기 때문에 그 죽음을 처음으로 이기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망이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토록 엄청난 파워를 주셨을까요? 단지 마지막 날에 한 순간에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이런 넘치는 생명력으로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이것을 깨닫고,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극복하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을 달려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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