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송구영신예배 메시지 왕하 2:19-22절 2016.12.31

//2016년 송구영신예배 메시지 왕하 2:19-22절 2016.12.31
2016년 송구영신예배 메시지 왕하 2:19-22절 2016.12.312018-12-03T23:18:2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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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약속의 말씀을 뽑는 것이 기복사상에 기초했기 때문에, 혹자는 초대교회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혹자는 세계에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번이라도 더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통로는 하나가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성경을 읽을 때에 말씀하기도 하시고, 기도를 드릴 때에 말씀하기도 하시고, 은사를 받은 자를 통하여 말씀하기도 하시고, 상담을 통하여 말씀하기도 하시고, 사건을 통하여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또 송구영신예배 시 말씀 뽑기를 통해서도 말씀하기도 하십니다. 또한 비록 초대교회가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첫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새해 첫 시간에 송구영신예배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아주 잘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어떤 성에서 일어난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성은 여리고 성입니다. 역사가들은 여리고성이 지금부터 8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살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도시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런 도시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19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여리고에는 샘들이 있어서 종려나무가 많이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종려의 성읍’으로도 불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곳의 샘의 수질이 좋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판에는 ‘물이 나빠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표준 새 번역이나 영어 성경은 ‘그곳에서는 물이 좋지 않아서 사람들이 아이를 유산한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땅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땅은 어머니와 같습니다. 채소와 곡식이 자라는 모판입니다. 그런데 수질이 좋지 않아 그런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땅으로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성읍의 위치가 좋은데 물이 나쁘기 때문에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내과 의사가 인격은 좋고 얼굴은 미남형으로 잘 생겼는데 수술을 잘하지 못해 죽을 사람을 살려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인격이 훌륭하고 돈이 많고 세상에서 지위가 높을지라도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는 마치 여리고성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2017년을 맞이하면서 자신이 마치 여리고성과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깊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려나무가 자라서 ‘종려의 성읍’(신 34:3)으로 불릴 정도로 수질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여리고성이 왜 아이를 유산할 정도로 수질이 나쁜 도시로 전락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6장 26절을 통해서 그 이유를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 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 주위를 6일 동안 한 바퀴씩 돌다가 마지막 날에는 7바퀴를 돌았더니 무너졌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무너진 성을 누군가가 건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을 다시 건축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는데, 이를 어기고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다가 두 아들을 모두 잃었습니다(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성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습니다/왕상 16:34). 저는 아마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저주하실 때에 함께 여리고 성의 수질도 나쁘게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든 여리고성은 좋은 위치에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도시가 만들어졌지만 수질이 좋지 않아 불행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여리고 사람들은 수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쁜 수질로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쁜 수질이 좋은 수질로 바뀌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기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열왕기하 2장 19절을 읽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그 성읍의 사람들이 수질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수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사 선자자를 찾아갔던 ‘그 성읍 사람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성읍 사람들’은 여리고 성 사람들을 뜻합니다. 방금 전에 여리고 성은 세계적인 고대 도시 중의 하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래 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변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질이 나빠서 아이를 유산하고 수목이 열매를 맺지 못했어도 “물이 나쁜 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이와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자 해결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엘리사를 찾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여리고성의 수질문제는 해결받지 못했을 것이고 저주가운데 살아갔을 것입니다. 내주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가 출간됩니다. 그런데 이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제가 항상 고민한 것이 있었습니다. “왜 같은 주님을 믿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파워풀하게 신앙생활을 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고 만들어낸 것이 ‘D3왕의사역’이라는 전도중심적 제자훈련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다녔던 또 다른 의문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훈련교재 없이 제자를 훈련시키셨는데, 어떻게 하면 교재 없이 평신도 사역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것을 궁리하고 기도하던 중 성령께서 초대교회가 성도들을 훈련한 방법대로 평신도들을 훈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입니다.

    누구나 새해가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새해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새해가 온다고 우리가 안고 있었던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기도할 때에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생각을 바꾸는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할 방도를 찾는 자에게 길이 여리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새해가 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새해를 맞이하지 말고 지금까지 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면 해결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체념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도전해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인생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패의 현장이 성공의 현장으로 바뀝니다.

    엘리사가 여리고 성읍 사람들이 가지고 온 수질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왕하 2장 20-21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엘리사는 자신을 찾아온 여리고 성읍 사람들로부터 수질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더니 소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그것을 샘의 근원에 던져서 수질문제를 해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리사가 수질문제를 해결한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을 통해서 수질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엘리사는 수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소금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주로 소금이 ‘언약’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예를들어, 레위기 2장 13절에서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했으며, 민수기 18장 19절에서는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혹자는 엘리사가 소금을 던져서 수질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해석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저는 엘리사가 소금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에 그들이 곧바로 가져왔다는 데에 좀 더 무게를 두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바로 소금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엘리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금을 곧바로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여리고와 사해가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즉 엘리사는 소금을 가지고 오라고 할 때에 그들이 사해로 가서 즉시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가져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해결해야 합니다. 2017년 고질적인 문제가 기도와 말씀으로 해결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소금을 ‘새 그릇’에 담아오라고 했습니다. 왜 엘리사가 소금을 아무 그릇에나 가져오라고 하지 않고 ‘새 그릇’에 담아오라고 했을까요? 새 것은 뭔가 새 일을 기대하게 합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뭔가 새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아갈 때에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모든 일을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셋째로, 엘리사는 ‘물 근원’으로 가서 소금을 던졌습니다. 엘리사는 사람들에게 소금을 받아서 아무 곳에나 던지지 않았습니다. 물 근원으로 가서 던졌습니다. 그가 소금을 물 근원으로 가서 던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는 근원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지만 먼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죄 문제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를 해결 받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문제가 생겼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아무리 복잡하게 보일지라도 회개하면 다 해결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유일한 키입니다.
    넷째로, 엘리사는 소금을 던지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이 이 물을 고치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수질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기도하고 말씀을 사용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각종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2017년 새해를 맞이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안고 왔지만 금년에는 해결하기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엘리사가 수질문제를 해결한 대로 따르면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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