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의 고난이여, 굿바이 이사야 40: 27-31 20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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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의 고난이여, 굿바이 이사야 40: 27-31 2012. 12.302018-12-03T20:19:3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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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금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해가 바뀌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이하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게 됩니다. 혹 해결해야 할 문제 때문에 걱정하거나 염려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으로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이 되어 새해를 소망으로 맞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비신자처럼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신자나 불신자나 다 같이 어려운 일을 만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비신자는 자기의 힘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가지만 신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할합니다.. 어떻게 하면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답게 기쁨과 소망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고난이 축복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대처할 수 있듯이 고난도 왜 당하는지를 알면 쉽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이유는 크게 둘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십니다(벧전 1:7).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하여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 두 아들 가운데 열 한 번째였습니다. 야곱은 노년에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을 통하여 요셉을 낳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식들에게는 입히지 않은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시기 하고 미워했습니다. 더군다나 요셉이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고 그 이야기를 형들에게 하자 더욱 더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양을 치고 있는 형들이 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며 그를 세겜으로 보냈습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평소 요셉을 미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 넘겼습니다. 그리고 상인들은 그를 애굽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아 넘겨서 그 집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자 보디발은 그를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남편이 없으면 늘 성적으로 유혹을 해왔습니다. 순간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 영광을 누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단호히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모함하여 그를 감옥에 던져지게 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13년간 고통을 당한 것은 쓸데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기 위한 축복의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그 과정을 통하여 원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행정력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만일 그런 연단을 받지 않았다면 당대 최고의 강대국인 애굽의 총리는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당한 고난은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욥은 엄청난 시험을 당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잃었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부자였던 욥이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하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가 그렇게 고난을 순금이 되어 나오는 제련의 과정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처절한 고난을 넉넉히 이기고 그의 모년에 배나 더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축복으로 믿으면 어떤 고난도 견뎌낼 수 있고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국가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를 대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매 맞는 것을 ‘징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징계를 하실까요?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5-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혹 잘못해서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고난을 당할지라도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면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 고통을 쉽게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고통을 당하였지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고난 당하고 있을지라도 그 고난의 배후에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지면 우리는 얼마든지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어떠한 경우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사 40:27)고 한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이렇게 한탄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열심히 부르짖어 간구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 하나님께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회의를 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단지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부모와 어린 자녀 사이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모가 해주지 않거나 매를 들면 혹 부모님이 진짜 자기의 부모님일까 의심하기도 합니다. 제 딸이 네 살 때 고집이 너무 세니까 제 아내가 매를 댈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내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엄마 내보내고 우리 둘이서 살자.”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사 40:27) 한탄하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8-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지만 항상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좋으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유다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 비록 유다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해서 죄 값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평안을 주고 소망을 주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결국은 좋은 것으로 만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도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애굽 상인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창 50:20)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모든 악과 고난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다윗도 그토록 수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4:8)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제로 앞뒤가 꽁꽁 막혀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결국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으면 새해를 소망가운데 맞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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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로, 오직 하나님만을 앙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피곤함 속에 살고 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장년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30절은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인물들도 모두 피곤한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하느라 지쳤던지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라고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광야로 피신하다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위대한 믿음의 용장들도 피곤에 지쳐서 낙심한 적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야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상황을 이길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여호와를 앙망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3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깊은 고난의 웅덩이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화 속에서나 이야기하던 달나라에 여행을 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2015년부터는 약 8,120억 원만 있으면 1박 2일간 달나라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점점 어떻게 변해가고 있습니까? 살기는 더욱 더 좋아지는데 우울증을 비롯해서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가고 있고 자살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헬라어로 ‘안드로포스’로 하나님께 뿌리를 박고 사는 존재라는 뜻인데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나 그리스도인이나 주일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주일에 주로 무엇을 합니까? 전날 저녁 늦게까지 회식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주일에는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잡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른 시간부터 교회에 나와 늦은 시간까지 예배를 드리고 말씀훈련을 받고 찬양을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월요일 누가 피곤을 더 느끼는 줄 아십니까? 주일에 이른 시간부터 늦은 시간까지 주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아니라 주일에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잔 사람입니다. 왜 그럴까요? 비신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했기 때문입니다.

      혹 독수리가 날개 치며 하늘을 나는 것을 보셨습니까? 독수리가 평소에는 다른 새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일단 폭풍이 몰아치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새들은 비바람이 몰아치면 다 처마 밑에 몸을 숨기지만 독수리는 날개를 쳐서 폭풍우를 뚫고 높은 하늘을 향해서 올라갑니다. 독수리의 날개가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날개를 한번 휘저으면 순식간에 창공을 박차고 올라갑니다. 다른 새들은 독수리가 하늘을 비행하는 것을 보고서 도대체 저런 힘이 어디서 나와서 저렇게 하늘을 날 수 있올까 감탄하며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병든 병아리처럼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면 자신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27장에서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죄수들을 태우고 로마로 향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서 파선하게 되어 배에 탄 사람들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성경은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27:20).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뭐라고 외쳤는지 아십니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2-25). 어떻게 바울이 배안에 탄 모든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에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었습니까? 그가 항상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주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가끔 비행기를 타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비행기를 타면 종종 어떻게 많은 사람과 짐을 싣고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뜨는 원리가 있습니다. 처음 이륙할 때에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이 때에 연료의 반 이상을 그때에 쓴다고 합니다. 그 에너지의 힘으로 일단 비행기가 하늘로 비상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비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앙망하면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어려워도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소망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2013년 새해를 소망 없이 맞이하면 안 됩니다. 고난이 축복의 통로와 사랑의 징표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고,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므로 소망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이 축복이 우리 동신교회 성도님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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