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꿈꾼다 요 19:25-27 2011.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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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꿈꾼다 요 19:25-27 2011. 12. 42018-11-27T18:30:5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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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 주에 ‘평신도,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평신도는 말씀사역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목회의 동역자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따라서 동신교회는 평신도가 목회의 중심에 서서 사역하는 평신도사역형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가 나가야 할 또 다른 기둥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노인복지신앙생활 공동체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오늘 봉독해 드린 요한복음 19장 25-27절을 읽다가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본문을 읽어서 아시겠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곁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러 사람가운데 특별히 마리아와 요한에게만 각각 한 마디씩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고,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때부터 요한이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하여 그의 집에 모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요한복음을 수 없이 읽었지만 예수께서 요한에게 ‘네 어머니다’ 라고 하셨을 때에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한 말씀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본문을 읽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동생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시지 않고 요한에게 하셨을까?” 우리가 신약성경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님에게는 남동생이 네 명 즉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있었고, 여동생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여동생이 여러 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 13:55).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자신의 동생들에게 잘 모시라고 하셨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지 않고 육신의 동생이 아닌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왜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마리아를 자기 동생들에게 잘 모시라고 부탁하지 않고 요한에게 맡기셨을까”하고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요한이 마리아를 그의 집에 모신 것은 교회에서 그녀를 섬겼다는 것이다. 교회는 어려운 어른들을 잘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저는 이것을 깨닫고 노년기 성도님들을 교회에서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인복지 신앙생활 공동체 운영이라는 목회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독교 초기시대에는 개인의 집이 곧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순절 성령이 임하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노인들을 잘 섬겨야 할 뿐만 아니라 노인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그분들의 노후를 책임져야 합니다.

      저는 오늘 왜 노년기 성도들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왜 노인복지신앙생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성경이 노인들을 공경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레위기 19장 32절은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센머리란 나이가 많이 들어 머리털이 희어지게 된 것을 말하고,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는 것은 경의를 표하라는 말입니다. 즉 노인을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공경해야 할까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노인을 공경하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명령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노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이 어떠합니까? 대부분의 노인들은 소외당하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노인들이 서야 할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가정에서도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고, 교회에서 조차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무관심의 대상은 그나마 괜찮은 것입니다. 아예 골치 아픈 천덕꾸러기로 전락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세상을 역류해서 올라가야 합니다. 나이가 드신 분을 공경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노년기 성도들을 마땅히 공경해야 합니다.

      2) 노인들은 ‘소중한 가족으로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시고 계실 때였습니다. 마리아와 동생들이 예수님께 뭔가 말을 하려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은 육신적인 가족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가족관계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자매가 되고 한 가족이 됩니다. 노인들도 교회의 한 지체로서 가족의 구성원입니다. 따라서 육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돕고 협력하듯이 영적인 가족끼리 서로 소중히 여기고 서로 돕고 협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노년기 성도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족 중에서도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더 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집안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온가족이 아이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잘 보호해 주지 않으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갓난아이는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갓난아이만 보호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가 되기 때문에 노년기 성도들도 우리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년기 성도님에게 더욱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갓난아이에 대하여는 온갖 사랑과 관심을 쏟지만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을 나몰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할 대상 중에 노인들을 포함시켜야 합니다. 갓난아이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듯이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도 쏟아야 합니다. 성경은 60세가 넘은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딤전 5:3)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60세가 넘은 참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소외되고 약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60세가 넘은 과부뿐 아니라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은 모두가 약자입니다. 왜냐하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약자를 누르고 짓밟고 무시하지만 교회는 그들을 주의 사랑으로 더욱 더 돌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노인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가족임을 새롭게 인식하시는 동신의 가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노인들은 매우 귀중한 보배이시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월스트리트 저널은 나이가 들수록 뇌 기능 일부가 향상된다는 신경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신경과학자들은 나이가 들면 뇌도 함께 늙긴 하지만 뇌기능의 노쇠현상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을 뿐더러 일부 기능은 오랜 세월 쌓인 경험 덕분에 오히려 나아진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게 향상되는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라고 합니다. 즉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젊은이들보다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리노이대의 ‘아서 크래머’ 교수 연구팀은 60대와 30대 항공관제사들을 비교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로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긴박하고 복잡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오히려 젊은 항공관제사들보다 나이가 든 항공관제사들이 더 업무수행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노년기 성도들을 단지 나이가 드셨다고 모든 일에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들이 잘 하실 수 있는 것들을 더욱 더 잘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솔로몬이 죽고 나자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르호보암에게 나아가 한 가지 요청을 했습니다(왕상 12장). “왕의 부친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그러자 르호보암은 삼일 후에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서는 솔로몬 생전에 왕을 모셨던 노인들과 자신과 함께 자라난 젊은이들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그룹의 의견이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노인들은 백성들의 말을 받아들이라고 권했고, 젊은이들은 백성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 멍에를 무겁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양쪽으로부터 의견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젊은이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노인들의 말은 경시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두 나라로 즉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르호보암왕이 경륜이 풍부한 노인들의 말을 들었다면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만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됩니다. 인생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노인들은 잘 섬기면 우리도 노인이 되었을 때에 또한 잘 섬김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노년기 성도들을 도와드려야 할까요?

      1)숙식 문제와 거동을 도와야 합니다. 노인이 되었어도 잘 돌봐드리는 가족이 있는 분에게는 숙식이나 거동이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돌봐 줄 가족이 없는 분에게 숙식문제와 거동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또 자식들이 있어도 함께 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거나 치매와 같은 병에 걸리면 온 식구가 고통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부모님이 질병으로 긴 세월 살아가신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노년기 성도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운영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 말 벗이 되어 노후를 즐겁게 지낼 수 있습니다. 또한 영양사가 준비한 식단에 따라 정한 시간에 식사를 하기 때문에 훨씬 건강에 유익합니다. 또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노인이 되면 어디서나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에 들어오시면 존귀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섬기는 분들이 노인들을 부모처럼 사랑으로 섬겨드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지법인으로 허락을 받게 되면 운영자금등의 보조를 받게 되고 우리 성도들이 노인들을 섬기면서도 생활비를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모시고 있는 성도들도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부모님들도 노후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이렇게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라고 확신합니다.

      2)정신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드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노인복지에서 주로 관심을 가진 분야는 경제와 건강입니다. 왜냐하면 건강과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관심의 방향이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즉 단순히 먹고 사는 기본적인 삶에서 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Butler는 노년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인생을 살면서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싶은 심리가 강해지며, 어떤 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으며, 어린아이와 같이 모든 일과 사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고, 무엇이든지 알고 싶어하고 참여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나는 때이다” 노인이 되면 잔소리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육체적인 욕구만 만족시키면 노후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최근의 한 연구 발표에서도 현재의 노인들 중 경제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를 원하는 노인들은 전체 노인 인구 중 1/4에 불과하고, 나머지 3/4의 노인들은 여가선용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즉 진정한 노인복지를 구현하기위해서는 단지 육체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욕구를 포함한 제반 욕구까지 채워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노인들의 가장 큰 욕구인 정신적인 필요와 영적인 필요를 채워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말씀훈련을 받아 말씀으로 사역을 하면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연세가 많아도 제자훈련을 받아 비신자를 만나 전도하고 제자 삼는 삶을 살면 보람찬 인생을 사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운영하는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해야 합니다. 제가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 운영의 비전을 어떻게 갖게 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요한복음 19장 27-29절입니다. 그리고 딤전 5장 3절(60세가 넘은 참 과부를 책임지라)입니다. 즉 우리 교회의 비전은 단순히 우리의 소망이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기초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수기 23장 19절)고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꿈꾸는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운영하게 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없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부자이십니다. 전능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께서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2) 이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 통로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여 기도할때마다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사람을 보내주시고 후원자를 붙여주셔서 우리의 꿈을 이루어주십니다. 성경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7-11)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3) 물질의 복을 받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건물을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는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으로 봐서는 전자의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1층을 모두 주차장으로 만들어 옥상에 증축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됩니다. 초대교회는 어려운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을 받거나 출교를 당해서 오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성도들 가운데 집을 팔아 교회에 헌금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신가족 가운데 주님의 귀한 사역에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물질의 복을 받은 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물질의 복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릭 워렌 목사가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3천 만부가 팔려서 인세만 수백 억 원을 벌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였듯이, 저도 그렇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신 사람은 요한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파송한 무리들에 의해 체포되자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는 끝까지 주님 곁에 남아있었던 자였습니다(마 26:56). 주님께서는 바로 그 제자에게 자기의 어머니 마리아를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소중한 일을 맡기시지 않고 사랑하시는 자에게만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신교회에 이런 일을 맡기신 것은 주님께서 우리교회와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동신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노인신앙생활공동체를 운영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우리 성도들의 노후가 행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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