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무엇을 하는 시간인가? 삼하 7:27-29 2011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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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무엇을 하는 시간인가? 삼하 7:27-29 2011년 11월 13일2018-11-27T18:33: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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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여러 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우리 주보에도 보면 묵도로 시작해서 자그마치 16개의 순서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순서 중에서 어느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혹 헌금 내는 순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솔직히 말해 이런 분이 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혹 폐회송을 부르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분은 예배를 지겹게 생각하는 분이라 그런 분은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설교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시작하는 시간에 좀 늦어도 설교를 듣는 시간만큼은 늦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목사들도 예배 순서 중 설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교 작성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저도 주일낮예배 설교를 20-25분 정도 하지만 이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많은 시간을 쏟아 붓습니다. 월요일부터 준비를 시작해서 금요일까지는 어느 정도 설교 원고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수차례 교정하여 완성한 후 원고를 보지 않고 설교할 정도가 될 때가지 계속해서 암송을 합니다. 그래서 설교 한편을 여러분에게 전달하기까지는 적어도 10여 시간 이상이 소요됩니다. 제가 왜 20-25분 내외의 짧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까요? 그것은 제가 설교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설교가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에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설교 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설교시간은 괴팍한 철학자나 저명한 석학의 강의를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또한 연구 결과에 대한 발표를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더 더욱 설교자 개인의 의견이나 경험담을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목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왜 목사를 그렇게 부를까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키시기 위하여 주의 종을 세우셨을까요? 많은 일이 있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기에 지금 서 있는 것은 제 말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목사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할까요?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씀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말씀’이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건 믿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외모는 형편이 없었습니다. 키는 160cm정도 밖에 안 되었고, 걸음도 팔자로 걷고, 성격도 다혈질이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로 바나바와 심하게 다투고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기도해서 다른 사람들의 병은 고쳐주었지만, 자신의 질병은 고치지 못해 사람들의 시험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글은 잘 썼지만 말은 잘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무조건 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선포되는 말씀이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대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설교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제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사울 왕이 자신이 쫓아내었던 무당에게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사울 왕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꿈으로도 우림과 둠밈으로도 말씀을 주시지 않자 불안하고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반대학에 다닐 때에 전도해서 저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 동생뻘 되는 000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행정고시에 붙어 체신부 사무관을 거쳐 32살에 한국통신 영업부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선교를 하기 위해 한의사가 되겠다며 사표를 쓰고 직장을 그만 두었습니다. 제가 극구 말렸지만 결국 그는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늦은 나이였지만 한의대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여 한의원을 개업했습니다. 그런데 진찰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자 환자가 줄을 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명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맥이 잡히지 않더랍니다. 그러자 자신감을 잃고 6개월간 방황을 하였고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맥이 잡히기 시작해서 다시 명의로 소문이 났지만 3년 전에 폐암으로 하늘나라에 입성을 했습니다. 육적인 생명을 다루는 한의사도 맥을 잡지 못하면 심적으로 고통이 큰데, 하물며 영적인 생명을 다루는 목사가 전해야 말씀을 받지 못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제가 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달할 수 있도록 부족한 종을 위해 늘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설교시간은 마음과 육체의 병을 치료받고 각종 문제를 해결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마음과 육신의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구조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주 주님께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앉아있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다 환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료받지 않아도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새벽예배, 수요예배, 주일저녁예배, 금요기도회 등 각종 예배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은 자주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말씀을 들어 죄 용서를 받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고 각종문제를 해결 받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특별히 이렇게 주일날 모든 일을 제쳐놓고 전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루 동안 교회에 입원해서 정기적인 검진을 받고 치료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까? 약을 먹고 고칠 수 있는 병을 그냥 두었다가 방치했다가 결국 불치병이 되어 죽음을 자초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께 자주 나와서 빨리 해결받아야 할 문제들을 그냥 방치해 두었다가 큰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는 자주 주님께 나아와 그때그때마다 마음의 시험과 상처를 치유 받고 각종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가 날선 검입니다. 얼마나 날선 지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히 4:12)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마치 수술 칼로 환부를 도려내듯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의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은밀하게 짓고 있는 죄를 단호하게 잘라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끊지 못했던 술과 담배를 끊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말씀을 듣다가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멍하니 앉아 있지 말고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을 듣는 동안 영육간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침 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설교 시간은 주님의 위로를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모두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위로를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위로가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위로를 받을 때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누구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즉 주님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시는지 아십니까? 어떤 경우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읽는 중 위로를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시 119:50)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또 우리가 기도 중이나 환상 중에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바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자들이 훼방이 너무 심해 깊은 두려움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의 종의 설교를 통하여 자기백성들을 위로해주기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설교는 단지 성도들의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거나 바르게 살라고만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낙심하고 절망한 성도들을 위로해야 할 기능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위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설교를 통하여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간 세상에서 고생하다가 교회에 와서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위로를 받지 못한다면 무슨 힘으로 힘들고 어려운 세상살이를 넉넉히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비록 힘들고 어려워도 설교를 통하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의 아픔을 안다. 내가 너를 이해한다.”는 주의 음성을 들으면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강단을 통하여 위로해주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살맛나는 인생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마지막으로 설교시간은 응답이 보장된 ‘기도제목’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사실 제가 오늘 이 설교를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사무엘하 7장 18-29절을 읽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은 다윗이 나단을 통하여 장차 그의 왕의 자리가 영원하게 되리라는 약속을 듣고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여 기도한 것입니다. 그가 기도한 내용 가운데 가장 은혜가 되는 구절은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입니다. 이 귀절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웬만한 사업장이나 집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을까요? 우리 한번 사무엘하 7장 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다윗이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주의 종인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와 같이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에 기도해서 응답 받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기도의 제목을 삼을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들이 가만히 있어도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때에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자신에게 와 닿은 말씀을 헬라어로 ‘레마’라고 하는데 이 레마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할 때에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하게 말씀하십니다. 기도를 통하여, 환상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또는 직접 음성을 들려주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대통령이 특별히 담화를 발표할 때가 있지만 주로 대변인을 통하여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하여 자신에게 어떤 말씀을 하실 것인가 집중하여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듣자 그 약속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기도의 응답대로 그의 혈통을 따라 메시야가 오심으로 그의 집이 영원히 견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 시간은 100% 응답이 보장된 기도제목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사 55:10-11).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열매를 맺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 그 기도는 100%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자기의 신념이나 소원을 붙잡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설교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육간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특별히 응답이 보장된 기도의 제목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설교시간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설교시간의 귀중함을 알고 주의 종을 통하여 들려지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큰 은혜를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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