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창35^1-7 2013.9.8

//환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창35^1-7 2013.9.8
환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창35^1-7 2013.9.82018-12-03T20:39:24+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환난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어요 창35^1-7 2013.9.8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사람은 누구나 환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환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환난을 맞이해야 할까요?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오늘 환난 속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권을 가로챈 일로 형 에서를 피해 밧단 아람으로 도망가서 살았습니다. 그가 밧단 아람에서 20년간 사는 동안 낮에는 더위와 싸우고 밤에는 추위와 싸우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밧단 아람에서 풍찬노숙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셔서 큰 재물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외삼촌 라반의 안색이 달라지고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아버지의 재산을 훔쳤기 때문이라고 악소문을 퍼뜨려서 마음의 큰 상처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31:3)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아내에게 자신의 뜻을 말하자 그들도 선뜻 따라나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형 에서와의 문제였습니다. 장자권 문제로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형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하나임이라는 곳에 이르자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에서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의 마음이 어떤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자신을 치러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뼛속까지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먼저 자기 가족을 네 떼로 나누고 자신은 맨 나중에 섭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잠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들을 먼저 건너가게 하고 얍복 나루터에서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밤을 새워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형 에서가 자신을 해하는 자가 아니라, 돕는 자로 변해 있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그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서의 인도로 세겜이라는 곳에 이르자 짐을 풀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인들을 보러 나갔다가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추장 세겜에게 욕을 당한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 밖에 없는 딸이 이방인에게 강간 당했을 때에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잡고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오기까지 참았습니다. 아들들이 들에서 돌아오자, 마침 추장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야곱의 아들들에게 찾아와 자기 아들이 디나를 사랑하니 그를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을 공격할 의도로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아내로 주겠다고 하여 그들로 하여금 모두 할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고 고통이 극도에 달할 즈음에 야곱의 아들 중에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가지고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하물과 그의 아들 세겜을 비롯하여 그 땅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양과 소와 나귀와 모든 재물을 빼앗고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일로 그 지역 사람들 특별히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일대 전쟁을 치뤄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과 그들과의 전쟁은 힘으로나 숫자적으로나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야곱의 가족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34:30).

       그러나 우리도 야곱처럼 생각지 않게 인생의 환난을 당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27: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의 환난이 나의 환난이 될 수 있고 나의 환난이 다른 사람의 환난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환난을 당할 때에 쉽게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 말에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의 말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항부로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입을 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야곱의 가정에 갑자기 이런 환난이 불어닥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밧단 아름으로 갑니다. 그런데 가다가 밤이 되어 루수라는 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됩니다.그리고 꿈속에서 야곱은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찌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28:13,1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잠이 깨어 하나님을 만난 그곳의 이름을 루스에서 벧엘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함께 창세기 2820-22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이 하나님께서 서원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세 가지를 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했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하나님을 만난 벧엘로 돌아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주시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첫째로,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약속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면 오직 여호와만을 하나님만으로 섬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고대 근동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신의 이름 중 하나인데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무사히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집 사람들에게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35:2)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지 않고 이방신도 섬겼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서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 신도 섬겼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만나면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잘 섬기겠으니 이번 문제만 잘 해결해주세요.”. 주일성수도 하고 십일조도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잘 하겠습니다그러나 문제를 해결 받으면 그 약속을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서원한 것을 쉽게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약속한 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여호수아처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는 결단해야 합니다. 혹 생각지 않은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혹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른 것에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두 번째로, 벧엘에 단을 쌓고 그곳이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 약속은 벧엘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믿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 약속을 파기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벧엘로 곧바로 가서 단을 쌓지 않고 세겜에 머물며 그곳에 단을 쌓았습니다(33: 18-20). 세겜에서 벧엘까지는 약 50km입니다. 자동차로는 한 시간 이내로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쉬어가도 하루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왜 야곱은 세겜에 단을 쌓고 곧바로 벧엘로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처 자식과 많은 가축들을 이끌고 벧엘까지 가는 것에 대해 야곱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벧엘까지 가는 것이 편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자기가 편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과 약속한 것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야곱처럼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과 이런저런 약속을 하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립니다. 굳이 교회로 가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앉아 TV를 보면서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에 모여 정한 시간에 함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주님의 뜻대로 해야지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환난 당한 것은 그가 단을 쌓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약속한 장소에서 드리지 않았기 때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과의 약속을 잊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언제 어떻게 환난을 당할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서 반드시 십분의 일을 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야곱이 고향에 돌아와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다는 말이 없습니다. 왜 그가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서원을 했지만 안 드렸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십일조를 안 드려도 당장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가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형과 화해하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각종 예물을 준비해서 전달을 했습니다. 암염소와 암양 각각 이백, 숫염소, 숫양, 암나귀 각각 이십,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 암소 사십, 황소 열, 나귀새끼 열입니다(32:14-15). 오늘 날로 환산하면 수억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약속한 십분의 일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을까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형이 더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아도 당장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직 물질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재물을 어떻게 벌었습니까? 20년간 땀 흘리고 애써서 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물질의 주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수고하면 반드시 물질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게 하시지 않으면 하나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큰 부자는 하늘에서 낸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올 때에 빈손으로 왔고 오늘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을 다 놔두고 가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질의 주인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십일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아직도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낸다고 구원을 받고 내지 않는다고 구원을 못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는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으면 십일조는 드릴 수 없습니다. 본인이 믿음이 있는 지 없는 지를 간단히 점검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쁨으로 드리면 믿음이 있는 것이고, 억지로 드리면 믿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예 안 드리면 전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 삶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려면 십일조의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에 대해서는 시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주님께 마음을 드릴 수 없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물질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인정하고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느 분의 십일조 관련 신앙간증을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내 월급은 약 300만원, 세금 떼고 나면 대략 2,270,000원을 받는다. 그런데 난 십일조랍시며 매달 20만원씩을 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일조는 당연히 드리는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면서 생색을 내거나 자랑을 하지않았다. 그러나 나도 이제는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은 가지고 살았다. 하지만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라는 책을 읽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제대로 계산하기 위해 십일조만 담당하는 직원 40명을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계산하기 귀찮다는 핑계로 매달 20만원씩만 내었다. 사실 제대로 따지자면 20만원보다 더 내야한다. 그러나 십일조를 온전히 내면 차는 언제 사고, 집은 언제 사고, 이거라도 내는 게 어디야라며 안일한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냈었다. 우리 형은 내가 십일조를 내는 것을 보면서 십일조는 그렇게 자동이체로 내는 게 아니야 그리고 세금 안 띤 돈에서 정확히 십분의 일을 내는 거다.”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난 25-26만 원을 내야한다. 속으로 아까웠다. 그리고 앞으로 돈을 더 잘 벌면 세금 안 뗀 월급에서 1/10을 내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귀엽게 생각하실까? 아니면 십일조도 아닌 십일조를 내면서 뿌듯해 하는 나를 훗날에 야단치실까? 아마 후자일 것 같다.” 여러분 중에도 이 성도처럼 십일조 문제로 고민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의무임을 알고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이 십일조를 드린다고 반드시 물질적인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십일조를 드려도 여전히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러분이 소득이 얼마든 상관없이 십일조를 드리면 믿음이 자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특별히 환난 날에 지켜주시고,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에 돕는 자를 붙여주십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은 서원을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이 어떻게 합니까? 그는 먼저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2-3)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뜻하지 않게 환난을 당한 것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난에는 하나님의 숨은 비밀이 있습니다. 환난은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 길을 바르게 가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회초리입니다. 만일 야곱에게 자기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나안 땅에 돌아왔어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지 않고 살아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전혀 예기치 못한 환난이 닥쳤을 때에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야곱처럼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즉 세겜 신앙을 버리고 벧엘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하고 있는 환난 앞에서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원망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현재 당하는 환난은 빨리 해결되지 않습니다. 환난 앞에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 앞에 그동안 올바로 살지 못한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환난 중이라도 회개하면 탈출구가 보입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야 합니다. 환난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만남으로 전화위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