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깨어 있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눅12장 35-40 2017.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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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 있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눅12장 35-40 2017.2.122018-12-03T23:21: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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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주인과 종’, ‘왕과 백성’, ‘신랑과 신부’ 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본문은 ‘주인과 종’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과 우리의 관계를 주인과 종의 관계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인과 종의 관계로 말씀하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항상’ 깨어 있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군에 다녀온 사람은 ‘깨어 있으라’는 말이 얼마나 힘든지를 압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5사단 27연대에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제가 복무했던 사단이 최전방에서 철책 경계를 맡았지만 저는 연대본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철책에서 경계근무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대본부 내 경계보초는 항상 섰기 때문에 ‘깨어 있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밤 12시 전에 경계근무를 서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벽 2-3시 경에 보초를 서면 졸음이 마구 몰려오기 때문에 굉장히 힘듭니다. 그래서 그 시간대에는 경계근무자들이 선 채로 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더군다나 군부대가 산 속에 있기 때문에 깊은 밤에 들짐승 소리가 들릴 때는 다소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비가 장대비처럼 오는데 제 앞에서 갑자기 큰 구렁이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잡으려다가 둘레가 제 허리보다 더 굵게 보였고, 길이가 제법 길었기 때문에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경계근무를 서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고작 한두 시간에 불과합니다. 그 시간만 참으면 숙소로 돌아와 6시 기상 전까지는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시간 경계근무를 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항상 깨어 있을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방금 살펴보았지만 우리와 하나님과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 주인과 종, 하나님의 백성, 신랑과 신부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립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주님의 신부입니까? 그리스도의 종입니까? 당연히 우리는 이 네 가지 관계를 인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종은 주인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종은 주인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땅에 묻는 자입니다. 자신의 뜻은 죽이고 오직 주인의 뜻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입니다. 종은 오직 주의 뜻을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주인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 생각하여 권리만 주장하고,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인식하지 않아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에는 관심을 쏟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열악한 환경가운데서도 4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주님의 종으로 인식하고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낸 서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 항상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어떤 자가 복 있는 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37-38절입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본문은 주인이 와서 종들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에 제자들은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주인이 올 때까지 종이 깨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지극히 당연한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한 것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종이 주인이 올 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잠을 자는 자들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오실 때에 영적으로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깨어 있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깨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단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즉 마음으로 주인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께 가까이 하는 것이 복입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니고 복 있는 자가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께 있습니까? 아니면 가정과 사업장과 직장과 학교에 있습니까?
    그러면 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일까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후면 사라지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은 다 사라지기 때문에 진짜가 아니라 가짜입니다. 따라서 세상에서 자리가 높아지거나, 몸이 건강하거나, 소원하던 일이 이뤄지거나, 물질이 많아지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진짜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난을 변장된 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을 진짜 복임을 깨달아야 깨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지 않는 것은 아직도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부귀와 영광을 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사랑하므로 늘 깨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35-36절과 39-40절을 읽겠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35-36).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39-40절).
    본문은 한마디로 주인이 언제 집에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종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낮에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결혼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해가 진 후에야 결혼식을 합니다. 요즘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전통에 따라 밤 8~9시경이 되어야 결혼식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끝나면 우리처럼 식사나 하고 마치지 않고 축하잔치가 벌어지는데, 노래와 춤과 더불어서 새벽까지 이어집니다. 38절에 이경이나 삼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새벽 3~4시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새벽 늦게까지 있다가 오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따라서 당시 종들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문을 열어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종이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35절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아무리 늦어도 잠잘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줄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주인이 언제인지 돌아올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를 안다면 그 때만 깨어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과 때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런데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기에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종말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오시지 않았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 않은 때에 홀연히 오십니다. ‘홀연히’의 사전적 의미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갑작스럽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좀 풍성해졌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위가 좀 높아졌다고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 더 깨어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항상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주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37절을 읽겠습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와서 종이 깨어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을 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띠를 띠고 종에게 수종을 든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대충 수종을 드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수종을 든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역할을 바꿔서 종의 자리로 내려오시고 우리를 주인의 자리에 앉히시겠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이렇게 하실까요?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고 싶어도 하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구원자가 아니라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깨어 있는 자는 장차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상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항상 깨어 있는 자는 마지막 날 우리가 상상치 못할 상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정말 믿는다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는 자에게는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마지막 최고의 상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설교를 마무리 하고나자 갑자기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깨어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 순간 제가 깨어 있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곧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왜 깨어 있어야 할까요? 곧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40절). 주님께서 생각지 않은 때에 다시 오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깨어 있음으로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수종드시는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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