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십니다. 창1:1-5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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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분이십니다. 창1:1-5 2013.10.132018-12-03T20:53:5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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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2013년도 후반기에 하나님께서 교회와 여러분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연초에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전반기에도 우리 교회에 크고 작은 새 일을 행하셨지만 후반기에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금번에 아주 특별한 7주연속 금요성령집회를 기획한 것은 바로 여기에 대한 믿음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기대를 가지려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오늘 증거 되는 말씀을 들으시고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대하시고 새 일을 경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1절에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존재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지만 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존재를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물질세계와 영적세계는 서로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세계에서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데는 시각이 87%, 청각이 7%, 촉각이 3%, 후각이 2%, 미각이 1%의 영향을 미칩니다. 즉 물질세계에서 어떤 대상을 인식하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각 즉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면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세계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기 때문에 먼저 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영적세계에서는 어떻게 대상을 인식할 수 있을까요? 믿는 것입니다. 즉 보려고 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지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그가 묻힌 무덤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무덤의 입구가 돌로 막혀있자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마르다가 주님, 죽은지가 나흘이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썩었기 때문에 그를 살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11:40). 여기서 영광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독사라고 하는데 하나님의 가시적인 현존이라는 뜻입니다. 즉 믿으면 하나님께서 현재적으로 존재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정말 경험하고 싶다면 이성적인 판단과 생각을 접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신지에 대하여는 종종 의심하는 분들은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면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으므로 믿음이 자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믿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는 건물은 곧 무너지듯이,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은 온전히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는 똑똑하고 의심하지 않고 믿는 사람은 무식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의심하고 믿는 자보다 의심하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20: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3:1). 가장 큰 복을 받는 사람은 의시하지 않고 믿는 자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복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빛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의 상태를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가운데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자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복으로 바꾸실 수도 있고 실패한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헨델의 메시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듣습니다. 그런데 헨델의 메시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십니까? 헨델은 중세 후기에 독일에서 출생했지만 영국으로 歸化하여 왕실 음악가로 귀족들과 상류사회 사람들에게 위대한 음악가로서 존경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낮추시자 인생후반에 중풍을 맞았고, 시력도 극도로 약해져서 나중에는 작품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극장 경영에 실패해서 빚쟁이들에게 쫓기다가 사기죄로 고발당하여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고통 중에 그가 성경을 읽다가 그의 눈이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메시아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특별히 이사야 535-6절 말씀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이 깨어졌습니다. 그가 과거의 혼돈의 삶을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하자 그의 마음에 한줄기 영감의 빛이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그 영감으로 마비된 상태에서 작곡한 곡이 바로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중에서 2부 할렐루야는 너무 감동적이어서 당시 연주장에 왔던 국왕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서 끝날 때까지 경청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종종 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때에 할렐루야부분이 나오면 일어나서 듣는 것은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둔 상황에서 빛을 만드셨듯이 실패한 인생을 얼마든지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혹 이러저런 일로 실패한 인생을 걷고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서 빛을 만드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의지하고 붙잡는다면 실패에서 성공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둔 인생을 빛된 인생으로만 바꾸시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이 어둔 세상을 빛으로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빛과 같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빛으로 어둔 세상을 밝히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우리의 진짜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므로 삶의 구석구석마다 숨어있는 어두움을 몰아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2-14). 한 동안 한국전력공사에서 TV 광고를 할 때에 세상에 빛을, 이웃에게 사랑을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력이 정말 세상에 빛을 주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둔 밤길은 밝혀줄 수 있어도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은 밝혀줄 수 없습니다.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줄 자는 우리 그리스도인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빛을 이웃에게 사랑을이라는 문구는 우리가 외쳐야할 구호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의 빛입니다. 따라서 죄악으로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항상 새 것을 만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을 창조하실 때에 그 어떤 재료를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새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항상 새 것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43:18-19, 참조, 이사야 6517).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항상 새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새것을 원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새로움이 필요하십니까? 그렇다면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주님이외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새 일 가운데 최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타락한 인간을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거듭난 영적생명은 육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최고로 새로운 일은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십니까?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것처럼 죄인을 향하여 너는 의인이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면 됩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새 사람을 만드십니까? 우리의 족보를 바꾸어주심으로 만드십니다. 우리 모두는 첫 사람 아담의 족보 안에 있습니다. 이 족보 안에 있으면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이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옮기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담의 족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바꿀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으면 됩니다.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우리의 족보가 바뀌게 될까요?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순간 우리의 죄가 완전히 해결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드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온전히 믿지 않으면 족보가 바뀌지 않고 족보가 바뀌지 않으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새 사람이 되시고 싶다면 오늘 예수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족보를 바꾸셔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삶이 따분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 만났다 하더라도 첫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새사람이 되지 않은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만 드리지 마시고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족보가 바뀌고 죄인이 의인이 되고 새 사람이 되는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시자 빛이 만들어졌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셨는데 다른 것이 만들어지지 않고 말씀하신 대로 빛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도저히 이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그들의 나이 각각 75, 65세에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나이 99, 사라의 나이 89세까지도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자 약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의 나이 100, 사라의 나이 9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대 강대국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에게 자기 백성을 구원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 일을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가 36년간 일제의 억압을 받다가 1945815일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강대국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될 수 있었습니까? 겉으로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므로 해방이 된 것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한국교회의 안이숙 여사를 비롯하여 박관준 장로와 그의 아들 박창영 선생을 제74회 일본제국회의가 열리던 회의장에 들여보내셔서 신사참배강요에 항의하게 하시고 일본제국은 회개하고 폭정을 철회하라.그렇지 않으면 유황불로 패망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실 때가 가까이 다가오자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나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옆구리를 창에 찔려 피를 다 쏟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만 다시 살아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일이 지나고 나서 예수께서 묻히신 무덤에 가서 시신을 찾으려고 하자 천사가 나타나서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28:6)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23:1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말씀하신 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삶의 초점을 주님의 재림에 맞춰야 합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고 그분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로, 하나님께서는 저녁이 지나야 아침이 오게 하십니다. 우리가 6일간의 창조기사를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1:5).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 합니까? 아침에서 시작하여 저녁으로 끝을 냅니다. 즉 떠오르는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지는 태양으로 하루를 계산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인들은 하루를 밤에서 시작하여 아침으로 끝을 맺습니다. 왜 히브리인들은 우리와 다르게 하루의 시작과 마지막을 우리와 정반대로 할까요? 그들은 고난을 통과한 자만이 영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순서도 십자가가 먼저이고 부활이 나중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8:17-18)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많은 환란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저녁이 지나야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별의 별일들을 다 경험합니다. 그러나 저녁이 지나가야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안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23-25절은 천국에는 밤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은 이 세상에서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고난이 아무리 크고 무거워도 잠시 잠깐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어려움이 있어도 곧 지나가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아침이 예비 되어 있음을 알고 믿음의 길을 굳게 걸어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여움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30:4-5)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어둠을 빛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항상 새 것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녁이 지나야 아침이 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심을 들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의 실패한 인생을 성공적인 인생으로 바꾸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까? 저녁 인생을 아침 인생으로 바꾸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라고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갖고 아주특별한 7주연속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하여 에바다의 역사를 맛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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