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인간경영 삿6장 11-24절 2012.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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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간경영 삿6장 11-24절 2012.6.172018-12-03T19:21: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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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다윗, 바울 등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이 세상에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는 시험을 치루거나 스카웃을 해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을 직원으로 뽑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그들 중에 세상적인 자격 기준을 갖추어서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장남이 아니라 11번째 였습니다. 당시는 장자를 최고로 우대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11번째인 요셉이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애굽의 왕족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에 팔려온 노예였고 옥에 갇혀 있는 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는 나일강가에 버려진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되었지만 애굽에서 사람을 죽여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도망가서 양을 치던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이새의 7번째 아들로서 양을 치던 목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직접 선택하신 제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보았듯이 거의 갈릴리 바닷가 출신의 어부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학식과 인격을 갖추지 못한 촌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자들을 택하셔서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공부는 많이 했어도 그 역시 주님의 사도가 될 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셔서 가장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지도자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기드온입니다. 우리는 기드온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호텔에 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방마다 비치되어있는 작은 신약성경을 볼 수 있는데 그 성경책을 보급하는 단체의 이름이 ‘기드온성서협회’입니다. 왜 성경을 보급하는 단체에 ‘기드온’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기드온은 사사로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그가 사사로 쓰임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이 살던 시대에 이스라엘은 좀 독특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백성 중에 거하며 살다가 유사시에는 백성들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나라를 통치하던 사람을 가리켜 ‘사사’라고 하는데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약 200년 동안은 사사가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기드온은 바로 이스라엘나라의 5대째 사사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에 사사가 될 수 없는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겁이 많아 소심했을 뿐만 아니라 평소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만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사사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기드온이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 시대에 우리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축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보시고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것입니다(11-12).

    우리가 본문을 읽어서 알고 있지만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고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11절). 그가 그렇게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한 이유는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와 빼앗아 갈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기드온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 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뭐라고 말하였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2절) 겁쟁이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겁쟁이를 큰 용사라고 하셨을까요? 혹 하나님께서 실수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겁쟁이’를 ‘큰 용사’라고 하신 것은 ‘지금’의 그만 보시지 않고 ‘미래’의 그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현재의 모습만 보고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현재보다는 미래의 모습을 보고 사용하십니다. 기드온이 지금은 미디안 족속을 겁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는 졸장부이지만 장차 큰 용사가 될 것을 미리 내다 보시고 그에게 ‘큰 용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은 볼품없고 전혀 기대할 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현재의 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보기에는 속만 썩이고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장차 어떻게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말에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성경적인 말이 아닙니다. 물론 어려서부터 남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만 일으키고, 장애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위대한 인물이 된 경우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영상을 통하여 본 ‘오프라 윈프리’도 그런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아홉 살 때에 19살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하고 미혼모였습니다. 마약과 술과 담배로 폐인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전설적인 재즈 보컬 빌리 홀리데이도, 스티븐 잡스도 사생아였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강영욱 박사는 중학교 때 시력을 잃자 자실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인 차관보까지 오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지금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 위대한 목사, 위대한 과학자, 세계적인 사업가, 세계적인 음악가가 나올 수 있음을 믿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세상적인 기준에 비추어 볼 때에 부족한 자들을 들어서 사용하실까요?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왜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과 약한 것들과 천하고 멸시 받고 없는 것들을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치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고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족함과 무능함을 인하여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 때문에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므로 주님께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통하여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그것을 믿지 않자 하나님께서 또 다시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16절)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반드시 그와 함께 하신다고 두 번이나 약속을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담대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자신감이나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주께서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사도 바울이 고백한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는 말씀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이었습니다. 부목사 시절은 없는 것이 많은 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시간과 돈입니다. 그래서 운전면허 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하지 못하고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필기 시험에만 세 번을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1종을 2종으로 바꾸어서 시험을 봐서 겨우 76점으로 필기시험에 합격을 했습니다.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기 시험도 세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살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960번이나 자동차 면허시험에 도전해서 합격한 차사순 할머니는 대단한 할머니입니다. 제가 4번째 실기 시험을 치루는 날이었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을 암송하며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눈을 뜨자 사람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 하지 않고 저의 순서가 되어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출발을 해서 가다가 언덕을 넘는 코스에서 그만 차가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감독관이 빨리 달려오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언덕에서 3단을 넣으면 어떻게 합니까?” 저는 출발을 몇 단으로 해야 하고 언덕을 넘을 때는 몇 단으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운전 시험 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후 차를 끌고서는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시간 안에만 코스를 통과하면 되는데 그 사람이 그 시간 안에 차를 끌고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저에게 일어난 것은 바로 저의 운전면허 시험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나에게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구절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모두 사명을 주신 다음에 하셨습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서 제자 삼으라”고 명령하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순종하는 개인이나 기업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신다”(신 4: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전도와 기도에 힘쓰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존귀하게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의심하는 자를 설득하셔서 사용하십니다.

    본문을 읽어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하자, 오히려 기드온은 “주님이 함께 하시면 왜 우리가 미디안 족속에게 이렇게 핍박을 받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라고 하면서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고기와 무교전병을 만들어서 반석위에 두고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대로 지팡이 끝을 대자 반석에서 불이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라버렸습니다. 이로써 기드온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다른 증거를 요구하였습니다. 자신이 미디안족속과 싸워서 자기의 손으로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은 마르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요구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로써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이슬이 양털에는 없고 사방에 있게 해달라고 하자 그것도 들어주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믿을 때까지 우리를 설득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마구잡이로 사용하시지 않고 설득하신 후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렇게 하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말씀 한 마디로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끝까지 우리를 설득하시는 주님의 성품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비신자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상대방이 거절하면 ‘싫으면 관둬’라고 쉽게 포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중도에 포기하면 열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금번에 많은 사람들을 D3행복축제에 초청했습니다. 행사 당일 한 번 초청한 것으로 그치면 안 됩니다. 끝까지 그들을 설득해서 교회에 등록을 시키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설득하셔서 우리를 마침내 그분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그분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에 거절하는 자들을 잘 설득시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히딩크 감독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당시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 최진철 등 무명 선수들을 발굴하여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유능한 스타만을 모아 경기에서 우승하는 감독은 대단한 감독이 아닙니다. 스타가 아닌 평범한 선수를 모아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감독이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감독이시기 때문에 무능한 저와 여러분을 유명한 스타가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는 부족하고 약해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설득시키셔서 우리를 존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고 영원히 빛나는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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