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곳입니다. 눅13장 18-21절. 2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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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곳입니다. 눅13장 18-21절. 2017.4.22018-12-03T23:24:0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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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겨자씨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누룩비유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이 두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18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시기 위해서 두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만큼 천국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천국’과 같은 개념으로 사용했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당’입니다. ‘천당’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늘 위에 있다는 신의 전당’,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인 정토’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천당’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천국’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천당’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당’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습니까? 사후에 들어가는 특정한 장소라는 의미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사후의 개념만을 갖고 있지 않고 현세적인 개념도 갖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나라가 현세적인 개념을 갖고 있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국가의 3대 요소가 있습니다. ‘영토,’ ‘국민’, ‘주권’입니다. 그런데 과거 왕정시대에는 ‘주권’ 대신 ‘왕권이 국가의 3대 요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왕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후의 개념보다는 현세적인 개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마태복음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천국’이라는 단어만 나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나라’는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만 나오고 마태복음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하늘나라’ 즉 ‘천국’이라는 단어만 등장할까요? 그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라는 이름 자체를 부르기를 상당히 꺼려해서 ‘하나님’ 대신에 ‘하늘’이라는 단어를 대체해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복음서 모두 단순히 ‘천국’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사복음서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죽은 후에 들어가는 특정한 장소로 이해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에 이 세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 즉 겨자씨와 누룩을 예로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현세적인 개념으로만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후에 들어가는 곳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어디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요한복음 14장 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또 베드로후서 3장 13절입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느 한쪽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은 후에 들어가는 곳일 뿐 아니라, 현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는 삶을 살다가 천국에 입성하여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겨자씨 비유를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3장 18-19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혹시 겨자씨를 본 적 있습니까?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겨자씨는 눈에 잘 안 보일 정도로 작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들 가운데 가장 작은 씨가 겨자씨입니다. 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겨자씨를 보고 사온 적이 있는데 정말 작습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겨자씨의 직경은 1미리라고 합니다. 너무 작아서 90세 먹은 할머니가 숨을 내쉬어도 날라 갈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겨자씨가 자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평균 1.5 미터까지 자라고 어떤 것은 3미터까지 자라서 나무가 되고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를 안식처로 삼습니다. 왜 그럴까요? 겨자씨가 작지만 나무로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가 되는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겨자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나라의 시작은 너무도 작고 보잘 것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결국에는 나무가 되어 지치고 상한 영혼들이 참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될 정도로 확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는 자라가야 합니다. 어디까지요? 다른 사람이 와서 거할 수 있는 나무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자라가고 있습니까? 성장이 멈춰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와서 거하고 있습니까? 만일 성장이 멈춰있다면 그 이유를 제거하므로 다시 자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19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여기서 겨자씨가 그냥 길가에 심겨진 겨자씨가 아니라 채전에 심겨진 겨자씨인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채전이 무엇입니까? 채소밭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의도를 갖고 겨자씨를 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의 씨를 심으신 것은 생각 없이 하신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갖고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의도를 갖고 심으셨을까요? 자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쉼과 안식을 주는 자로 성장하도록 심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 안에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성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다음은 누룩 비유입니다. 20-21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누룩의 성질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전부 부풀게 한 누룩’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일정한 지역이 아닙니다. 많은 지역도 아닙니다. 온 땅으로 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천국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온 땅에 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예수와 열두 제자로부터 시작된 복음이 온 세계에 퍼져서 현재 75억 인구 중 약 22억 명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나라도 약 122년 전,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작은 복음의 씨앗이 6만 교회와 천만 성도들로 성장했습니다. D3사역도 처음 시작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해외에 나가 목회자세미나를 인도하고 크루세이드를 했고 그것을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어떻습니까? 매달 두 번씩 해외에 나가서 목회자 세미나와 크루세이드를 인도하고, 각 나라 언어(영어, 따갈로그어, 중국어, 베트남어, 뱅갈어, 러시아)로 D3훈련교재를 번역해서 출간하고 있고, 선교비를 매달 백만 원 이상을 보내고, 제주에 선교센터를 준비해서 한 달에 한 번 해외 목회자들을 제주에 초청해서 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척교회인 경우는 돈을 받지 않고 각종 집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마치 누룩이 번지듯이 우리의 사역이 파죽지세로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사역이 점점 온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것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넣은 누룩이 전부 부풀게 했듯이, 이미 시작된 사역을 통하여 점점 온 땅으로 번지게 될 것입니다.

    두 가지 비유가 언 듯 보기에는 같은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겨자씨는 자체적으로 성장하여 다른 자에게 도움을 주지만, 누룩은 다른 것도 자신과 같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두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개인의 신앙도 성장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아도 그들도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개인적으로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쳐 그들을 제자로 삼아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천국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자이고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명을 감당하려면 우선적으로 자신이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앙을 성장시키는데 머물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도 나와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서 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가루 서 말에 넣은 누룩이 전부를 부풀게 한 것처럼, 온 땅이 복음화 될 것입니다. ‘전도중심제자훈련 D3’로 말마암아 온 땅이 복음화 되는 그날까지 여러분의 수고가 멈추지 않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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