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갖고 고난을 허락하신다 행 28장 1-10절 20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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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갖고 고난을 허락하신다 행 28장 1-10절 2020.9.202020-09-20T09:53:5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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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7장 27-44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피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처음에는 백부장이 바울의 제안을 무시하다가 나중에는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과 친밀하고 그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그들에게 하나님과 친밀함을 보여주고 언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죄수였지만 유라굴로 광풍으로 위기를 맞이하자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을 리딩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위기의 상황에서 앞을 내다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D3를 창안하여 전 세계에 다니며 환난 시대를 준비하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어떻게 유라굴로 광풍이 사라지지 않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감사기도를 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한 사람도 상하지 않고 섬에 걸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눈에 보이는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것을 믿고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한 명도 죽지 않고 276명 전원이 육지에 상륙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황이나 자기의 생각을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을 태운 배가 파선된 후 육지에 안전하게 구조된 곳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1절). 지금은 몰타섬이라고 하는데 작년에 그곳에서 제자훈련세미나를 하려고 했지만, 제자훈련에 관심이 있는 선교사를 찾지 못해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몰타는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시실리(Sicily) 섬과 북아프리카 튀니지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섬으로서 은퇴 후 가장 살기 좋은 휴양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당시 배가 파선을 당해 헤엄쳐서 섬에 도착했기 때문에 옷은 젖었었고 날씨가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멜리데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어떻게 했습니까? 2절입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원주민을 영어 성경에는 ‘islanders’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헬라어로는 ‘바르바로이(barbaroi)’입니다. 여기서 영어의 ‘barbarian’(야만인)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당시 라틴어나 헬라어를 하는 사람들이 다른 언어는 마치 ‘바르바르’라고 중얼중얼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에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일컬어 ‘야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도 당시 사람들을 헬라인과 야만인으로 구분하였습니다(롬 1:14).

    멜리데 사람들은 야만인 취급을 받았지만 구조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2절을 다시 읽습니다.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저는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그들은 언어가 다르다고 야만인 취급을 받았지만, 상대방이 죄수, 군인, 장사꾼, 선원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에게 불을 피워 춥지 않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별하는 데 매우 익숙합니다. 남성과 여성, 가난한 자와 부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정상인과 장애인, 못생긴 자와 잘생긴 자 등등.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 14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2:14).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 되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구분하고 차별하여 공동체를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멜리데 사람들이 불을 피워 영접할 때 어떤 일이 발생합니까? 3을 읽습니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바울이 원주민들이 불을 피우는 것을 곁에서 보다가 이를 도우려고 나무를 한 묶음 갖고 와서 불에 넣자 나뭇더미 속에 숨어 있던 독사가 불길에 놀라 나오며 바울의 손을 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이나 다른 번역본들은 바울의 손을 물었다고 번역하지 않고 손에 뱀이 달라붙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4절에는 뱀이 바울의 손을 물었다고 말하지 않고 매달려 있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한 마디로 오역). 원주민들이 뱀이 손에 달라붙은 것을 물었다고 생각하고서 뭐라고 말합니까? 4을 다시 읽습니다.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멜리데 섬 원주민들은 로마 군인이나 선주와 선장으로부터 난파선에서 헤엄쳐 나온 사람들 중에 죄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손에 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목격하고 그가 죄를 범했기 때문에 결국은 독사에 물려 죽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말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들이 인과응보 사상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상은 당시 몰타섬의 원주민만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도 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갈 6:7). 따라서 인과응보의 사상을 가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문제는 인과응보 사상을 잘못 적용한 것입니다. 因果應報는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큰일을 당하면 “아, 내가 죄를 범해서 심판을 받는구나”라고 깨닫고 죄를 짓지 말 것을 결심해야 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서 그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판단하거나 손가락질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불에 독사를 떨어 버린 후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3절에서는 바울의 손에 달라붙은 뱀을 ‘독사’라고 했는데 4절과 5절에서는 ‘짐승’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짐승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쎄리온(therion)’인데 이 단어가 다른 곳에서도 쓰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사탄을 용 혹은 옛 뱀이라고 하는데, 하늘 전쟁에서 패한 용이 땅으로 내쫓기자(계 12:9),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계 12:17) 바다와 땅에서 짐승을 불러냅니다(바다-계 13:1, 육지-13:11). 그런데 이 짐승이 ‘쎄리온’(therion)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 누가가 바울이 불에 떨어 버린 독사를 계시록에 기록된 짐승과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을까요? 이는 요한계시록 19을 보면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 후에 흰 말을 타고 나타나셔서 짐승과 그 일당들을 유황불이 타는 못에 던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20절). 따라서 바울이 손에 달라붙은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린 것은 예수께서 장차 흰말을 타시고 짐승과 그 일당을 유황불이 타는 불 못에 던지실 것을 연상시켜 준 것입니다. 즉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지만, 반드시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가 독사 바울은 물었다고 하지 않고 손에 달라붙었다고 한 것은 마귀가 우리를 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독사를 떨어버려도 바울이 조금도 상함이 없자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6입니다.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그들은 바울을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껏 독사에 물릴 경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붓거나 갑자기 쓰러져 죽는데 바울에게는 아무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바울에게 평소와 다른 일이 일어나자 그들의 고정 관념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정 관념을 바꾸려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제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훈련 방법을 창안해서 전 세계에 보급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훈련하면 사람이 바뀐다고 주장합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반복하여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을 훈련하면 바뀐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반복하면 사람들이 바뀝니까? 지금껏 예수님을 믿어도 돈이 구원자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날마다 예수께서 구원자라고 고백하는 과정에서 돈이 구원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진짜 구원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돈이 구원자고 아니고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새롭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멜리데 원주민이 바울에게 신이라고 할 때 바울이 어떻게 했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지만, 바울이 이와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에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태어나면서부터 발을 쓰지 못하던 장애인을 일으키자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바나바를 제우스 신이라 하고, 바울을 말을 했기 때문에 헤르메스 신이라고 하면서 제우스 신전 제사장들이 소를 끌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이를 극구 말리면서 이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합니다(행 14:8-18). 마찬가지로 그들이 바울에게 신이라고 했을 때도 이전과 같이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때는 가만히 있거나 자만할 때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입니다.

    누가는 독사 사건 후 바울과 보블리오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7-9을 읽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7-9). 멜리데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영접하고 사흘이나 머물도록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친절을 베푼 대상을 ‘우리’라고 하기 때문에 276명 전원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바울의 일행만 뜻하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는 후자로 봅니다. 왜냐하면 그가 보블리오 집에 초대받아서 한 일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곳에 초대를 받아 식사만 하지 않고 당시 심한 열병과 아메바성 이질 등의 합병증을 앓고 있던 보블리오의 부친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보블리오의 부친이 나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병자도 찾아와서 고침 받았습니다. 이렇게 치유 사역을 한 것은 바울 일행과만 관련이 있지 다른 사람들과는 무관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바울이 이렇게 멜리데 섬에서는 열병과 이질을 고치고, 다른 병든 사람들을 고치게 하셨는데, 왜 바다에서는 바울을 통하여 유라굴로 광풍을 잔잔하게 하도록 하시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라굴로 광풍으로 고난을 당할 때 바울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27:26).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멜리데 섬으로 가게 하시려고 유라굴로 광풍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울을 멜리데 섬으로 가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독사 사건과 병든 자를 고치는 과정에서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바울과 함께 승선한 자들이 배 안뿐 아니라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행한 모든 기적과 복음을 듣고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유라굴로 광풍을 잠재우지 않고 멜리데 섬으로 가게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의 목적을 두시고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고난을 피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해가십니다. 초대교회도 큰 환난이 불어닥쳤을 때 먹고 살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한 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AD 313년 경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자 기독교인들이 급증하였고 381년 로마 황제 데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을 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이 황제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므로 복음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는 동안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대박해 기간에 가정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또 다른 요인을 발견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승선한 자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이 상당수가 있었는데 그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추론하는 것은 당시 배가 큰 상선이므로 그 안에 장사꾼들이 많았습니다. 장사꾼들은 기질이 있습니다. 그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바울과 함께하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에 로마에 도착하여 담대히 복음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뿐 아니라 환자들을 고쳐주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입니다.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보블리오가 고침을 받은 것에 감사하여 융숭한 대접을 했을 뿐 아니라 떠날 때에 배에서 쓸 것까지 실어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누가가 이를 기록했을까요? 단순히 보블리오가 바울의 일행을 후하게 대접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자는 항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 복음화를 위해 달려가는 더처치의 필요를 주님의 방법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물질적인 문제는 빌립보서 4장 19절을 붙잡고 다 해결받았습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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