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으로 전도하는 교회 살전 1:2-8절 201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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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으로 전도하는 교회 살전 1:2-8절 2012.10.212018-12-03T20:01:5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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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나름대로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식이 자랑거리일 수 있고, 부모가 자랑거리일 수 있고, 친구가 자랑거리일 수 있고, 출신학교가 자랑거리일 수 있고, 자신의 외모가 자랑거리일 수도 있고, 다니고 있는 직장이 자랑거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그의 자랑거리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교회를 다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와 빌립보교회는 자랑했지만 아가야 지역에 있는 고린도교회는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어떤 점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교회를 자랑할 때에 무엇을 자랑합니까? 사람이 많이 모인다든지, 건물의 사이즈가 크다거나, 유명인사가 나온다거나, 프로그램이 좋다든지 등을 자랑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얼마든지 교회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교회의 주된 자랑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세상 사람들의 모임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왜 데살로니가교회를 칭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세 가지를 인하여 데살로니가교회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고, ‘소망의 인내’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데살로니가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은 믿음으로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을 믿음으로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믿음으로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일을 믿음으로 했다고 칭찬했을까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여러 가지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황제가 신처럼 추앙을 받고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유일신 신앙을 믿고 있는 기독교도들은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 당시 무서운 가뭄이 지중해 연안을 휩쓸고 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한 마디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의 일을 믿음으로 잘 감당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어도 믿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여건이 되면 하고, 안 되면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과 상관없이 믿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무슨 말입니까?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설교할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를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즉 설교를 듣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설교를 개인의 말로 들으면 믿음은커녕 시험에 들고 상처를 받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믿음이 자라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다고 자동적으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들어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어미의 젖꼭지를 갖다 대는 순간 무섭게 빨아 당기듯이,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설교를 들어야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듣기 때문에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계속해서 하루만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을 쓸 수 없듯이,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믿음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면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욥이 하루 아침에 열 자녀를 잃고, 모든 소유를 잃고, 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서 긁는 재앙을 만났어도 하나님께 원망을 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말씀을 가까이 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욥 23:12)라고 고백하듯이, 욥은 하루 세끼 음식은 먹지 않아도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읽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지만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그것을 늘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기초해서 만든 탈무드를 매일 읽고 있습니다. 탈무드는 모두 2,711페이지로 되어있는데 1923년에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율법학자가 각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탈무드를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하루에 탈무드를 한 페이지를 꼭 읽고 있습니다. 2,711페이지를 한 번 읽으려면 약 7년이 조금 더 걸립니다. 그들이 말씀을 항상 읽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사니까 덤으로 이 세상에서도 가장 뛰어난 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강원도 만한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니까 그들이 복을 받아 노벨경제학상의 65%, 노벨의학상의 23%, 노벨물리학상의 2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것을 결단해야 합니다. 하루에 3장을 읽으면 1년에 한 번 읽고, 10장을 읽으면 일 년에 3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자주 읽고 들음으로 믿음이 생겨서 주의 일을 믿음으로 하므로 칭찬을 받고 이 세상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랑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사랑의 수고’를 했다는 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수고를 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를 많이 해도 사랑으로 하지 않으면 그 수고는 우리의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들이 모인 교회는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으면 이미 그 교회는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비전과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으로 하나 될 때에 그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기적이 일어나므로 칭찬 받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초대교회에 강하게 역사하시고 칭찬을 받았던 것은 그들이 사랑으로 수고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 되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을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홀트 아동복지회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재단을 최초로 만드신 분이 미국인 해리 홀트씨 입니다. 그분은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6.25 전쟁에 관한 영상물을 보고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하고, 1955년 10월 22일 우리나라에 들어와 처음으로 12명의 아이를 입양했습니다. 그런데 입양아 중에서 어느 정도 괜찮은 아이들은 병원에 입원시키고, 살 것 같지 않은 아이들만 집으로 데려와 돌봐주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시킨 아이들은 죽고, 집으로 데려온 아이들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병원에서는 사랑이 없이 키웠지만 집에서는 사랑으로 키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해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매일 안아주고 뽀뽀만 해 주었는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수고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같은 수고를 해도 사랑으로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열심히 수고해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신학자 가운데 유명한 ‘폴 틸리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 정권에 대항하다가 추방당하여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람이 영어로 강의하니까 학생들은 그의 발음 때문에 종종 웃었습니다. 그러자 세계적인 석학이고 건장한 체구를 가졌어도 마음에 상처를 받아 학생들을 보기가 무섭고 강의시간이 두려웠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이 학생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폴 틸리히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카드를 보냈습니다. “교수님, 우리는 교수님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우리들이 웃는 이유는 교수님을 우습게 생각하거나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교수님의 독일식 영어발음 때문입니다. 교수님 파이팅!” 이 카드를 읽는 순간 폴 틸리히의 마음에 새 힘과 용기가 솟구쳤습니다. 그 후 폴 틸리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도 사랑을 받으면 이렇게 생명력이 살아나는데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랑을 주시는데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수고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칭찬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죽었지만 주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수고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수고를 사랑으로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왕 수고할 것 사랑으로 행하므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소망의 인내’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소망의 인내’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그들에게 소망이 있기에 인내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극심한 가난과 환란과 핍박 중에 있었지만 한 가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소망일까요?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는 소망일까요? 큰 예배당을 짓게 될 것이라는 소망일까요?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라는 소망일까요? 자식들이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소망일까요?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즉 주님께서 곧 재림하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바로 그 소망이 있었기에 그들은 극심한 가난과 환란과 핍박 중에도 잘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종종 유명인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망에는 두 가지 종류의 소망이 있습니다. 죽은 소망이 있고, 산 소망이 있습니다. 죽은 소망이란 성취가 되어도 이 세상에서만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런 소망을 죽은 소망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산 소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취가 되면 영원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소망을 산 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끝이 아니라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인내를 합니다. 물론 죽은 소망을 가진 자도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는 좁은 집에 살고 있지만 장차 넓은 평수의 집으로 곧 이사를 간다는 소망이 있는 경우 좁은 집에 살아도 잘 참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어도 장차 치료가 된다는 소망이 있는 경우 현재의 고통을 잘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산 소망’을 가진 자의 인내와 ‘죽은 소망’을 가진 자의 인내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죽은 소망을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어서 참지만 산 소망을 가진 자는 기쁨으로 참습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극한 가난과 환란 가운데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산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쁨으로 인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죽은 소망’을 가지고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기쁨으로 잘 인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갖고 살아갈 때에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고 우리를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로마가 기독교에 무릎을 꿇은 것은 바로 초대기독교회의 성도들이 자신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자에게 잡아 먹혀도 찬송을 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극작가 오혜령씨를 잘 알 것입니다. 그녀는 카톨릭 신부와 결혼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글을 잘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지만, 더 유명한 것은 종합병원이라고 불릴 만큼 위암, 대장암, 인파선암 등 19가지 이상의 질병과 싸우면서도 늘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19가지 질병과의 싸우면서 뭐라고 기도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주님!, 세상의 모든 질병과 고통은 제가 감당하겠으니 저에게 주십시오.” 그녀는 그토록 질병이 많았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질병과 고통을 자신이 감당하겠으니 자신에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 세상 것만 바라보는 ‘죽은 소망’으로 살지 않고,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산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어떤 소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보다는 좀 나아질 것이라는 ‘죽은 소망’ 때문입니까? 아니면 곧 오실 예수님을 만난다는 ‘산 소망’ 때문입니까?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썩어 없어질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영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만 소망을 두고 인내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칭찬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면 매일 전도하고 일 년에 두 번씩 총동원전도를 행사를 할지라도 복음은 허공을 치게 될 것이고, 끝까지 생존할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칭찬을 받음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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