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에 네 가지 질문에 답하다 시69:30-31 20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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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네 가지 질문에 답하다 시69:30-31 2013.11.172018-12-03T20:59: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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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인 수장절인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추수감사절을 지킨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청교도들이 어떤 상황에서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는지 아십니까? 상황이 좋아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추수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여 드렸습니다. 즉 추수감사절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상황이 좀 어렵고 힘들다고 추수감사예배와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할 조건을 찾으면 누구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앉아 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어도 부득이한 상황이 생기거나 건강이 허락지 않아 올 수 없는 분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감사한 마음이 없이 앉아 계시다면 감사할 조건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절기설교는 언제나 주제가 같기 때문에 이전에 했던 설교를 리메이크해서 합니다. 저 역시 그럴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새로운 스타일의 추수감사절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추수감사절과 관련하여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드리는 형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성찬식과 제2기 평신도사역자 임명식이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간단히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첫째로, 왜 하나님께서 예배보다 감사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69:30-31).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황소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감사함으로 찬양 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43:21). 따라서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즉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 비싼 황소로 제사를 드리는 제사보다 감사를 더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예배 자체를 감사로 드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감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의미에서 예배가 아닙니다.

    그런데 무엇에 대한 감사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감사할 이유는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내용의 감사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중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수백 수천 가지 감사를 드려도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감사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내과의사가 어떤 말을 듣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잘 생겼다는 말입니까?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입니까? 사랑이 많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내과의사가 가장 기뻐하는 말은 어떤 병이든 수술만 하면 살리는 명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의 감사를 점검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혹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아직도 자신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그런 분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것이 깨달아져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가 넘쳐날 수 있는 것입니다.이런 감사가 넘쳐날 때에 존 뉴턴처럼 자신을 죄에서 건져주신 은혜가 놀랍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305 찬송하시겠습니다.

     

    둘째로, 누가 추수감사절에 가장 많이 헌금을 드리는 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추수감사절 때에는 평소보다 더 많이 감사헌금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저 역시도 십일조는 소득에 따라 드리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드릴 수는 없지만 추수감사헌금은 가장 많이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원주에서 잠시 사역을 했는데 그 교회의 장년출석은 저희 보다는 조금 많지만 추수감사헌금 결산이 32백만 원이나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추수감사헌금이 많이 들어오는지 궁금해서 알아보았더니 당회원과 안수집사와 권사에게 일정금액을 정해서 그 금액에 맞게 헌금을 작정시켰습니다. 그 당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년초부터 금액을 정해주면 그렇게 감사헌금을 드리기 위해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그렇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드리는 것보다 준비하는 자가 하나님께 더 많이 감사헌금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보시고 헌금의 적고 많음을 평가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제직이라면 추수감사주일에 감사헌금을 드리지 않는 분은 거의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헌금을 드리면서 많이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적게 낸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기분으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것은 다른 성도와 비교해서 많고 적음을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적은지 많은지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무엇을 근거로 우리가 헌금을 많이 드렸는지 적게 드렸는지를 평가하실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그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부자들과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던 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21:3-4). 렙돈은 그리스의 최소 화폐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드렸지만 주님께서는 가장 많이 드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가난한 과부에게 두 렙돈은 그의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헌금 자체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하시지 않고 우리가 가진 재산에 비례하여 얼마를 드리느냐에 따라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억의 재산을 가진 분이 백만 원의 감사헌금을 드리고 천만 원의 재산을 가진 분이 만 원의 감사헌금을 드렸다고 합시다. 우리가 볼 때는 백만 원을 드린 사람이 많이 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오히려 만원을 낸 성도가 10배로 많이 냈다고 평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헌금을 드릴 때에 금액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고 교만하지 말고 적다고 비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최선을 다해 감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많이 드림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헌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어떻게 하면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인생교본인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사한다고 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를 해도 전천후 감사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믿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잃고,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났어도 한 마디로 불평하지 않았던 것은 그에게 불어닥친 재앙을 보면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믿음의 눈으로 자신에게 불어닥친 재앙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동일한 상황에 처해있을지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정신의학자 칼 매닝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도(attitude)는 사실(fact)보다 중요하다.” 어떤 상황을 만나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환경 조건이라도 해석을 잘하면 감사할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우산 장사, 다른 아들은 짚신 장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은 비오는 날이면 짚신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고, 해가 쨍쨍 쪼이는 날이면 우산을 파는 아들을 걱정하느라 늘 근심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이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라고 충고합니다. 비 오는 날은 우산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고, 해 뜨는 날은 짚신을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을 생각하세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그래서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이라는 헬라 교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감옥에도 복음을 들을 자가 있어 저를 이곳에 보내셨군요. 감사합니다.” 얼마 후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 같이 천한 죄인을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형 집행 직전에 황제가 변심하여 사형을 취소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이 종이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군요.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바울이 옥중에 갇혔어도 감사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은 모두 상황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과연 우리의 추수감사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헌금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쁘게 받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형태의 추수감사예배를 아주 기쁘게 받으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가 수직적인 측면으로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입니다. 균형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는 실천적 삶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금번에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의 타클로반 지역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소식을 듣고도 모른 체하고 감사예배만 드린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겠습니까? 필리핀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두 눈으로 보고 계속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한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은혜를 끼쳤던 책 중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찰스 쉘던 목사의 신앙소설인데 주인공 헨리 맥스웰 목사에게 일어났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헨리 맥스웰 목사가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주일 설교 내용은 한 마디로 예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너무 큰 은혜를 받아 마음이 너무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에 한 행려자가 찾아 와서 적선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설교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에 짜증스러운 투로 다음에 오라고 문전박대를 하고 보내고 계속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다음 날 주일 설교에 성도들이 큰 은혜를 받아 눈물을 흘리는 등 거의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전날 자신에게 찾아왔던 그 행려자가 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과연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계속 준비하는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그 행려자를 도왔어야 했는가?” 그는 그 때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항상 자문하며 일을 결정하고 또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살자고 호소하므로 목사 자신과 교인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헨리 맥스웰이 던졌던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합니다. 과연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셨을까?’ 이제 우리의 예배가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삶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리처드 리키(Richard Leaky)라는 동물학자가 오랫동안 케냐에 살면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원숭이를 연구했는데 원숭이와 사람의 매우 다른 점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원숭이 세계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괴롭힐 뿐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비록 이기적인 면은 있지만 약한 자를 너그럽게 대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연구결과는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피조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더 닮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삶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헌금을 드리되 사람에게 과시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름을 알고 전천후 감사를 해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의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에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깊이 묵상하므로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좀 더 진지해지고 바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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