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갈등에 마침표를 찍다 신26:8-11 2014.9.7(추석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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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갈등에 마침표를 찍다 신26:8-11 2014.9.7(추석메시지)2018-12-03T22:30:3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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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설교 제목이 뭐지요?‘추석갈등에 마침표를 찍다입니다. 제가 이 제목으로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추석명절이 모처럼 가족들과함께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제사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고통을 겪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 부모님들이 신앙생활을 하시기 때문에 다른 교회 성도들보다는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사문제로 인한 갈등은 없어도 왜 제사를 드리지 말아야 하는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카톨릭은 제사를 허용하는데 왜 개신교는 하지 않는지,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은 먹어도 되는지 안 먹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금번 추석연휴를 어떻게 지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 큰 유익이 있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추석 제사상에 절을 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에 제사상에 절을 해야 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논하기 전에 제사의 유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래를 알아야 보다 더 제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제사는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史家들은 이렇게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는 유래를 고려조 이전까지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유교로 말미암은 조상제사가 들어오기 전에는 우리 민족 나름대로 고유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음식을 차리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면 깨끗하게 단장한 아낙네가 물을 떠 놓고 달밤에 정성을 다해 빌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혹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전쟁에 나갈 경우는 사슴이나 돼지나 소를 제물로 잡아드렸는데 이 경우도 절차가 까다롭지 않았고 제물도 단출했습니다. 산 짐승과 술 정도만을 드렸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양을 잡아 산채로 제단에 올리고 각을 떠서 하나님께 올렸던 제사법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조상제사가 시작되었을까요? 그것은 고려 말엽부터입니다. 고려조 말에 중국의 유교가 낳은주자학이 전래되었는데 그 때 조상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제사는 공자 이전의 시대인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주나라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상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종손을 높이는 의미에서 높은 곳에 앉혀놓고 제사형식의 예를 갖추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황제에게만 적용했는데, 제사를 잘 지내야 훌륭한 신하가 나온다는 유혹에 제후들까지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의 지위가 향상되자, 그들도 생존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다가, 나중에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중국의 조상제사가 널리 장려되었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인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태조 이성계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국호를 조선으로 변경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하므로 민심이 이반되자 이성계가 무학대사에게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가우리 민족은 조상에 대한 효가 극진하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장려하여 제사를 많이 드리게 하면 이반된 민심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고 조언해서 기일, 설날, 한식, 추석, , 여름, 가을에 시제 등 제사를 많이 드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제사를 널리 장려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성계의 아내가 평소 자기를 멸시하므로 이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유교는 군사부일체의 사상이 강하므로 조상제사를 강화하면 남자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반면 여성의 지위는 격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드렸던 제사법을 보면 제삿날 여자들은 죽도록 음식만 장만하고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여자가 오면 부정을 타서 조상신이 오지 못한다고 하여 제사 지내는 장소에는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즉 조상제사는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고,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외래문화이고,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산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은 조상제사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20절을 한번 읽겠습니다.“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 10:20).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전통적으로 드리는 조상제사는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심지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씀할까요? 그것은 제사를 드릴 때에 쓰는 지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지방을 쓰는데,‘아무개 神位라고 씁니다.‘神位죽은 사람의 영이 의지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이렇게 지방을 쓰는 것은 단순히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즉 조상을 단순히 사람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1계명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따라서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고 그에게 절을 하는 제사는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조상제사를 드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넷째 아들인 주광조 장로가 쓴 나의 아버지 주기철 목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제가 일본 천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하게 하자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하며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되었고 목사직을 파면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끝내 절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신앙의 정조를 지키다가 감옥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계명은 제1계명입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 여러분 중에 추석을 앞두고 제사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이 계십니까? 단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제사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선악과이기 때문에 결코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족과 다투기 싫어서 제사상에 절을 하면 잠시는 가족 간에 화목하고 평안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듯이, 그리스도인이 제사를 드리면 영적인 죽음이 찾아옵니다. 혹 여러분이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죽일 사람이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신앙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셨는데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런데 혹 믿음이 약해서 제사를 드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분은 평소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추석에 제사 지낸 것 때문에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의 전략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혹 믿음이 없어 제사상에 절을 했다면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달라고 간구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제사를 지낸 것도 일종의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만 항상 성령충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에게 안전장치를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회개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면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저주하며 배신한 베드로가 회개하자 용서하셨고 그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2.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질문을 왜 던지는지 아십니까?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분들이 의외로 상당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의견이 크게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혹자는 제사상에 올려진 음식은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왕의 진미를 먹지 않은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1). 우리가 알다시피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으면 자신을 더럽힌다고 생각하고 환관장에게 간청해서 채소를 먹고 신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제사상의 음식은 먹어도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 디모데전서 43-4절을 제시합니다. 한 번 읽겠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3-5). 이 말씀은 제사음식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고, 모든 것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에 제사음식을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사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은 구약성경이고, 제사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은 신약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충돌을 일으킬 때는 구약을 통해서 신약을 보지 말고 신약을 통해서 구약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예언한 것이 신약에서 성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제사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8장에서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고린도전서 813절만 읽겠습니다.“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당시 어떤 신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신을 경배하는 행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우상제물을 먹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면서 다른 신을 섬겨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가정이 아직 복음화가 되지 않아 제사상을 차릴 경우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면 제사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제사음식을 먹는 것을 인하여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시험에 들 사람이 없다면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가족과 함께 맛있게 드셔도 됩니다.

     

    3. 왜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데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허용하고 개신교는 허락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천주교도 우리나라에 맨 처음 전래될 당시에는 조상제사를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조정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791년에 있었던신해박해입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전라도의 윤지충, 권상연 등이 부모의 장례를 치룰 때에 유교적 의식을 거부하자 조정으로부터 극형인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801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온 주문모 신부도 그 일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무수한 천주교 신자들이 제사문제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으로부터 신사참배를 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카톨릭은 제사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시도했습니다. 제사는死者崇拜의 행위가 아니라 조상에 대한 존경과 추모의 의례를 지키는효의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 비오 12세는 1939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제사와 신사참배를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유만으로 천주교가 제사를 드리도록 허용한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通功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공신앙은 산 이와 죽은 이가 기도를 통하여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면 죽은 자의 신분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옥설과 맥을 같이 합니다.‘연옥이란 라틴어로푸르가토리움이라고 하는데 이는정화하다는 뜻입니다. 즉 연옥은정화의 장소를 뜻합니다. 그들이 연옥설을 주장하는 근거는 마태복음 1232절과 고린도전서 315, 그리고 마카비21242-45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232절은 연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아니라 성령을 거역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또 고린도전서 315절은 거짓된 이론은 불에 타버리지만 복음의 참된 이론은 영속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카비2서는 우리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입니다. 즉 그들이 연옥설을 주장하는 것은 성경과 거리가 먼 것입니다. 그들은 비성경적인 교리를 이용하여 성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하여 거대한 성당을 지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무슨 의미입니까? 죽은 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死者에게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카톨릭은 비성경적인 교리에 기초하여 제사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왜 같은 기독교인데 우리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느냐고 불평을 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람의 말과 생각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추석에 어떻게 해야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에게 유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추석 연휴에 해야 할 일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야 할 일과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통합해서 네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자녀들의 영적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여러 절기를 맞이하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오늘 본문에 있듯이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은 각종 절기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을 키우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추석과 같은 명절을 맞이하면 자녀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성공했을지라도 믿음을 잃었다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따라서 평소에는 못해도 추석명절만이라도 자녀들의 신앙을 체크해서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그들의 신앙을 독려하는 것을 잔소리같이 들을지라도 성령께서는 이 일을 기뻐하시고 자녀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십니다. 둘째로,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현대인은 누구나 다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한 가족이라도 서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추석연휴기간에 최선을 다해서 부모님과 형제들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자기보다 못 사는 형제가 있다면 도움의 손길을 펼쳐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바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그렇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본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기전 먼저 자기 가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족을 돌아보되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해야 합니다. 사실 명절만큼 전도하기 좋은 기회는 없습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들이 있다면 전도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나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만으로는 안 됩니다. 삶으로 본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 주 목요일 목회자 제자훈련을 야외에서 진행했습니다. 오후에는 간식을 먹기 위해 튀김 식당이 몰려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식당 주인에게 전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예수님을 믿느냐고 했더니 자기 친척 중에 교회에 다니지만 너무 악랄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서 교회에 발을 끊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족이든 이웃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변화된 삶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디딤돌이 되어야지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막는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거하는 지역에 살고 있는 객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가족이외의 대상들과 함께 하려고 해야 합니다. 오직 내 가족만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평소에 돌아보지 못한 이웃을 찾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는 이러저런 핑계로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연휴가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추석이나 설 명절에 성경 1독을 목표로 성경통독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제가 제자와 같이 집에서 잠을 자고 식사하면서 읽으니까 성경을 23일에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추석 연휴에 성경 1독을 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만 일독하는 것은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습니다. 주부들은 나름대로 할 일이 많으니까 사복음서만이라도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힘드신 분은 잠언과 전도서만 이라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평소 설교를 통하여 받지 못한 은혜를 받게 하실 것입니다. 넷째로,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수십 년 목회하면서 추석 연휴기간에 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추석연휴 기간에 특새를 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요즘 갈멜산에서 매일 밤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칼럼에도 썼지만 성령께서 기도 중에 제 마음에 특별새벽기도회를 인도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왜 제가 특새를 하기를 원하십니까?”그러자 성령께서 네가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제 특새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추석연휴에 더 많은 분들이 나오실 수 있다고 판단해서 금주에 특새를 하게 되었습니다. 금번 추석 특새는 제가 계획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절히 구하시는 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금 번 추석에는 제사와 관련한 일로 시험에 드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영적으로 건강한지 점검하고, 평소 돌보지 못한 가족과 이웃을 돌아보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므로 주께서 숨겨놓으신 은혜를 듬뿍 받으시는 추석명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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