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은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1~34절 2017년 11월 5일

//최고의 은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1~34절 2017년 11월 5일
최고의 은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1~34절 2017년 11월 5일2018-12-03T23:35:14+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최고의 은혜는 복음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31~34절 2017년 11월 5일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우리가 읽어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선지자들이 기록한 대로 자신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31-33). 이처럼 예수께서 장차 자신이 고난을 당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을 수난예고라고 합니다. 수난예고는 누가복음에 세 번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누가복음 9장 22절에, 두 번째는 누가복음 9장 44절에, 그리고 세 번째는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18장 31-33절에 등장합니다. 세 번의 수난예고의 내용이 다소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예수께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 번째 수난예고를 언제 말씀하셨습니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입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동안 예루살렘에 7차례나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수난예고를 말씀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마지막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께서 왜 하필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 수난예고를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13장 33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본문에서 ‘오늘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현재를 가리키고, ‘내일’은 예수께서 곧 고난당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기까지의 기간을 말하고, ‘모레’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를 가리킵니다. 또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는 말씀은 과거 예루살렘이 여러 선지자들을 죽였기 때문에 자신 선지자로서 또한 예루살렘에서 죽으시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물론 예루살렘은 단지 지리적인 예루살렘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도 예루살렘 밖인 ‘마케루’에서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죽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난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2-33절입니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그런데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첫째로,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로마군인들에 의해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왕이라고 불리고 놀려댐을 당했습니다.
    둘째로, 능욕을 당하고 침뱉음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께서 뺨을 맞으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셋째로,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채찍질 하시고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군인들에게 채찍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넷째로,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수백 년 전부터 수천 년 전에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방인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시고,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질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신 것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성경에 예언되어 있지만 아직 성취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고만 있지 말고 이를 준비해야 할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1-3).
    그렇습니다. 주의 날은 밤에 도둑이 오듯이, 갑자기 옵니다. 그런데 그날이 도적같이 올지라도 준비하는 자에게는 도적같이 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준비하느냐 하지 않으냐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사실을 노아홍수심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물로 심판을 하실 때, 이를 준비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관심을 쏟았던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이를 준비한 노아와 그의 가정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에게 방주를 짓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데 몇 년이 걸렸는지 아십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약 100여년 정도 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가 500세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은 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땅의 부패함을 보시고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창 6:9-13), 노아의 나이 600세에 홍수가 났다고 말씀하고 있고 있기 때문입니다(창 7:6). 그런데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는 홍수가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배를 지은 곳은 바닷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런 상황에서도 심판을 준비하며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의 재림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그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이렇게 수난을 당하시기 전에 이를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신을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임을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시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4대 성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4대 성인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증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그것을 믿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수난예고를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34절입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간이나 좇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을까요? 특별히 예수께서 수난예고를 말씀하신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갖고 예수님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즉 서로의 관심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각종 능력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이야 말로 그런 꿈을 이뤄주실 수 있는 능력자라고 믿고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다고 하자 그들은 이제야말로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통치로부터 정치적 독립을 이루게 되고 그 나라의 통치자는 예수님이 될 것이고, 자신들은 그 나라에서 중요 보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예루살렘에 가면 이방인에게 넘겨져서 능욕과 침 뱉음과 모욕을 당하고 채찍질을 맞아 죽을 것이다.” 자신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꿈꾸었는데 예수께서는 정반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들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지 듣고 싶어하지 않은 말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설교를 듣지만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버리지 않은 채로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말씀을 듣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수단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318회나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이 없을까요?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데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날마다 죽이고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다시 34절을 읽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누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하나도 깨닫지 못한 것은 그 말씀이 감취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누가는 그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을 그 말씀이 감취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감취었다’는 단어를 보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바울이 자주 사용하던 말입니다. 예를 들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 1:26),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3). 그런데 누가와 바울이 어떤 관계였습니까?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전도여행시 함께 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다니면서 그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추어졌다는 것은 그것을 감춘 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것을 감추셨기 때문에 그들이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추신 것은 하나님께서 드러내시지 않는 한 인간의 편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이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지 않으면 이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비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깨닫게 하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절)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니의 비밀인 복음을 깨닫는 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어떻게 증거할까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가까운 가족은 삶으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말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