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에 추수감사절을 생각한다 시 69:30-31 201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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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에 추수감사절을 생각한다 시 69:30-31 2014.12.62018-12-03T22:35:4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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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추수감사절’이라는 이름으로는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역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전통교회의 예배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호주집회를 떠나기 전, 호주를 다녀와서 추수감사예배를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늦은 감이 있지만 2015년도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추수 감사절은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청교도 102명이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극심한 기아와 병고로 절반이나 죽었지만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갖은 풍토병과 각종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수확한 첫 결실을 감사하여 드린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추수감사절의 이면에는 엄청난 비극이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청교도들은 기반이 안정적으로 갖추어지자 자신들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인디언들이 살고 있는 땅에 눈독을 들이고 강제로 땅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순순히 자신의 삶의 터전을 내놓지 않자 앞선 화력으로 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임의대로 정해 놓은 거주지로 원주민들을 강제 이송시키고 그 구역을 벗어나거나 허가 없이 백인지역에 들어오면 처벌하였습니다. ‘기독교 죄악사’(조찬선)라는 책에 보면 청교도들이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약 300년 동안 최소한 1억 이상의 원주민들을 학살했고 원주민들의 식량의 근원이었던 야생 들소 6,000만 마리를 무차별하게 학살하였다고 폭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벨평화수상자이며 남아공 성공회 대주교인 ‘데즈먼드 투투’의 촌철살인을 통하여 청교도들의 악행을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함께 기도하자!’ 하였고 우리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한국교회가 이렇게 어둔 역사의 주인공들이 드리던 추수감사절을 그대로 이어받아 지키고 있을까요? 한국교회는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공의회에서 서경조 장로의 제의로 1904년 11월 10일부터 추수감사절을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을 장로교단에서만 지키지 않고 모든 교회가 함께 지키기 위해 각 교파의 선교부가 모여서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 선교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날을 기념하여 매년 11월 셋째 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일로 결정해서 드리다가 지금처럼 매년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미국의 추수감사절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아도 되는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은 성경이 말하는 절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기인하지 않고 미국의 추수감사절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초막절은 오늘날의 추수감사절과는 다른 것입니다. 둘째로, 한국교회의 추수감사절과 미국교회의 추수감사절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고난을 겪었던 청교도들이 첫 수확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었지만, 한국교회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풍요가 아닌 영적구원에 대해 감사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처음으로 드렸던 추수감사절은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추수감사절보다 더 성경적입니다. 셋째로, 오늘의 추수감사절은 본래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추수’라는 개념은 과거 농경사회의 개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산업화 시대를 거쳐 지식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텃밭이라도 가꾸어 보지 않은 도시인들에게 ‘추수’라는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넷째로,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교회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며 특별헌금을 드리라고 강요합니다. 저 역시도 이런 점에서는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감사를 물질로 드리는 것은 마지막 예배인 송구영신예배를 통해서드리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의미로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크게 네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더욱 더 감사하는 절기로 지켜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 69:30-31).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하나님을 위대하심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시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위대하심을 인해 감사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베푸신 가장 큰 은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구원의 은혜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감사해야 할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크게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운데 구원의 은혜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서 영원히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할 운명에서 건짐 받은 것을 감사하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수천수만 가지의 감사제목을 가지고 주님께 예배를 드려도 죄와 사망과 지옥의 굴레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가장 크게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동안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어도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도 모르고,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지만 저를 만나 복음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죄에서 건짐을 받고, 구원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를 몰랐는데 이제는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과의사가 어떤 말을 듣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잘 생겼다는 말일까요? 인격이 훌륭하다는 말일까요? 사랑이 많다는 말일까요 ? 아닙니다. 내과의사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어떤 병이든 그가 집도만 하면 살려내는 명의라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자신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그런 분들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런 감사가 넘쳐날 때에 존 뉴턴처럼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305장 찬송하시겠습니다.

    둘째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있기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추수감사절 예배를 어떻게 드립니까?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듣고, 헌금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드리는 추수감사예배를 정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냐는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하나님께서 우리가 전통적으로 드리는 추수감사예배를 기쁘게 받으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배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균형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 못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따라서 추수감사절 예배만 드리지 말고 자신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 때마다 한국교회​​​의 수많은 강대상은 농부들이 땀 흘려 지은 농산물로 치장되고 장식되어집니다. 그런데 그 농부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쌀 개방 문제로 인해 “못살겠다! 죽겠다!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는 시위를 벌이는 농부들을 향하여 ‘종북 좌파’, ‘빨갱이’라는 비난을 쏟아 붓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런 자세로 추수감사절을 지킨다면 우리 안에 성령께서 탄식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농부들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말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산다면 심지어 원수까지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미쉬’인들의 용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아미쉬’는 16세기 초 종교개혁 이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탄생한 재세례파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 이성의 판단 아래 세례 받아야 한다며 유아세례를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무저항 평화주의, 교회와 정부의 완전 분리를 강조하고, 순종과 용서와 겸손과 간소함을 공동체의 주요한 덕목으로는 삼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아미쉬 마을에 2006년 10월 2일 오전,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미쉬 마을의 학교에 범인이 들어와 5명의 소녀를 교단에 일렬로 세워서 총살하고 나머지 다섯 명에게는 중상을 입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렀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아미쉬 낙농가를 돌며 우유를 수거해 가는 세 자녀를 둔 트럭 운전사였습니다. 그런데 아미쉬 사람들이 이토록 큰 사고를 일으킨 범인에게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성금을 모아 가장을 잃은 범인의 유가족에게 전달했고, 유가족의 부인과 세 자녀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며 그들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범인을 실제적으로 용서해 줌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께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는 가르치심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고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고 있기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리처드 리키(Richard Leaky)라는 동물학자가 오랫동안 아프리카 케냐에 살면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원숭이를 연구했는데, 원숭이와 사람의 매우 다른 점을 알아냈습니다. 원숭이 세계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괴롭힐 뿐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지만, 사람은 비록 이기적인 면은 있지만 약한 자를 너그럽게 대하고 긍휼히 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풍성하게 추수감사예배를 드릴지라도 이런 삶이 없는 상태에서 입으로만 감사를 드린다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예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로, 전천후 감사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인생교본인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한 두 번의 감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전천후 감사’를 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석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으면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욥이 하루아침에 열 자녀를 잃고, 모든 재산을 날려버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났어도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은 지금 고난 당하는 이유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하여 축복하실 것을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좋게 만들어주실 것을 믿으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정신의학자 칼 매닝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도(attitude)는 사실(fact)보다 중요하다.” 그렇습니다.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하느냐 입니다. 우리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면 감사할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감사하고, 바울이 옥중에 갇혔지만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모두가 현재의 상황을 믿음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이라는 헬라교부가 있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다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감옥에도 복음을 들을 자가 있어 저를 이곳에 보내셨군요. 감사합니다.” 얼마 후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 같이 천한 죄인을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형 집행 직전에 황제가 변심하여 사형을 취소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이 종이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군요.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인생은 해석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기로 새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넷째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기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금 번에 여러분의 기도와 헌금으로 12박 13일간의 호주집회를 주님의 은혜가운데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첫 집회는 시드니 실로암교회에서 토요일 저녁과 주일낮 1,2부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시스템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로 소문난 교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가슴이 아픈 것은 그런 교회에 평신도에 의한 말씀사역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랑의교회가 제자훈련의 메카임에도 불구하고 주일에 새신자가 등록하면 평신도들에 의해 양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목회자들에 의해서만 이뤄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목회를 평신도들이 하지 않고 목회자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평신도가 목회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2:9). 우리의 사명은 지구촌의 모든 교회가 ‘D3왕의사역’으로 훈련을 받아 평신도들에 의해 양육이 이뤄지는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그 교회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에 거쳐 호주 목회자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마침 세미나 기간에 호주목회자 골프대회가 있어서 많은 목회자가 참석하지 못했지만 참석한 목회자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몇몇 교회들이 내년 2-3월 중에 세미나를 인도해달라고 요청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우리에게 세미나를 요청한 목사님들은 부산의 풍성한 교회에서 실시하는 세미나에 6번이나 참석해서 훈련을 받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D3왕의사역’으로 3박 4일간 한 번만 훈련을 받아도 개교회안에 양육시스템이 구축되어 평신도들이 직접 새신자들을 양육하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과 금요일 낮에는 정원일 목사님이 시무하는 베다니교회에서 ‘D3왕의사역 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정원일 목사님은 호주에서 공인회계사로 일하고 있지만 유대인 선교에 뜻을 갖고 신학을 공부해서 특수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번 세미나를 통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우리와 연관을 갖고 세계복음화에 함께 동역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에는 시드니 주안교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교회는 인천주안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진기현 목사님이 개척한 교회로서 유학생을 전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목회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매주 청년들만 500여 명이 모이는데 제가 설교한 날은 마침 방학이 시작되어 대부분 학생들이 한국에 갔기 때문에 100여 명 정도 모였습니다. 그 교회가 청년사역을 위해 건물 임대료로만 한 달에 2,000만 원을 지불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 교회를 도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역한 곳은 멜본한인장로교회 입니다. 그 교회는 현 고신대학 부총장인 이상규 목사가 개척한 교회로서 대지 700평에 아름답게 건축한 교회입니다. 멜본에서는 한인교회 중 유일하게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한동안은 300여명까지 모였지만 지금은 주일학교 포함해서 100여 명 정도가 모이고 있었지만 목회자들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교회가 구심점을 잃고 점점 침체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주일 오후 9시 반까지 집중훈련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훈련 전,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도 일하는 성도가 많아 열 명도 참석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상을 뒤엎고 30여 명이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일낮 예배와 오후 1시 반부터 5시 반까지, 그리고 저녁 6시 30분에서 9시 30분까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자 월요일 저녁에도 집회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월요일 ‘그레이트 오션로드’로 여행하려고 미리 예약했는데 차로만 왕복 8시간이 소요되어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면 저녁 8시에나 도착하게 되어 저녁집회를 인도하는 것이 무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계약금 중 50%인 25만원만 돌려받고 여행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저녁 집회시간 전, 담임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들이 어제 말씀훈련으로 은혜를 받았지만 기도훈련에는 10명도 오지 않을테니 크게 기대하지 마세요.” 그러나 23명이나 참석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혹자는 회개의 기도가 터지고, 혹자는 쓰러지기도 하고, 혹자는 방언은사를 받는 등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집회기간 내내 감기에 걸리고 목이 아파서 끝까지 집회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의 열매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아직 도네이션이 이뤄지지 않아 우리가 자비량으로 해외선교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8백만 원의 예산을 들여 호주의 여러 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지상명령에 순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에게 지상명령에 순종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이전보다 더욱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영원히 해방시켜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해석하고 전천후 감사를 해야 합니다. 또한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지 말고 삶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있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삶이 있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초겨울에 드리는 추수감사절예배를 통하여 더욱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감사가 드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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