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항상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눅 14:15-24절 2017. 6. 11

//천국은 항상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눅 14:15-24절 2017. 6. 11
천국은 항상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눅 14:15-24절 2017. 6. 112018-12-03T23:28:2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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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읽은 본문은 소위 ‘큰 잔치 비유’라고 일컫습니다. 한 마디로 이 비유는 어떤 사람이 잔치를 잘 준비하고 종들을 보내어 손님을 초청했는데 모두 거절해서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께서 이 ‘큰 잔치 비유’를 어떤 상황에서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이 말은 누가 한 말일까요? 예수과 함께 식사를 하던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누군가를 초청해서 점심이나 저녁을 베풀 경우는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이 아니라 가나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해라 그러면 의인들이 마지막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갑자기 이렇게 말한 것은, 자기는 의인으로서 장차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라도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24절 때문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한 마디로 예수께서 ‘큰 잔치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의 착각에 일침을 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바리새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주님께서는 그렇지 않게 평가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이 바로 그런 자 중에 대표가 아니었습니까? 그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을 믿고 추종하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죽이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바울처럼 잘못된 자기 확신에 빠져 그릇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자기 개혁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금년이 종교개혁 50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종교개혁 전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론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교회의 부패성은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개신교가 교회의 개혁을 외치고 구교에서 나왔는데 오히려 그들보다 더 부패하여 사회의 지탄을 받는 집단으로 전락해 있을까요? 그것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칠 때에 개혁하지 못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만인제사장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오직 구원은 믿음으로만 받는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개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전처럼 일반신자와 목회자(설교자) 기능을 구분한 것입니다. 즉 목회자만 말씀사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직 목회자만 말씀사역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모두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평신도를 말씀사역자로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건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D3’가 무엇입니까? 평신도가 말씀사역을 하도록 훈련하는 전도중심제자훈련시스템입니다. 3분복음스피치훈련을 통하여 누구를 만나도 말씀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고, 온가족튼튼양육 1과를 통하여 가르쳐 제자 삼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비유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본문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각각 거절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사 놓은 밭은 누가 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잔치에 다녀와도 밭은 그대로 있습니다. 따라서 밭을 샀기 때문에 초청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소를 샀기 때문에 시험을 해보아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소를 살 때에 충분히 이것저것을 고려하고 결정했기 때문에 소를 시험해야 하기에 초청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잔치에 다녀와서 소를 시험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세 번째 사람은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잔치에 갈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유대인은 당시 상호초대의 관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갓 결혼한 사람이 초대를 받은 것으로 보아 그를 초청한 사람이 먼저 그들의 결혼식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초대를 받았으면 초대한 사람의 초대에 응해야 합니다. 그런데 장가를 들었다는 이유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은 합당한 처사가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한결같이 큰 잔치의 초대를 거절했을까요? 그것은 초청을 받았던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밭을 산 사람, 소를 산 사람, 장가를 든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모두 세상적으로 형편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소위 현세적으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큰 잔치에 초대를 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세상에서 받은 복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호 4:7)라고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는 이 세상의 번영은 도리어 하나님의 진짜 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받은 복과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을 복은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복은 아무리 클지라도 일시적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장차 주시는 복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그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예비하신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8-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두신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아직 모르는 자들에게 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초청받은 자들이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초청을 거절하자 집 주인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주인이 초청에 거절당하자 노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잔치의 초청을 거절했다고 노했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잔치에 초대했는데 오직 않았다고 진노합니까? 물론 섭섭한 마음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해도 거절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실제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2000년을 방황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거역하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서 복을 받아야지 계속해서 거절하므로 진노를 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노한 주인이 종을 시켜서 데려오라고 한 자들이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잔치에 초대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제가 종전에 유대인들은 상호간에 초대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초청을 받아서 식사할 수는 있지만 대접을 받은 후 상대방을 초대할 수는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함에도 이런 자들을 데려다가 잔칫자리에 앉히라고 말한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일방적인 은혜가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뭔가를 해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 잔치에서는 서로 수준이 같아야 참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 잔치는 아무런 자격이 없어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예스”라고 반응하면 참석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일방적인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받은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가 베푼 것에 대해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자들을 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일방적인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종들이 나가서 그들을 다 불러 모아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23절입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그대로 빈자리가 있다고 하자 강권하여 데려다가 집을 채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강권하다’는 말은 헬라어에 ‘아낭카손’이라고 하는데, 상대방이 안 오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잘 설득하여 데려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거절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그들이 입으로는 거절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우리를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있음을 알고 끝까지 전해야합니다. 감정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자들이 텔레마케터(전화통신판매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화로 한 건을 성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아십니까? 수없이 거절을 당해도 그들은 수없이 시도를 합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무시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해도 굴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강권하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길’은 헬라어로 ‘호도스’라고 하는데 공용도로를 가리킵니다. ‘산울’은 울타리를 말하고 ‘산울가’는 울타리 밖을 말합니다. 즉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면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신 대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직장을 그만두고 오직 전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를 만나든 기회를 봐서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잔치에 초청받았지만 거절한 세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4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잔치를 맛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잔치를 거절한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 있을 동안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제가 이렇게 바쁘게 전도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늙어지기 전에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에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의 급한 편지를 가지고 냇물 건너편 마을로 심부름을 가다가 냇가에 앞에 이르자 흐르는 물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지나가던 노인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애야, 너는 무슨 일로 여기 앉아서 물만 쳐다보고 있느냐?” 그러자 그 아이는 “예, 저는 지금 아버지의 급한 편지를 가지고 저 건너 마을에 가는 길인데 이 냇물이 다 끊어진 뒤에 건너려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 만할 때부터 지금 80이 되기까지 이 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있어. 언제까지 끊어지기를 기다릴래. 좀 위험해도 돌 위로 건너가면 돼.” 우리는 다 하나님 아버지의 급한 편지를 받아들고 믿지 않는 저 건너편 마을로 심부름 가는 자들입니다. 인생이란 흐르는 물과 같아서 끊어질 날이 없이 문제없는 날이 없습니다. 이 일이 해결되면 저 일이 터지고, 저 일이 해결되면 이 일이 터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것이 해결되면 전도해야지 저 일이 해결되면 전도해야지 하다가는 전도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당장 흐르는 냇물에 달을 내딛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전 세계에 다니며 제자훈련을 하고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것은 손에 쥔 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으로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렸다면 지금까지 아무 일도 못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장차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안식할 천국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이곳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귀에게 속아서 주님의 초청을 거역하는 자들에게 찾아가서 설득하여 그들도 함께 이 잔치에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런 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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