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 55장 1-2 2012.11.4

//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 55장 1-2 2012.11.4
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 55장 1-2 2012.11.42018-12-03T20:03:02+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진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 55장 1-2 2012.11.4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49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특별히 동신교회에 첫 걸음을 내디디신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행복한 소통’이라는 제목으로 오행시를 지었습니다.

      행– 행복에도 가짜와 진짜가 있다는데 진짜 행복은 무엇일까요?

      복–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진심으로 소통하는 것입니다.

      한– 한 사람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소통하면

      소– 소망하고 바라던 행복의 꽃이 활-짝 핍니다.

      통– 통통 튀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어 행복을 마음껏 누립시다.

     

      “서로 인사합시다. 하나님과 소통합시다.”

      여러분!, 이곳에 정말 잘 오셨습니다. 오늘이 인생 최대의 축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래서 생각 없이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하루 하루를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이 살아간다면 짐승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짐승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바쁠지라도 잠시 일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제가 오늘 칼럼에도 썼지만 사람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르지만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연 자신이 진짜 행복한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진짜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의 모든 것에 가짜와 진짜가 있듯이 행복에도 가짜와 진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소통은 대상에 따라 크게 자신과의 소통, 이웃과의 소통, 세상과의 소통,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소통의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진짜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와 소통하면 진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진짜친구라고 합니까?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하는 자입니다. 어떤 것이 진짜보석입니까?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짜는 변하고 진짜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도 세월이 지나면 비바람에 깎이어 모습이 바뀝니다. 대구 팔공산에 있는 갓바위도 점점 옆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도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진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과 소통하면 진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사도 바울이 하나님과 소통한 것을 통하여 그 방법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바울은 원래 다소라고 하는 대도시 출신입니다. 다소는 당시 대학교와 체육관과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아주 큰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어려서부터 그 도시에서 출생하여 자랐고 더욱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위대한 스승 밑에서 율법을 배워 유대교의 신앙으로 완전무결하게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교를 위해서라면 생명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메시아가 와서 로마로부터 억압받고 있는 자기 민족을 구원해 줄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라는 청년이 나타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면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기적을 행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믿고 추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의 생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이 생겼고,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러자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시기심이 발동하자 더 이상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아 죽이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다양한데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했을까요? 그것은 성경이 “나무에 달린 자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신 21:23)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은 자로 사람들이 알도록 하여 더 이상 그를 추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12제자들마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돌아가신 줄 알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예수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예수께서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들이 기다리던 진짜 메시아인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 세상에 다니면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전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거짓 메시아로 판정을 받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이 메시아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천한 동네 나사렛에서 태어나서 교육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30이 되도록 목수 일만 하던 젊은 청년을 메시아로 추종하느냐?”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끓어오르는 분노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그는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주모자가 되었고, 예루살렘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다가 감옥에 넣고 채찍질하며 핍박했습니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신자들을 잡아오기 위해 대제사장으로부터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아 예루살렘으로부터 12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내리쬐는 땡볕을 받아가며 사막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2시쯤이 되자 갑자기 하늘에서 강한 빛이 바울과 함께 한 사람들을 둘려 비추며 에워쌌습니다. 순간 땅바닥에 거꾸러졌습니다. 한참 멍하고 있다가 눈을 떠서 보니 자기 앞에 어떤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여,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가 거짓 메시아인 줄 알고 그를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 인생을 불살랐는데 그분이 바로 자신이 바라고 기다리는 메시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소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소통한 것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도덕적으로 비난받거나 흠잡힐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딤전 1:13)라고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는 한 마디로 신실한 크리스천을 죽이는 살인병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쓴 서신에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구원하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자녀로 부르셨을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이래 가장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전혀 예상치 못하는 일을 행하십니다. 특별히 구원한 관한한 우리의 예상과 생각을 뛰어 넘어 역사하십니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 도무지 가능성이 없다고 낙인 찍힌 사람과 소통하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핍박하거나 안 좋게 말하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도 구원을 받아야 할 사람인 줄 알고 구원을 받도록 노력을 기울어야 합니다. 오히려 가족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제 절친 중에 현재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있는 주인종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는 친구 중에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유일한 친구입니다. 그는 아내가 영락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주일마다 아내를 교회까지 태워다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까지 가서는 아내가 예배를 드리고 나올 때까지 주차장에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한지가 20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20년간을 교회 주차장까지는 갔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저의 매형도 예수님을 믿기 전, 누나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인품이 좋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쉽게 영접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서 가장 늦게 25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기억하는 초특급 흉악범들이 있습니다. 열 일곱 명이나 죽이고 4명을 더 살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김대두, 일가족 6명을 도끼로 살해한 고재봉, 집에 화장터를 만들어 놓고 인육을 먹었던 김기환을 두목으로 한 지존파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마감했는지 아십니까? 사형수로 복역하는 동안 복음을 듣고 눈물로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감옥 안에서 수백 명을 전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혹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싶으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왜 의롭게 살고 착하게 산 사람을 구원하시지 않고 짐승만도 못하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토기장이가 그릇을 만들되 귀히 쓸 것으로 만들기도 하고 천히 쓸 것으로 만들기도 하듯이, 극악한 죄인을 구원하시든 착하게 사는 사람을 지옥에 던지시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몫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살인한 사람의 죄나 남을 미워한 사람의 죄나 동일하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악한지, 선한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죄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자포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너무 멀리 주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그의 생각을 바꾸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여 충성된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데는 억지로 오신 분도 계실 것이고, 아직도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신 계실 것이고, 한 번만 와달라고 하니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오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인도하셨기 때문에 이곳에 오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자리에 인도하셨을까요? 여러분과 소통하시고 여러분에 진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가르침을 따라 율법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살았기 때문에 그는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와는 정 반대였습니다. 그는 그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왜 그가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원수로 생각하셨을까요? 그것은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고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바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양을 쌓고, 인격을 도야하고, 철학에 심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직접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인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자가 아무리 남장을 한들 남자가 되겠습니까? 남자가 아무리 예쁘게 여장을 한들 여자가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죄인은 아무리 인격을 쌓고 교양을 쌓아도 죄인에 불과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고 있고”,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는 다 같기 때문에 무슨 종교를 믿든지 진실하게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소통의 통로로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시대에 대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그릇에 담아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듯이,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가면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소통하자고 부르시는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진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이 자리에 초청하셨음을 아시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아 진짜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청 멘트 

      잠시 고개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무리 세상에서 좋은 것을 소유할지라도 진짜 행복은 얻을 수 없습니다.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하나님과 소통해야 진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직접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시기 위하여 죽은 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소통하여 진짜 행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부터 믿기로 결단하시는 분은 잠시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