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만큼만 사용하십니다 딤후 2:20-21 201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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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만큼만 사용하십니다 딤후 2:20-21 2013.7.212018-12-03T20:34:5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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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종종 사람을 그릇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다세멕 도상에서 부르신 후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그릇도 모양과 사이즈가 다르듯이 하나님께서 사용하는 그릇도 아주 다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읽은 본문은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큰 그릇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을 작은 그릇이라고 합니까? 체구가 큰 사람은 큰 그릇이고 체구가 작은 사람은 작은 그릇이라고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에게 어떻게 쓰임을 받느냐에 따라 큰 그릇이라고 하기도 하고 작은 그릇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큰 그릇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런 영광을 얻었습니까? 그의 외모가 탁월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대머리였고, 다리는 휘었고, 매부리코에 단신이었다고 합니다. 160cm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기독교 인물가운데 가장 큰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그를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큰 그릇이 되기도 하고 작은 그릇이 되기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느냐 안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고라자손들은 이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주의 궁정(宮庭)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 (帳幕)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메시아가 오는 통로로 쓰임을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를 천주교에서 신처럼 숭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는 일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고 나서 어떤 응답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왕상 3장). 솔로몬이 하나님의 제단에 일천번제를 드리고 나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그 때에 솔로몬은 “하나님, 저는 나이가 어려서 왕이 되어 이 백성을 통치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그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소원대로 백성들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귀와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만 맞으면 구하는 것도 주시고 구하지 않는 것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사용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 21절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합당한 자가 되어 귀히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글 성경으로는 ‘이런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나중의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본문 20절에서 ‘나중의 것’은 ‘천히 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하게 쓰일 용도로 만들어진 그릇일지라도 깨끗하게 관리하면 주인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귀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릇일지라도 더럽게 사용하면 천한 그릇이 되고, 또 비록 귀하지 않게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그릇일지라도 깨끗이 사용하면 귀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금과 은 그릇이 나무와 질그릇보다 가치 있고 귀한 그릇이지만 그렇다고 당연히 주인에게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과 은그릇이라고 쓰임을 받고 나무와 질그릇이라고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의 인생그릇은 타고난다'(여동재)라는 책이 ‘나비의 활주로’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가 이 책을 쓴 것은 아이의 그릇과 천성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높은 교육열은 좋지만 막무가내 교육은 도리어 아이 망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저자가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가 동양철학을 공부하여 운명론적인 사고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선천적인 요소에 의해서만 완전히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운명적인 사고를 가지면 안 됩니다. 비록 좋지 않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장애자로 태어나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을지라도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 내한하여 여러 교회에서 간증을 하고 ‘SBS 힐링캠프’에도 출연하고 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사는 분들에게 희망을 선물한 닉부이치치가 있습니다. 그는 팔과 다리, 즉 사지 없이 1982년 호주에서 세르비아 출신 목회자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사랑으로 그를 키우려고 했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거듭된 왕따와 놀림에 심한 상처를 받은 닉부이치치는 8세 이후 3차례나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부모는 그런 그를 더욱 감싸 안았고, 비장애인이 다니는 중고교에 넣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학생회장을 지냈고 호주의 ‘로건 그리피스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를 치고, 컴퓨터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비장애인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그가 피 눈물나는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것은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주어진 불행한 상황을 운명적으로 인식하지 말고 오히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창조적인 도전을 해야 합니다. 아주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애쓰고 힘쓰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야곱의 운명이 바뀐 것은 그가 얍복나루터에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매어 달려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쓰고 애쓰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먼저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1절).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깨끗이 해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첫째로, 육신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구조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항상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별히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술과 담배의 유혹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술과 담배의 유혹을 물리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적으로는 우리의 건강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술과 담배가 얼마나 우리의 몸에 해로운지 알고 있습니다. 특히 술보다는 담배가 더 건강에 해롭습니다. 담배는 4천여 종의 물리적 화학적 물질들이 호흡기관에 직접 피해를 줍니다. 폐에서 흡수된 연기는 온몸을 돌면서 암, 심장마비, 당뇨, 고혈압 등 모든 질병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또 담배에는 다이옥신을 비롯한 26가지의 발암물질이 있어서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폐암이나 방광암에 걸린 확률이 두세 배나 됩니다. 간접흡연으로 인해서 각종 질병의 이환율이 2배정도로 높아지기 때문에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온 가족이 다 피해를 입게 됩니다. 또한 술과 담배값으로 지불되는 경제적 손실이 엄청납니다. 담배를 피우려면 적어도 한 달에 십만 원이 듭니다. 술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비싼 술을 마시면 한 번에 수백만 원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데만 돈이 지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질병과 사고로 지불해야 할 재정적인 지출은 엄청납니다. 또한 불미스러운 일이 술로부터 기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윤창중씨 사건도 그가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안면도에서 공주사대부고 학생이 담력훈련을 하다가 5명이나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바다에서 실종되었다는 신고를 받고서도 곧 바로 현장으로 가지 않고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보도가 있자 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요즈음 창세기를 강해하고 있는데 롯의 가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롯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도망을 해서 소알 성에 거했는데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자기 두딸과 동침을 했습니다. 큰 딸을 통해서 난 아들이 모압이고, 작은 딸을 통해서 난 아들은 벤암미입니다. 모압은 모압족속의 조상이 되었고, 벤암미는 암몬 자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압족속과 암몬족속은 이스라엘백성들을 계속해서 괴롭히고 공격하였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동침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근친상간이 벌어진 것은 술 때문입니다. 술은 인생의 모든 불행을 가져오는 무서운 적인 줄을 알고 가까이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몸이 주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매우 존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성전이란 원래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이 인류 역사상 3개가 있습니다. 솔로몬성전, 스룹바벨성전, 헤롯성전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돈을 많이 드린 지은 성전은 솔로몬 성전입니다. 그 성전을 짓기 위해 사용된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어느 학자가 솔로몬 성전을 짓기 위하여 쓰인 돈을 계산해보니까 세계1차 대전에 들어간 비용이 들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세계1차대전 때에 사용된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3,300억 달러입니다. 이것을 달러당 1,200원으로 환산하면 약 400조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몸이 400조나 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산 상으로만 이렇다고 하는 것이지 실제의 몸값은 이보다 훨씬 비쌉니다. 계산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쌉니다. 요즈음에 잘 나가는 운동선수들의 몸값이 천문학적입니다. 한 때는 우리나라 선수 중 가장 몸값이 나가는 선수를 꼽으라고 하면 박찬호와 박세리를 꼽았는데 그 때에 그들이 잘 나갈 때에 받은 연봉이 약 200억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체력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받아도 얼마 안 있으면 은퇴해야 하고 몸을 다치면 선수 생명은 끝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영원히 살기 때문에 우리의 몸값은 영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혹 술과 담배로 신앙적인 갈등을 느끼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듣고 단호히 끊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술과 담배를 끊지 않으면 결코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닻줄을 끊어야 배가 앞으로 나갈 수 있듯이 술과 담배의 닻줄을 끊어야 믿음의 진보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 성도들이 대부분 믿음이 잘자라지 않는 것은 주로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한 채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서울 명동에 있는 중앙투자금융(주)에 다녔기 때문에 담배도 피웠고 직장 동료들과 더불어 술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신 후 2차도 가고 3차도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신 후로는 단 한 번도 가까이 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으로 인한 기쁨이 술과 담배로 인한 기쁨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술과 담배의 굴레로부터 해방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마음과 생각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생각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생각이 더러우면 절대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스스로 좋은 마음을 갖고 착한 생각을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는 생각과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한 생각을 해도 선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인간의 마음이 만물보다 심히 부패해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렘 17:9).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인간의 죄악상을 이렇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 7:20-21).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 싶지만 결과적으로는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참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날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날마다 보좌 앞에 나아가 욕심으로 가득 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의 피로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날마다 가장 깨끗이 씻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만한 마음과 생각입니다.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된 동기가 교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사울이 왕이 될 자격이 없었지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겸손 때문이었고 그가 하나님께서 버림을 받았던 것은 그의 교만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교만해지자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기 마음대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그를 버리셨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해도 마음의 중심이 교만하면 결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자신이 교만한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해도 교만하면 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7).

      셋째로, 믿음을 깨끗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는 믿음이면 다 같지 깨끗한 믿음이 있고 더러운 믿음이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깨끗한 믿음이 있고, 더러운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번째 보낸 편지에서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딤후 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원어로 ‘위선이 아닌’(아뉘포크리투)이라는 뜻입니다. 즉 겉으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으로는 주님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더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예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푸셨습니까? 단순히 병든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고쳐주실 줄 온전히 믿고 예수님께 죽기 살기로 매어달린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으로 보시고 기적을 베푸시고 사용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다윗을 그토록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까? 그의 거짓 없는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아들 중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나라에 블레셋군대가 공격을 해왔습니다. 블레셋군대의 장군 중에 골리앗이라는 장군이 있는 데 그 장군이 용맹이 뛰어나고 키가 얼마나 컸던지 이스라엘 군인들이 모두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다가 자기 민족이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왕에게 허락을 받고 골리앗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 무슨 말입니까? 자신에게는 골리앗을 물리칠 만한 무기가 없지만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으로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장 골리앗 장군을 쓰러뜨리고 그의 목을 베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올 때에 너희에게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오늘 날에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원리는 동일합니다. 구약시대에만 믿음을 보시고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믿음이 있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기를 원한다면 다윗처럼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어령 전문화체육부장관이 올해 80세이지만 회심한 후 크게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번 D3왕의사역세미나에서 이점순집사님이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76세이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나이와 학력과 상관없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몸을 더럽히지 않고, 교만한 마음과 생각을 예수의 피로 씻고,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환경을 탓하지 말고 늘 자신을 깨끗하게 함으로 주님께 붙잡혀 크게 쓰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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