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인도를 받으면 늘 기적으로 살아간다 출13:13-22 201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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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인도를 받으면 늘 기적으로 살아간다 출13:13-22 2014.9.212018-12-03T22:31:4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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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설교에 무엇을 전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에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백성들이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해방된 바로 뒤에 일어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가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보내달라고 하자 거절을 당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첫째는 피 재앙, 둘째는 개구리재앙, 셋째는 이재앙을 넷째는 파리재앙, 다섯째는 악질재앙, 여섯째는 독종재앙, 일곱째는 우박재앙, 여덟째는 메뚜기재앙, 아홉째는 흑암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러나 아홉 번이나 재앙을 내렸지만 바로는 약속을 어겨가며 이스라엘백성들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내리신 재앙이 장자재앙입니다. 바로는 장자재앙을 당하자 항복하고 이스라엘백성들을 해방시켜줍니다. 장자재앙은 애굽에서 난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자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좌우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집집마다 다니며 재앙을 내릴 때에 어린 양의 피를 좌우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여기서 ‘pass over’유월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의 사자가 어린 양의 피를 좌우설주와 문인방에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집은 찾아내 장자를 죽일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어린 양의 피를 집 밖에 바른 것이 아닙니다. 집 안에 발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음의 사자가 집에 들어가서 보지 않고 재앙을 내리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느냐는 것입니다. 더우기 심판이나 구원이 동시에 행해졌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습니까? 그것은 그 일을 행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유월절 심판과 구원은 그 일을 행하신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는 무관하게 보이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10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의 압제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건져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을 좇아내시고 백성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야할 길목에 블레셋 사람들이 진치고 있었기 때문에 가까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르고 편안한 길은 블레셋 사람의 길이라고 불리는 해안 길입니다. 그 길로 가면 보통 4일이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늦어도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오늘날 자동차로는 3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멀리 홍해의 광야의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멀리 돌아가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한 번 17절을 읽겠습니다. “….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한 마디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게 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블레셋 사람의 길은 해안 길로서 전쟁의 위험이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혹은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넘어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이곳에 군대를 파견하여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의 해안에 살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 역시 이곳을 요충지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 길을 통과하려면 그들과 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그곳으로 가면 반드시 그들과 전쟁하게 될 것이고 겁이 나서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겠다고 할 것을 아시고 홍해 광야의 길로 돌려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앞일을 미리 내다보시고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백성들이 해안 길로 접어들어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하기 전에 그 길을 피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가까운 길로 갔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혹 살아남은 자들은 애굽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실을 미리 아시고 먼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불행한 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습니다. 어떤 불행을 만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를 받으면 우리의 미래는 안전합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안전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미래가 안전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편을 고려하여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먼 길로 인도하신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형편을 고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 마음대로 인도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약함과 형편을 고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고려하여 인도하셨듯이 각자의 형편과 처지를 고려하여 인도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과 똑 같이 자신을 인도하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인도하시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최고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단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여 그들을 홍해 광야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했기 때문에 그들 자신도 모르게 몸에 배어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종의 근성입니다. 종의 근성이 무엇입니까? 기회만 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은 기회만 생기면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한 일이 무엇입니까?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고 애굽에서 해방되었지만 나온 후 그들이 한 일은 원망과 불평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첫 번째로 한 원망이 무엇입니까? 그들을 인도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16:3)라며 원망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원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들이 돌아와서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14:1-3)라고 원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광야 40년간 계속해서 원망을 했습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살면서 대를 이어 계속해서 원망과 불평을 일삼아왔기 때문에 비록 자유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습관으로는 가나안 땅의 주인공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먼 길로 돌려서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기 전 누구의 압제 아래에 있었습니까?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종으로 살면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죄와 짝하며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감사와 기쁨은커녕 원망과 불평을 더 많이 쏟아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훈련하기 위해 가까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멀리 돌아가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고난을 허락하셔서 하나님을 찾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들이 잘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문제 있던 가정이 갑자기 문제없는 가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어려움을 허락하셔서 그 어려움 때문에 우리의 삶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 왜 이런 문제들 속에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셨지만 오히려 수없이 많이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단지 죄 사함을 받고 장차 죽으면 천국에 입성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훈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한 조각가가 불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에서 장작하나를 꺼냈다고 합시다. 장작을 불 가운데 그대로 두었다면 그 장작은 불에 타 재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조각가에 의해 그 불 속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에 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말하면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조각가는 불 속에서 건진 나무를 그냥 두지 않고 날카로운 조각칼로 자르기도 하고, 베어내기도 하고, 때론 깊숙이 도려내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그 나무에 칼을 댑니다. 그것은 나무의 입장에서 아픔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조각가에 의해 완성된 아름다운 조각품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만들어져 가는 아픔의 길입니다. 따라서 고통으로 인해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일들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 가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번에 우리는 어마어마한 기증을 약속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빨리 진행되었다면 아마도 10억 정도밖에는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소송이 걸려서 거의 일 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50억이나 기증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돈이 더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유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강미경 집사님 가정에 아들을 빨리 주시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김정현 집사에게 빨리 강남에 제4호점을 열어주시지 않은 것도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훈이 형제에게 빨리 스타트업의 길이 열리지 않는 것도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희망을 주는 것이니라”(29:11).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 길로 돌아가게 하실 때에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멀리 돌아가는 일만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을까요? 한 마디로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추워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이는 광야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막은 일교차가 매우 심합니다. 사하라 사막은 일교차가 심할 경우는 심지어 60도 까지 된다고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행하던 지역은 그렇게 일교차가 심하지 않았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다면 낮에는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여행을 할 수 없고, 밤에는 너무 추워서 안식을 취하거나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지 않으면 그들이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간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먹게 하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의 기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여행 중이라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사막이라 농사를 지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광야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야를 걷고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는 그들에게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모두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의 욕심은 채워주시지 않지만 필요는 채워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신신하게 공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오신실 하신 주‘(393)을 찬송하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필요를 채움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스라엘백성들이 주님의 공급하심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주님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아와 광야 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비록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을 했지만 그들이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로부터 필요를 채움 받기 원한다면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기적적인 방법으로 모든 필요를 채움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것을 알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실 것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치 않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실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항상 우리의 생각과 예상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왕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복원하고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꿈을 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행하심으로 그 꿈을 이루게 하실 줄을 예상치 못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백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인도해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듯이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오늘만 바라보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 두 번의 기적으로 그들을 인도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특별한 날만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계속해서 그런한 기적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날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전능하시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 기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입니다. 누구말대로 기적은 상식입니다.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역의 첫 단추를 기적으로 끼우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사역 내내 하나님의 기적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함께 한 여러분의 삶에도 동일하게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갈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방법과 때에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적을 베푸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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