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시23:1-4 2013.9.22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시23:1-4 2013.9.22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시23:1-4 2013.9.222018-12-03T20:40:48+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주님 한 분이면 만족합니다 시23:1-4 2013.9.22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23편은 다윗의 노래입니다. 시편 23편은 성경에 나오는 시편 중에 시대와 연령, 신분을 막론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짧게 6절이지만 모자람이 없고, 간결하지만 풍성함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이 시를 읽으면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평안과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몇 해 전부터 시편 23편의 여러 버전이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그 중에서 두 가지 버전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경상도버전입니다. 여호와가 내 목자아이가! 내사 마 답답할 끼 없데이/ 퍼런 풀구딩에 내디비지고 저 쓴한 또랑까로 낼로 이끈신데이/ 내 정신챙기시사 올케 살라카심은 다 저그 체면 때문이라카네/ 내 죽을 뻔한 골짜구 디기 껌껌한데서도 간띠가 부어 댕길 수 있음은 그 빽이 참말로 여간 아이라! 주의 몽디와 짝대기가 낼로 지키시고 내 라이벌 죽일 놈 문디자슥 앞에서 낼로 팔팔 키워 주시네/ 내 인생이 아무리 복잡타캐싸도 저 양반이 맨날 지키줄끼니까 내사 우짜든지 그 옆에 딱 붙어갖고 죽어도 안떠날란다.

       다음은 전라도버전입니다.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 그분이 나를 저 푸러브른 초장으로 뉘어불고 내 빼친 다리 쪼매 쉬어불게 할라고 물가시로 인도해뿌네! (어쩨스까! 징한 거…) 내 영혼은 겁나게 끌어 땡겨불고 그 분의 이름을 위할라고 올바러븐 길가스로 인도해부네 (아따 좋은그..) 나가 산꼬랑가 끔찍한 곳에 있어도 겁나블지 않은 것은 나를 지켜준다 이거여! /아따! 주께서 저 사가지 없는 놈들 앞에서 내게 밥상을 챙겨주시고 내 대그빡에 지름칠해 주싱께로 참말로 나가 기뻐블그마이. 내가 사는 동안 그 분의 착하심과 넒으브른 맴씨가 나를 징하게 따라당깅께로 나가 어찌 그 분의 댁에서 묵자고 안하겄냐..(아따 좋은그)

     

    저는 시편 23편을 읽을 때마다 항상 마음에 평안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으로는 솔직히 궁금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게 뭔지 아십니까? 일반적으로 다윗이 시편 23편을 지은 시기는 편안한 상황이 아니라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험한 상황으로 보는데 그가 어떻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결코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가 블레셋장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자 한 순간에 양치는 목동에서 사울왕의 사위가 되어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그의 인생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한 번은 다윗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길가에서 환영하는 여인들이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요라고 외치자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생각하지 않고 왕위를 찬탈할 원수로 생각하여 기회만 있으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의 타오르는 질투와 시기의 불길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그토록 조그마한 나라에서 다윗을 죽이려고 13년 동안이나 이를 잡듯이 추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적국에 가서 미친 짓을 하며 피신하기도 하였고, 도망을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 제사장만이 먹는 진설병을 먹은 일로 진설병을 내어준 제사장뿐만 아니라 85명의 제사장이 죽임을 당했고 그곳의 남녀와 아이와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까지 칼에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의 생애는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의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라는 고백을 통해서 그가 죽음의 목전에 까지 갔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의 내 원수의 목전에서라는 고백을 통해서는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원수지간으로 지내야 하는 날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에 부족함이 없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다윗이 부족한 부분을 특정하지 않은 것은 모든 부분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부족함이 없다는 동사의 시제가 미완료형 입니다. 문법상 미완료형 시제는 지속성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즉 이제까지도 부족함이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은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완벽한 만족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부족함이 없는 이유를 뭐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다윗은 그 이유를여호와가 자신의 목자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여호와가 자신의 목자라는 것이 어떤 의미이기에 고통가운데 살면서도 부족함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 먼저 목자와 양의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를 잘 설명한 책으로는 아주 오래전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간한 핍립 켈러의양과 목자입니다. 그 책을 보면 양이 어떤 습성을 갖고 있고 목자가 양을 어떻게 돌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목자와 양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자이신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을 통해서입니다. 예수께서 자신과 양의 관계를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011-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우리는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목자는 양을 사랑하기에 목숨까지 내어주고 양은 그 사랑을 거져 받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목자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알 때에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장 행복함을 생각할 때에 어미의 품에 안긴 갓난아이를 연상합니다. 왜 어미의 품에 있는 아기의 모습에서 최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까? 어미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어머니의 사랑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 우주를 만드신 분이 목숨 바쳐 사랑하시는 대상자라는 것을 안다면 어찌 부족함을 느끼겠습니까?

       따라서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말 나는 예수님의 사랑에 만족하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사랑에 만족하십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목자라고 고백하지만, 예수님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돈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입으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만 삶으로는 예수를 부인합니다. 우리는 외적인 조건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양에게 목자가 절대적인 존재이듯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목자로 모시고 살아야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경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목자의 사랑을 맛본 양은 부족함을 모릅니다. 환경이 열악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을 느낍니다. 그래서 다윗은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34:8-10)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다윗의 목자이심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유대 광야는 지각 변동으로 골짜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골짜기가 남북으로 갈라지지 않고 주로 동서로 갈라졌습니다. 골짜기가 남북으로 갈라지면 해가 뜰 경우 골짜기에도 빛이 들어오지만 동서로 갈라지면 정오 외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합니다. 그래서음침한 골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침한 골짜기에는 갈라진 바위틈에 들짐승이 숨어서 더위를 식히면서 사냥감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들짐승이 덮쳐서 양들을 잡아먹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목자가 양을 데리고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목자는 이런 위험을 무릎 쓰며 양을 이끌고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양들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기 위해서입니다. 양들이 먹이를 마음껏 먹게 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초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초장으로 가려면 반드시 골짜기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상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상에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만나야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믿음이 강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치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의 골짜기를 걷고 있을지라도 주님의 목자되심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꼭 확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골짜기를 통과하는 시간이 아주 짧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골짜기는 산과 산 사이에 움푹 패어 들어간 곳입니다. 모든 골짜기는 거리가 매우 짧기 때문에 골짜기를 통과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환난은 잠시 뿐입니다. 우리를 삼켜버릴 것 같은 고난이 닥쳐와도 곧 지나갑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 1:6-7) 이 세상의 부귀와 영광도 지나가듯이 이 세상의 그 어떤 고난도 지나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이 고난은 곧 지나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번 따라서 합시다.“이 고통은 곧 지나간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윗은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목자이시며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천국 보좌에 앉으셔서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라고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삶의 골짜기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지라도 결코 혼자 통과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31:8).“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43:2). 다윗은 자신이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 주께서 함께 하심을 더욱 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는 태양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태양은 여전히 하늘에 떠 있습니다. 단지 골짜기에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짜기 잠시 크게 보일뿐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따라서 삶의 골짜기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에 믿음으로 빛 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남극 탐험대 대장인베어드의 간증입니다. 그가 남극에서 꼭짓점을 확인하기 위해서 캠프에서 나갔다가 강풍에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무전기마저 얼어붙어서 연락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가야할 방향조차 잃어버리고 몸은 점점 얼어붙어가자 이제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 가운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그래서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한 치도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 속을 그냥 걸어갔더니 베이스캠프가 있더랍니다. 때때로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내가 혼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유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하시딤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어머니가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랍비에게 갑니다. 그러자 랍비가 아이에게 질문을 합니다.“얘야, 하나님은 어디 계시니? 네가 나에게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를 말해 준다면 동전 한 개를 주겠다.”그러자 아이는 반대로 랍비에게 자신의 질문에 답을 주면 동전을 두 개 드리겠다며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선생님!!, 저에게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어딘지를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고난의 자리라고 하나님께서 안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더욱 더 가까이 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을 확신해야 합니다. 다윗은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막대기와 지팡이는 목자가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지팡이는 일반적으로 길고 가늘며 손잡이 끝은 낚시 바늘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목자는 지팡이를 사용하여 양을 관리하고 보살피고 인도합니다. 어린 양들이 흩어지려고 할 때에 지팡이로 양의 목을 걸어서 어미 양들에게 몰아주기도 하고, 목자 곁으로 양들을 끌어오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목자가 지팡이를 양들의 옆구리에 살짝 갖다가 대기만 해도 양들은 목자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즉 지팡이는 목자가 양을 목자 가까이 두고 싶을 때에 사용하는 도구로서 목자와 양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의미합니다. 또 목자의 손에는 막대기가 있습니다. 목자는 지팡이로 양들을 보호해줍니다. 그래서 목자가 손에 막대기를 들고 있으면 양들은 위안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양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무기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양떼를 괴롭히는 뱀을 때려잡거나, 들개나 맹수들을 쫓아버리거나, 사자와 곰을 물리칠 때에 막대기를 사용합니다. 양이 제멋대로 다른 길로 가거나 독초가 있는 곳으로 접근 하거나 그 밖에 어떤 위험물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발견되면 목자는 지체하지 않고 막대기를 던져서 그 양을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또한 양은 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풀을 뜯어 먹고서 바로 주저앉아 잠을 자면 땅의 냉기가 올라와서 설사를 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목자는 막대기를 가지고 잠자고 있는 양을 찔러 깨우고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면 오늘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는 무엇일까요? 즉 목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무엇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마귀가 공격할 때에 무엇으로 물리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평신도사역을 강하게 외치는 것은 여러분의 손에 말씀을 들려주고 말씀을 사용하므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을 보호하시고 풍성함으로 인도하시고 여러분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다윗처럼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으로부터 이 고백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라며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