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정말 성령을 갈망합니다. 행1:12-14 2:1-4 201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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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정말 성령을 갈망합니다. 행1:12-14 2:1-4 2013.5.192018-12-03T20:30: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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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왜 교회들이 오늘을 성령강림주일로 지킬까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 만에 성령께서 오셨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난 3월 31일에 부활절을 지켰는데 그날로부터 50일 째 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시대가 열렸지만 신앙생활을 성령으로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듭니다. 한 번 여러분 스스로를 살펴보십시오. 성령님과 자신이 그리 친밀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과 친밀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을 받아 신앙생활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받기 전, 먼저 성령에 대하여 몇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성령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납니까? ‘능력’이 떠오를 것입니다. 맞습니다. 성령과 능력은 분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능력보다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삼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삼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과 친밀하게 교제하므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께서 삼위의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성령과 친밀하게 교제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성령을 능력으로 이해하고 교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베니 힌 목사가 “Good morning Holy Spirit, 안녕하세요, 성령님?”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성령을 인격으로 이해하여 성령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을 만나도 만날 때마다 인사하듯이 성령과 수시로 인사하고 교제해야 합니다.

      둘째로. ‘누가’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셨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령께서 스스로 이 세상에 오신 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도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마치 성령께서 스스로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령께서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분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복음 14장 26절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누가 성령을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다음은 요한복음 15장 26절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누가 성령을 보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두 성경구절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성령님은 스스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을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께서 보내셨다고 주장하는 학설을 ‘이중발출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께서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시듯이, 하나님께서 다시 영으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성령을 보내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과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자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미 구원 받은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구원 받은 후에도 성령을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실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을 받아 충만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성령을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할까요? 여러 가지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지 않으면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수십 년간 했어도 전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이유는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하게 하기위한 것입니다(요 15:26).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못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자는 장차 천국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충만을 받아 많은 영혼을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종노릇을 하다가 예수님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죄에게 종노릇하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처럼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결코 우리를 그렇게 살도록 버려두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전처럼 죄 가운데 살도록 하여 우리를 종노릇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이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싸워 승리하는 길은 오직 성령 충만을 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라고 권면하고 있듯이,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한 길,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하지만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은 죄의 정욕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도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어떻게 우주를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주님을 만났는데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예수를 믿지만 삶이 변화되지 않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믿지만 삶의 변화가 별로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변화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혹 여러분 중에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었는지 안 변화되었는지 확인해 보고 싶으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는지를 점검하면 됩니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삶이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여러분에게 사랑이 있습니까? 희락이 있습니까? 화평이 있습니까? 오래 참음이 있습니까? 자비가 있습니까? 양선이 있습니까? 충성이 있습니까? 온유가 있습니까? 절제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서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령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와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숨어있는 죄를 토설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와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회개 없이는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철저히 회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먼저 길선주장로는 1907년 장대현교회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친구의 유언으로 재산을 관리하던 중 100달러를 사취했다며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중가운데서 일어나 교회 가까이 있는 계곡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손해를 입힌 자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보복하려고 했던 것을 회개했습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간음, 증오, 시기, 질투 등 죄를 지었다고 흐느껴 울면서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강하게 임하심으로 대부흥 운동을 촉발시켰던 것입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님이 지금처럼 대형교회 목회를 하기 전이었습니다. 그 교회 사무원으로 근무했던 후배에게 직접 들었는데 김 목사님은 밥 먹는 것보다 바둑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둑을 좋아했던지 한번 바둑을 잡으면 밤새도록 두다가 새벽예배에 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둑에 빠지다 보니까 주일날 강단에 서면 성도들 머리가 바둑 알로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둑을 끊어야 되겠다고 결단하고 노력해보았지만 쉽게 되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하루는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를 하면서 바둑 알을 다 쓰레기통에 내다 버리고 아끼던 바둑판을 도끼로 쪼개어 불에 태웠다고 합니다. 그러자 바둑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목회에 큰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회개하는 자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담임목사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지 못하고 돈 명예와 권세를 더 사랑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인간의 계산과 방법으로 살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갈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갈망하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을 갈망해야 성령께서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하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피 107: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동안 토미 테니 목사가 쓴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라는 책이 한국에 큰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토미 테니가 친구 교회의 주일 예배에 설교 초청을 받고 호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묵직하게 느껴졌고 성령께서 그의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 순간 몸이 떨렸고 자신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고 합니다. 설교할 시간이 되어 교회로 갔는데 예배당에 들어서자마자 성령의 임재가 너무 강력하여 호흡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들도 성령의 강력한 임재로 말미암아 연주도 못하고 노래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는 성경을 읽고 난 후 간신히 강대상 귀퉁이를 붙잡고 “우리는 더 이상 그 분의 손이 아니라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그가 3m정도 뛰어 올랐다가 뒤로 떨어져 넘어졌고 그 바람에 강대상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그러자 계속해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밤마다 수백 명씩 줄지어 나왔기에 계속해서 집회를 인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토미 테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원하느냐?” 그러자 그는 “네, 아버지. 당신을 원합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 어떤 것보다 성령을 원해야 합니다. 즉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성령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성령보다 급하게, 뜨겁게 사모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라고 고백한 것처럼 성령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셋째로,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을 마음으로만 사모하지 말고 성령을 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여 명이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받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십니다. 성경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인 부요를 누리고 있지만 주로 육신적인 것만 구하고 성령을 구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한 번 보십시오. 우리 중에 아무리 가난한 성도라도 과거 왕들이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 제목을 바꾸어야 합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의 것만 구하지 말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성령의 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 충만을 구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성령을 구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보시면 제자들이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생명에 위협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 그를 추종하는 제자들도 죽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성령충만을 받기 위해서 그 어떤 대가라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은 서로 마음을 같이 하기 힘든 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크게 세 그룹 즉 12제자, 여자들, 예수님의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나름대로 독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성이 너무 뚜렷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서로 자란 배경이 다르고, 학력이 다르고, 신앙경력이 달라도 성령을 받는 일에는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셋째로, 계속해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계속적으로’ 기도했다는 말이 없지만 헬라어 원전이나 영어번역본에는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을 한두 번 구해서 받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구해도 충만히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성령을 지속적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계속적으로 기도하자 오순절이 이르자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를 동반하여 각 사람에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으로 각 나라 언로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충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필수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절대로 졸업할 수 없듯이,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절대로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믿음으로 살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을 갈망하고, 성령을 구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이기 때문에 잠시 성령 충만을 받기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주 여러분들에게 두 번이나 “금주는 성령강림주일!! 성령을 사모하면 성령충만을 받아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오늘 예배에 참석하시면서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오셨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충만 받기를 위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잠시 회개하고 성령 받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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