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새 일을 행하십니다 사 43장 14-21 2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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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새 일을 행하십니다 사 43장 14-21 2013.1.62018-12-03T20:20: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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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드리기 전 제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열심히 말씀을 준비했어도 여러분들이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말씀을 사모한다고 모두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주 장사 루디아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청종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을 열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6:14). 시편 기자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119편 18-19)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우리 함께 말씀을 받기 전, 기도하시겠습니다. “주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주소서.”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소망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불순종을 하자 그들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70년간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진 어느 덧 시간이 흘러 예정된 70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주시면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18절). 그들이 기억하지 말아야 할 이전 일이 무엇이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옛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우리는 출애굽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40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냈지만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10가지 중 마지막 재앙이 장자재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자 재앙을 내리실 때에 누구든지 어린양의 피를 발라 좌우설주와 문인방에 피를 바르면 그것을 보고 죽음 사자가 그냥 지나쳐버렸지만 피를 바르지 않은 자는 바로왕의 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어쩔 수 없어 그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자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추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의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고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놓여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백성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를 바다에 내밀어 홍해를 갈라지고 하셨고 바닷물 사이로 길을 내어 지나가게 하시고 그들이 다 나온 후 애굽의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켜 버리셨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출애굽사건은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엄청난 사건을 기억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오직 출애굽 사건만 일으키시지 않고 계속해서 또 다른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큰 기적으로 그들을 해방을 시키셨지만 그것은 과거사에 불과하니 기억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와 성공은 모두 빨리 떨쳐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기억해서 유익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과거에 매여 있고 집착해 있는 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라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라’ 로 옮긴 히브리 낱말은 “무엇을 보라!”는 명령의 뜻이 아닙니다. 반드시 새 일을 행할테니 두고 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 시에는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를 홍해바다에 수장시키셨지만 이번에는 광야에 길을 만들어 주실 뿐만 아니라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시고 그 물을 마시게 하고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제국에게 짓밟혀 폐허가 되어서 승냥이와 타조가 노니는 곳이 되었지만 택한 이스라엘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을 시키시킬테니 그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계속해서 또 다른 새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더 이상 출애굽 사건과 같은 기적은 과거의 일로 생각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만 기적을 행하시고 지금은 침묵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에 엄청난 기적을 경험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주님께서 또 다시 다른 기적을 베푸실 것을 믿고 새 일을 행하실 주님을 기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를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셨는지 아십니까? 고레스입니다. 고레스는 파사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압제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스스로 내보냈습니다. 그냥 내보내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라고 재료까지 다 제공해 주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들은 누구든지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꿈꿀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엄청난 기적을 행하시기 전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에게 소망의 생각을 갖게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의 생각이 곧 그 사람이라(잠 23:7)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한 여인이 눈물을 흘리며 신앙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그녀는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을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기 때문에 남자는 전부 자기 아버지 같은 줄로만 알고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교제 기간 동안에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았던 사람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자 술주정을 하며 손찌검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팔자가 기구합니까? 친정아버지가 술주정이 심하여 늘 술을 마시고 와서는 어머니를 때렸기 때문에 어머니는 온갖 고생을 하며 우리들을 키우셨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 밑에서 어린 시절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같은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남편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나다니요.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십니다.” 그러자 상담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매님은 운명을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지만, 실은 자매님 자신이 그런 운명 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자매님은 남자들이 모두 자매님의 아버지 같다는 잘못된 자화상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가족을 잘 돌보며 가정에 충실한 남편을 마음속에 그리기보다는 술 먹고 난폭하게 손찌검이나 하며 게으른 남편을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그것이 자매님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는 것입니다. 먼저 자매님의 마음속에 파놓은 함정을 메꾸십시요. 마음의 생각이 주 안에서 올바르게 될 때, 하나님은 자매님의 생각대로 자매님을 변화시키고 환경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자매님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그림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구하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새 일을 꿈 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새 일’이란 단지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새 일입니다. 또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죄 문제를 해결 받으려면 짐승이 대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단 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이것 역시 한 번도 없었던 전혀 새로운 제사입니다. 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으로 끝나지 않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과거에도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혹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다시 살아나시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보다 더 새로운 일은 없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새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아담의 족보에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옮겨져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최고의 새로운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천국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새 길이 되십니다. 따라서 새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떤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살면서 잘못을 깨닫고 온전히 회개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끝까지 믿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처음에는 곧바로 다시 고향 땅에 돌아갈 수 있다는 거짓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희망을 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길이 보이지 않자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고 원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고 말하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무조건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면서 70년이 차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에는 절대적인 은혜와 상대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은혜는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은혜이고 상대적인 은혜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고 베푸시지 않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신 것은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 중 하나님을 감동시키기는커녕 삶의 고통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절망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울도 이런 은혜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잘 믿는 자들을 찾아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조차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였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권적으로 찾아가셔서 그를 구원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가장 위대한 자로 사용하셨습니다. 바로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복 받을 만한 짓을 하지 않았어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일방적으로 바벨론에서 해방시켜주시겠다는 약속하신 것처럼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때문에 우리에게 베푸시는 일방적인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 느껴지면서 이런 기도가 드려졌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에도 이런 은혜를 주세요. 주여, 우리 성도들 가정에도 이런 은혜를 주세요. 주여, 우리 성도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에도 이런 은혜를 주세요. 주여, 우리 성도들이 운영하는 사업장에도 이런 은혜를 주세요.”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백성을 해방시키셨을까요? 본문 이사야 43장 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복 받을 짓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새 일을 행하시는 것은 그 축복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을 자격이 없을지라도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로 하여금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에 목말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다 존재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동안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된 책 중에 미국의 릭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릭 워렌 목사는 우리가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면 삶의 의미가 달라지고, 인생이 단순해지고, 초점을 맞춘 삶을 살게 되고, 살맛나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마지막날에는 큰 상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살면 바로 이런 축복을 받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2013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동신교회에 새 일을 행하셨지만 또 다른 새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하고 있을지라도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붙잡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이 약속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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