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시나요 행8:26-40 2014.8.24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시나요 행8:26-40 2014.8.24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시나요 행8:26-40 2014.8.242018-12-03T22:29:46+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시나요 행8:26-40 2014.8.24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후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능력에 한계가 있지만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앞날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다 아시고 어떤 문제든지 다 해결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335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편 기자는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48:14)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주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 번 여러분 스스로에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 자신 있게 나는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고 대답하실 수 있는 분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인도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고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봉독해드린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8장을 통하여 빌립이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집사에 불과했지만 예루살렘교회에 큰 환란이 불어 닥치자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서 더러운 귀신을 좇아내고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등 많은 기적들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마리아성 사람들이 하늘같이 존경하는 마술사 시몬을 성령의 능력으로 굴복시켰습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빌립을 좇아다녔고 사마리아 성 전체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전도 사역을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께서 그에게 일어나서 남으로 행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씀드린 대로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서 사역을 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은 광야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여기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인적이 드문 산으로 들어가 살라고 하시면 쉽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빌립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즉시 순종했습니다. 저는 빌립이 어떻게 성령의 음성에 즉시 순종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여러 번 읽는 중에 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27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7절은 일어나 가서 보니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빌립이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이 앉아서 무엇을 했을까요? 물론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앉아 있을 때에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던 것으로 보아 그가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 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립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로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기도를 드리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당연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만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고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해도 주님의 인도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성숙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직 영적으로 어리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어린아이에 머물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숙해서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려면 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기본적으로 예수님과 두 가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말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는 말은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실 뿐만 아니라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인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만 실제로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주인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광야로 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광야로 가보니 어떤 사람이 수레를 타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수레에는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에피오디파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레를 보는 순간 성령께서 빌립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29). 이것은 성령께서 빌립에게 두 번째로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명령,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는 명령과 첫 번째 명령,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는 명령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 명령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성령께서 처음에는 나아갈 장소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시지를 않았습니다. 즉 첫 명령은 포괄적입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나아갈 대상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즉 나중에 들은 명령은 구체적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점진적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시지 않고 단계적으로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창세기 12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인도하실 때에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인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아브라함에게 그가 들어갈 땅을 구체적으로 미리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요셉을 통해서도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은 30세에 당시 가장 강대한 나라인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가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17세에 꾼 꿈은 열한 별과 해와 달이 자기에게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한 별은 그의 형제들을 말하고 해와 달은 그의 부모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그가 단지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될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진적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래를 알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과 성취의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시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둘째로,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를 통하여 사역하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어날 일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셋째로, 신약시대에는 예언의 은사를 주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말씀 자체가 예언이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210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데살로니가후서 520예언을 멸시하지 말라”(살후 5:2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217-14절에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 빌립의 처녀 딸 넷이 바울에게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미래의 일을 알게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과 상관없이 단순히 개인의 길흉이 궁금해서 미래를 알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 3일 간 금식을 하였기 때문에 거듭나는 순간부터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영적인 은사들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언사역도 하고 소위 신령하다는 예언사역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른 신앙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언기도를 받는 일에 빠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하는데 예언사역자의 말을 더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예언을 정확히 해도 예언자의 말을 믿으면 안 됩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가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예언자의 말을 더 믿었기 때문입니다. 계시를 받는 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동일하게 예수께서 재림하실 날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따라서 예언을 받아도 참조할 뿐 결정의 근거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운명적인 신앙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자주 받다보면 운명적인 사고를 갖게 됩니다. 물론 우리의 인생에는운명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 즉 출생시기, 출생국가, 성별 등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는 창조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로, 예언이 부작용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언은 내용에 따라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좋은 일에 대한 예언을 받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각각 다릅니다. 전자의 경우는 예언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취되었다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후자의 경우는 아직 어려운 일이 닥치지도 미리 염려하고 근심을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말씀 중심으로 해야지 신비한 체험에 의존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빌립에게 수레로 가까이 가라고 하셨을 때 빌립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30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빌립이 달려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는 광야로 가라고 명령하였을 때에는 일어나 갔다’(2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사 광야로 가서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이사야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는 달려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빌립이 가사 광야로 가라고 했을 때에는 달려가지 않다가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달려갔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면 지체하지 말아야합니다. 빠르게 일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더욱 신속하게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영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내시가 광야 길을 가다가 강도에 만나서 죽을지 어떻게 압니까?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신속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받고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불신영혼에 대한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다면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영혼 구원을 가장 우선적인 일로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것을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이 내시처럼 복음을 알지 못해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달려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제 복음을 전한 빌립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39-40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이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빌립이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에게 세례를 주고 물위로 올라오자마자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곳으로 옮기셔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대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광야에서 복음을 전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사마리아에서 광야로 가게 하셨고, 그곳에서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빌립이 아소도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가사 광야에서 번쩍 들어다가 아소도로 옮기셔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과 상관없이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시자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를 썼지만 그것도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밤에 마케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그들을 도우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뜻으로 알고 유럽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계획과 생각대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16: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초월적인 역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빌립이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갔습니다(39). 여기서 이끌어갔다는 말은 잡아채듯 데리고 가셨다는 뜻입니다. 즉 물에서 올라오는 빌립을 낚아채서 아소도에 갖다 놓았다는 것입니다. 순간에 공중이동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를 맛보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 놀라운 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주님의 인도를 따라 애굽에서 나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할 때에 어떤 일을 경험했습니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습니다. 반석을 쳐서 나오는 물을 마셨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이 왕에게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옥사장이 번연에게 밤에 조용히 집에 가서 쉬고 오시죠라고 했습니다. 번연은 집으로 가더니 조금 후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왔습니다. 놀란 옥사장이 왜 벌써왔느냐?”고 묻자 번연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집에 가서 쉬는 것이 성령의 뜻이 아닌 것 같아 다시 돌아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왕이 번연이 옥에 잘 있는지 보려고 확인 차 옥에 찾아왔다가 옥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옥사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동함으로 나도 살고 당신도 살아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동하시되 마음대로 집에 갔다 오고 싶으면 갔다 오십시요.” 지금도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강릉 초당침례교회에서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통합측에 속한 교회를 출석하였습니다. 40여명 정도가 모이는 개척교회였는데 그 중에서 한 청년 자매가 눈에 뜨였습니다. 믿음이 좋아보였고 대학을 졸업한 자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부잣집에서 가정도우미로 일하는 자매였습니다. 그와 친해지자 그녀가 어떻게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주인집 가족들이 어떻게 구원 받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강원도 한계령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 5학년 나이에 서울에 가정부로 취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집 가까운 교회에 다니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녀의 주인 가정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 남편의 기일을 맞이하면 늘 제사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영접한 후에, 제사에 수종을 들 수 없다고 하자 집 주인이 분노하면서 그 자매를 때렸습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호흡은 뛰고 있는데 아무리 일으켜도 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다급해지자 무당을 불러 굿을 했지만 조금도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굿을 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녀의 신발이 집안에 있는데 방안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온 식구들이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자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기는 오산리기도원인데 신발을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하나님께서 빌립을 광야에서 낚아채서 아소도에 갖다 놓으셨듯이, 그 자매를 번쩍 들어 오산리기도원으로 옮겨놓으셨던 것입니다. 그 자매가 미국으로 시집을 가서 아주 잘 살고 있고, 제가 신학대학원 다닐 때에 매달 100불씩 3년간 헌금을 보내주어서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빌립집사나 그 자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자신의 생각대로 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인도는 특별한 사람만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듯이,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인이심을 믿고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하면 주님께서 뜻을 알게 하시고 그 뜻대로 인도해주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 40년을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았듯이, 여러분 모두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