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계신가요? 수 10장 6-15 201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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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계신가요? 수 10장 6-15 2013.2.242018-12-03T20:23: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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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말씀카드를 제비뽑았습니다. 축복의 말씀과 우리에게 바라시는 말씀을 각각 하나씩 뽑았습니다. 제가 약속의 말씀을 명함카드 사이즈로 만들어드린 것은 가지고 다니시며 암송하고 그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여 그 약속대로 복을 받고 또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 개의 말씀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혹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카드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다시 붙잡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호수아는 모세가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나안 땅에 살던 7족속들은 벌벌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백성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고 요단강을 건넜는지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자신들을 멸망시키러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여러 족속들 가운데 기브온 거민들이 꾀를 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먼 곳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변장을 하고 여호수아에게 찾아가서 “우리를 살려만 주신다면 당신들의 종이 되어 섬기겠으니 우리를 죽이지 않기로 약속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이 일에 대해 묻지도 않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살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멀리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멸망을 시키라고 명령하신 가나안 7족속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죽이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일을 하며 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가나안의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기브온 족속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자신들과의 동맹언약을 배신하고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들을 치고자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기브온 족속이 여호수아에게 속히 올라와 도와달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6절). 길갈에 있던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의 요청을 듣고 곧바로 일어나 모든 용사와 더불어 싸움터로 올라갔습니다(7절). 그런데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여호수아에게 들려왔습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8절). 그래서 여호수아는 그 약속을 믿고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을 갑자기 습격하여 살육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도망가는 가나안 연합군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내리셔서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 덩이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아모리 족속 연합군과 전투를 할 때에 큰 우박 덩이를 떨어뜨리셨을까요?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모리 족속 연합군을 공격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모두 그의 손에 넘겨주었고 그들 중에 한 사람도 그를 당할 자가 없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모리 족속 연합군에게 쏟아 부으신 것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큰 우박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것으로만 적군을 공격하시지 않고 또 다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연합군을 추격하면서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라고 기도하자 그가 기도한 대로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지구는 태양을 중심해서 돌고 있기 때문에 태양이 멈춘다는 것은 지구가 도는 것을 멈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구가 위도에 따라 다르지만 적도를 중심으로 시속 1670km/h로 돌기 때문에 지구가 멈추면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현대과학은 태양의 중력이 중단되어 지구가 그 궤도 진행을 멈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도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을 기상이변 또는 일식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이 못하실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여호수아의 명령기도로 해와 달이 궤도에서 실제로 멈춘 것이 사실임을 밝혀냈습니다. 1960년대, 우주 과학자들이 미래에 쏘아 올릴 인공위성의 궤도를 결정하기 위해 컴퓨터로 지금부터 10만 년 전까지 소급하여 태양과 달의 과거 궤도를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산하던 도중에 정확하게 하루 즉 24시간이 빠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원인을 몰라서 고민하고 있을 때 연구팀의 과학자들 중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여호수아 10장 13절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수 10:13)는 기록이 있음을 기억해 내고 컴퓨터를 그 당시로 돌려 여호수아 시대 천체들의 궤도를 조사한 결과 23시간 20분 동안 천체들이 정지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야 하는데 40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40분이 모자라는 것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십니까? 열왕기하 20장 10-1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사형선고를 통보받고서 통곡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서 다시 그가 죽지 않고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히스기야 왕이 그렇게 자기를 낫게 하실 징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왕을 낫게 하실 징표를 주시는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아니면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히스기야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하지 말고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렇게 되기를 하나님께 구하자 그 기도대로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림자가 뒤로 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도 지구가 멈추어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바퀴가 360도이고 한 바퀴를 도는데 24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0도가 뒤로 물러갔다는 것은 40분이 늦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하루 24시간의 행방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어떻게’ 해와 달리 멈추었느냐가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해와 달을 멈추게 하셨는가라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여호수아가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본문 1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태양과 달이 머문 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의 원수인 가나안 연합군을 공격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양과 달이 지면 어두어져 아모리 연합군을 공격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 멸할 때까지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아모리 족속 연합군을 붙여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신실하십니다. 우리는 약속을 해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토록 자신의 약속에 대하여 신실하신데 우리는 그 약속을 얼마나 신뢰하느냐는 것입니다. 요즈음 창세기를 강해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해 아담을 책망하실 때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맺었은즉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묵상하며 새로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었지만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금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다’는 말이 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데서 기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이 말씀을 믿고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마치 노아시대에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육신적인 일에만 온갖 관심을 쏟았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권위와 전통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면은 그동안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The great book’이 아니라 그냥 book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여러분 같으면 이 명령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믿음이 좋다하여도 그렇게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다음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그를 결박하고 제단 위 나무위에 올려놓고 칼로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브라함이 100세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게 해주시고 그를 통하여 민족을 크게 번성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25년 만에 성취가 되었습니다. 남자 나이 100세, 여자 나이 90세에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는 백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는 이미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가 아들을 죽이셔도 그를 다시 살리시고 그를 통하여 민족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태양과 달을 향하여 명령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되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보십시오.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발각되면 사자의 밥이 되고 화형을 당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찬송을 부르면서 죽어갔던 것은 죽어도 다시 살리신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후에 영원히 살 것만을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으면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약속을 믿는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2013년, 우리 교회에 주신 약속이 있습니다. ‘새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뽑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믿고 우리는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도 금번에 시편 81편 10절을 뽑았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저는 이 말씀을 붙잡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백성들이 나온 것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저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믿음으로 기도하는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단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만 할뿐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이 약속한 말에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처럼 신실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이 말한 약속을 지킨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통합측 총회장을 지낸 김종대 목사님이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권사님 가정을 심방했는데 그분의 남편은 당시 감사원의 감사위원이었고 전 김대중 대통령의 사돈되는 분이었습니다. 마침 그분이 집에 있어서 김 목사님이 “신 선생님, 이제 교회 좀 나오시지요?.” 그러자 그는 “나라 일이 너무 바빠 요즘은 나갈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나갈께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나중에 언제 나오실래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10년 후에는 정말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그러면 저도 10년 후에 전화를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0년이 됐습니다. 목사님이 바로 10년째 되는 그날 정확히 전화를 해서 “신 선생님, 저 김종대 목사입니다. 10년 전에 저하고 약속하신 것 기억하시죠?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우리 교회 나오셔야지요?”라고 하자 그분이 깜짝 놀랐습니다. 10년 전의 약속을 하루도 안 넘기고 기억하고 바로 그날 전화를 하니 감동 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 다음 주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도 잘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에 신실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지 않을 때에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였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약속을 했으면 꼭 지키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성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시 15:4)고 한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인 불신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믿고 사먹을 만한 음식을 찾기 힘들고,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심지어 성도는 목사를 믿지 못하고 목사는 성도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약 100년 전만 해도 평양에서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 자체가 보증수표였지만 지금은 맛을 소금처럼 길가에 버려져 짓밟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끝까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신실하게 살아가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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