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섬겨야 할 이유 있습니다 눅8:1-3 20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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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섬겨야 할 이유 있습니다 눅8:1-3 2016.3.62018-12-03T23:03:5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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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 두 가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만 과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드리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려도 주님을 사모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을 온전히 대접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책망을 받는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이 세상에서 두려움과 죄와 고통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심판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정도로 크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잊을지라도 자신이 얼마나 큰 죄에서 사함 받았는지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확신하는 것으로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의 복음 사역에 동참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의 ‘그 후’는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 죄인인 여인을 용서하신 사건이 있은 후를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그 여인을 용서하신 후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각성과 각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각성과 각 마을을 두루 다니셨다’는 것은 큰 도시뿐 아니라 작은 마을까지 친히 찾아가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복음을 전하실 때에 한 장소에만 머무시지 않고 친히 구원할 자들을 찾아 가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예수께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온 곳, 역시 복음을 전하시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건물 안에만 갇혀 계시지 않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찾아 다니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건물 안에만 갇혀있지 말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라고 말씀하시고, 마가복음에서는 마지막으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건물을 짓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 교회의 지체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사역자로 세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오직 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림으로 주일성수를 했다는 안도감에 빠져있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가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무리한 건축으로 빚을 갚지 못해 이단으로 넘어가는 크고 작은 교회건물이 날로 늘어가고 있고, 세상이 복음화 되기는커녕 도리어 교회가 세속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역하신 방법을 보면서 건물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직장과 일터를 던져버리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복음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직장과 일터를 복음을 전하는 장소로 삼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실 여러분의 직장과 일터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순종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입니다. 하루에 적어도 8시간 이상 일하기 때문에 그들과 관계를 맺고 전도하고 제자 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직장과 일터에서 얼마든지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나 일터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지를 못하고 있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직장과 일터를 선교지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선교지라고 생각하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한국전력 중부발전소 직원들에게 제자훈련을 할 때에 자주 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의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안정적인 직장을 주신 것은 호구지책이 아니라 그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파송하신 것이다. 즉 직장은 복음을 전하고 제자삼기에 가장 좋은 선교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감동을 받고 순종하여 전도하고 제자삼는 삶을 살아간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공충호 집사입니다. 그는 고대를 갓 졸업하고 들어온 신입사원에게 휴일 근무를 대신 해주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복음을 전하여 제자를 삼았습니다. 지난달에 식사대접을 하겠다고 저를 찾아왔는데, 함께 식사하면서 자신이 전도하고 제자 삼은 직장 후배가 자기의 딸 결혼식에 찾아와서 축하해주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둘째로,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직장인과 별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는 삶이 전혀 달라야 합니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야 합니다. 비 그리스도인은 오직 이 세상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보다는 저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그리스도인처럼 그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지 않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하므로 복음을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할 때에 동료 직원이나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우리와 사귐을 갖고 싶어 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실 때에 혼자서 하시지 않고 함께 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산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예수님의 전도사역에 함께 한 그룹은 크게 둘이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병 고침을 받은 많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12제자들이 예수님의 전도현장에 함께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일을 하겠다고 생업까지 버리고 주님을 좇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의 관심을 끄는 것은 병 고침을 받은 여인들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여인들에 관한 말씀이 무려 열네 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하나님 나라에 있어 여인들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세 명의 여인의 이름이 거명됩니다. 막달라 마리아, 구사의 아내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입니다. 첫 번째 여인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일곱 귀신에 붙잡혔다는 것은 완전히 귀신에 매여 사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을 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을 따랐습니다. 두 번째 여인은 구사의 아내 요안나입니다. 성경은 이 여인을 어떤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의 남편이 헤롯왕의 재정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부요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시신에 바를 향유를 준비해서 무덤까지 좇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자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 번째 여인은 수산나입니다. 그녀에 대해서 우리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병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질병 가운데 놓임을 받자 그녀의 남은 인생을 주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여인들 외에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병 고침을 받은 여자들이 주님의 복음전도사역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여인들이 ‘어떻게’ 복음전도사역에 함께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면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이 주님의 복음사역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여인들이 주님의 복음사역을 섬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정도로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 여인들의 섬김이 없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여인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의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어두운데서 불어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기 때문입니다(벧전 2:9).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야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조차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이 법칙을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즉 다른 사람보다 신앙생활을 더 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합니다. 물론 우리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금생과 내생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상을 받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경쟁에서 잘하는 사람만 받지만 천국에서는 함께 하는 자가 큰 상을 받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큰 상을 받기 원한다면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이 주님의 복음사역에 함께 한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수많은 여인들의 섬김과 관련하여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긴 방법입니다. 성경은 여인들이 어떻게 그들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소유로 섬겼다는 말은 단지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고 자신들의 사재를 털어 섬겼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얼마든지 여인들이 그냥 섬겼다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자기희생이라는 것을 교훈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자기희생입니다. 자기희생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우리를 섬기셨습니까? 말로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섬김은 어떻습니까? 희생적인 섬김보다는 계산적인 섬김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섬기는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희생적인 섬김은 자존심을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희생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희생하는 대상만을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에 가장 먼저 희생을 떠올립니다. 지금은 낯선 광경이지만 옛날 어머니들은 자기 자식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젖가슴을 노출시키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젖가슴을 내보이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들이 누가 보던 상관하지 않고 젖가슴을 내보이고 젖을 먹이는 것은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지 않은 채로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희생적 섬김이 아니라 계획적인 섬김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섬김의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계획된 섬김을 버리고 희생적인 섬김을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희생적인 섬김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누가복음 기자는 자신들의 소유로 주님을 섬긴 자들이 어떤 자들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병 고침을 받은 자’입니다. 왜 누가는 자기들의 소유로 주님과 함께 한 자들을 섬긴 자들이 병 고침 받은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께 은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을 섬겨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두려움 가운데 살아야하고 죄와 고통가운데 살다가 한번은 죽어야 하는데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데 이런 운명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사실 본문에 등장하는 병 고침을 받은 여인들이 죄 문제까지 해결받고 구원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육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받았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모든 소유를 다 바쳐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분에 넘치도록 많은 물질을 드려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희생적인 헌신을 받으시고 예비하신 은혜를 부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주님을 섬겨야 할 이유를 잊지 않고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소유뿐 아니라 생명까지 주님께 기꺼이 내어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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