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 전진을 위해 한보 물러나야 합니다 23장 25-35절 . 20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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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보 전진을 위해 한보 물러나야 합니다 23장 25-35절 . 2020.7.122020-07-12T09:56:4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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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3장 12-24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간단히 살핀 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암살단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맹세한 것은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옳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맹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고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암살단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 대제사장과 장로들을 만난 것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쓰임을 받는 자들도 악을 행하기 위해 손을 잡고 의논하듯이 우리도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함께 의논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세계복음화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암살단이 철저히 계획을 세웠어도 바울을 죽이지 못한 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사람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떤 일도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당해도 먼저 주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넷째로, 어떻게 바울이 중무장한 보병 200, 기병 70, 창병 200명의 호위를 받고 가이사랴로 갈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바울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로마에서도 네가 나를 증언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이 암살단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안 되기 때문에 천부장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를 호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특별히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더욱 그렇습니다. 잠시 코로나19로 힘들고 어렵지만,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을 순종하면 임마누엘의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천부장은 미결수 한 사람 바울을 위해 한밤중에 무려 470명이나 되는 로마 군인들을 동원할 뿐 아니라 바울이 타고 갈 말까지 제공하고 편지와 함께 총독에게 보냅니다. 25-26을 읽습니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우리는 본 구절을 통해서 이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알 수 있습니다. 발신자는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입니다. 누가가 전에는 단지 천부장이라고만 했는데 이번에는 그의 이름을 ‘글라우디오 루시아(Lysias)’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루시아는 헬라식 이름이므로 그가 헬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글라우디오가 앞에 붙은 것으로 보아 글라우디오 황제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그는 헬라인으로 로마 제국의 군인이 되었고,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 치하에서 돈을 주고 로마 시민권을 얻어 천부장의 자리에 오른 자입니다. 수신자는 벨릭스입니다. 그는 주후(AD) 52년부터 59년까지 유대 총독으로 있었는데,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매우 무자비한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 편지와 관련하여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누가가 천부장이 총독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알고서 기록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편지를 읽을 때 이를 듣고서 누가가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를 보내기 전 미리 바울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설교 후 나눔 시간에 이에 대해 활발한 토론이 있기를 바랍니다.

     

    천부장 루시아가 보낸 편지 내용은 27-30에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간략히 정리하면 유대인이 바울을 죽이려고 해서 진상을 알려고 그를 공회에 세워 이야기를 들어보니 종교에 관한 것이지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한다는 정보가 있어서 총독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편지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까? 거짓이라고 생각합니까? 언 듯 보면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부장은 자신이 언제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까? 그가 소요 현장에 오기 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가 소요 현장에 도착해서 바울을 채찍질하고 심문하려고 하자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를 죄도 정하지 않고 채찍질하느냐고 항변하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천부장이 이 순서를 바뀌었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로마법을 어긴 것으로 천부장이 처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법에는 죄인으로 확정되기 전에 로마 시민을 채찍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이를 부인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법을 어긴 것이 드러나게 되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이 편지를 보내기 전에 바울에게 미리 보여주고 이에 대한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편지를 써서 총독에게 보낸 천부장 루시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천부장과 바울의 만남은 사도행전 21장에서 시작됩니다. 즉 유대인들이 바울이 성전에 있는 것을 보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성전 밖으로 끌어내서 죽이려고 할 때 예루살렘이 소란하다는 소문을 듣고 급히 달려와서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었습니다(행 21:33). 그리고 바울이 영내로 가려고 할 때 발언권을 얻어 설교하던 중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다는 말을 하자, 청중이 그를 죽이려고 할 때 바울을 영내로 데려가라고 해서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었습니다(행 22:24). 그 후 천부장이 일의 지상을 알기 위해 공회를 소집했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던 중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바울이 찢겨져 죽을 것 같자, 천부장이 군인을 명하여 영내로 들어가게 해서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줍니다. 또 암살단이 바울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바울의 외조카로부터 전해 듣고 밤중에 470명의 군인들과 함께 가이사랴에 있는 총독에게 보내서 죽을 위기에서 건져줍니다. 이처럼 천부장이 네 차례나 바울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었기 때문에 지금껏 우리는 천부장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긍정에서 부정으로, 좋은 의미지에서 나쁜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어리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로마 제국 내 어디서나 복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근무하므로 바울을 만났고 그를 4번이나 구원해주는 과정에서 직접 복음을 두 번이나 들었습니다. 또한 바울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언행에 감동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마치 총독 빌라도가 직접 예수님을 뵈었지만 구원받을 기회를 차버린 것과 같습니다. 영국 속담에 “해가 있을 때 건초를 말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제 곧 신앙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복음을 전하면 형사처벌을 당하는 날이 곧 도래합니다. 그날이 오기 전,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470명의 군인들은 밤새도록 행군하여 이튿날, 안디바드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했습니까? 31-33입니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왜 그들이 안디바드리에서 도착하여 보병 200명과 창병 200명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기병 70명만 바울을 호송하게 했을까요? 안디바드리가 예루살렘에서 35마일 떨어졌기 때문에 유대인 암살단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튿날 그들은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가이사랴는 바울에게 어떤 곳입니까? 지난번 강해설교에서 살펴보았듯이, 바울이 전도자 빌립의 집에 머물렀을 때 아가보 선지자가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 자기 손발을 묶고, 이 허리 띠의 주인이 이렇게 결박되어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말을 들었던 곳입니다(행 21:10-11).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든 자가 예루살렘에 가면 죽는다고 말렸던 곳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를 뿌리치고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며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죽지 않고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바울은 그곳에 도착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곳에서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예루살렘에 갔던 과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목숨을 걸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가이사랴’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교회는 각자의 가이사랴가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바울처럼 살기로 새롭게 각오해야 합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기병들은 총독 벨릭스에게 천부장의 편지를 전달합니다. 총독이 편지를 읽고 나자 어떻게 했습니까? 34-35입니다.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천부장의 편지를 읽은 후 총독 벨릭스는 먼저 바울에게 어느 영지 출신인지 물어봅니다. 왜 물었을까요? 이는 바울이 누구의 관할지에 속한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총독의 관할 지역이 아니면 재판을 할 수 없었기에 그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벨릭스는 당시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의 대리대사를 겸하고 있었고, 바울은 길리기아(지금의 터키 중남부 지역)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관할에 있음을 알고 바울의 고발자들(유대인 고소인들)이 오면 재판을 열기로 하고, 부하들에게 바울을 ‘헤롯 궁’에 지키라고 명령합니다. 헤롯 궁은 헤롯 대왕이 지중해 연안 도시인 가이사랴에 자신을 위해 건축한 궁전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난 후 유대 지방의 행정 수도가 예루살렘에서 해상 교통이 편리한 가이사랴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총독들은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빌라도도 평소에는 가이사랴의 헤롯 궁전에서 살다가, 유월절이나 유대인들의 명절 같이 특별한 경비가 필요할 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예수님을 재판한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헤롯 궁에 있게 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그에게 로마에서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로마에 가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패한 총독 벨릭스의 뜻에 막혀서 2년 동안이나 가이사랴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송 세월을 보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총독 벨릭스가 그를 2년이나 헤롯 궁에 가두어 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뜻 가운데 그곳에서 쉼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그동안 세 차에 걸쳐 전도 여행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시아(터키) 쪽으로, 그다음에는 유럽으로 갔습니다. 심지어 일루리곤, 지금의 크로아티아까지 갔습니다. 바울이 전도 여행을 한 거리는 약 17,000km입니다. 서울서 로스앤젤레스가 약 9,500km니까 두 도시를 왕복한 거리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그리 먼 거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는 대부분 도보나 배를 이용했기에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행 중 태장도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하고, 바다에서 파선으로 죽을 뻔하고, 강도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가난과 추위와 굶주림 등으로 숱한 고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가서 황제 앞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쉼을 통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를 아시고 헤롯 궁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헤롯 궁에서 2년 동안 갇혀 있게 된 것은 허송세월이 아니라 육체의 휴식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입니다. 단지 육신의 회복만 아닙니다. 2년 동안 주님과 친밀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므로 영적으로도 더욱 단단해졌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해석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바울이 있었던 헤롯 궁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헤롯 궁 안의 지하 감옥에 있었다는 설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궁에는 지하에 감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헤롯 궁 안에 있는 특별한 방이라는 설입니다.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도행전 2423때문입니다.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바울에게 자유가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친구들이 와서도 돌보아 줄 수 있었습니다. 감옥이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가이사랴의 헤롯 궁 안에 거하면서 가이사랴의 성도들이 와서 간호를 해주었기 때문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달에 2-3번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건강이 매우 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국내에 머물면서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더 큰 사역을 위해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이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가는 촉진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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