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내어버림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출 11:1-10 2015.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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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내어버림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출 11:1-10 2015.2.232018-12-03T22:41: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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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열 번째 재앙인 장자재앙에 대한 경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홉 번이나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지만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마지막으로 장자재앙을 내리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홉 번이나 재앙을 내리셔도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불순종하므로 열 번째 재앙을 맞이하는 바로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바로 왕이 바로 제 자신임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계속해서 불순종하는 바로를 가리켜 마음이 완악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묵상하면서 바로의 완악함이 바로 저의 완악함임을 깨달았습니다. 어찌 보면 제가 바로보다 더 완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말씀하셨지만 날마다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날마다 말씀하십니다. 저는 날마다 큐티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큐티한 대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의 완악함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가 바로 왕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는 완악한 자들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완악한 자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병든 자라야 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건강한 자는 의원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얼마나 완악한 존재인지를 깨달아야 마음을 갈아엎고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노력하지, 그렇지 않으면 결코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주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사랑하고 있습니까? 원수는커녕 가까운 가족하나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하나 사랑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열방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서 제자 삼으라고 당부하셨는데 삶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여 제자 삼고 있습니까? 마지막 명령에 불순종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따르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장 중요한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완악한 자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왕의 완악함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완악한 존재인지를 새롭게 깨닫고 말씀대로 살겠다고 몸부림 쳐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장자재앙을 내리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절을 읽겠습니다.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2절).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였더니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황급히 쫓겨가는 자가 은금 패물을 구한다고 준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은금 패물을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말이 안 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 일이 가능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자에게 거저 베푸시는 호의입니다.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선물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면 말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자 죄인에서 의인을 바뀌었고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맛보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지 죄에서 구원을 받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 어디서나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든지, 가정생활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필요합니다. 사업이 잘된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 교만해져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기적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백성들이 은금 패물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나가지 않고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하나님의 은혜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두득두의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종두득두의 법칙이 무엇입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무엇을 심었기에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은 긴 시간 동안 애굽에서 아무런 보상 없이 수고와 땀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가게 하는 씨앗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것을 기억하시고 애굽을 떠날 때에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흘린 땀을 기억하시고 그 땀에 보응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때로는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성실과 충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흘린 땀을 기억하시고 반드시 보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종살이를 하던, 옥살이를 하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종살이를 할 때는 가정총무가 되게 하셨고, 옥살이를 할 때는 옥중총무가 되게 하셨고, 결국은 애굽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흘리는 땀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희생과 눈물을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혹 여러분이 지금 눈물과 희생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 머지않아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은금 패물을 구한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실 때에 여행에 필요한 것들, 즉 양식이나 옷가지 등을 구하지 않게 하시고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광야를 걸어가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양식이나 옷이지 은금 패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회막’을 짓는 일에 은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은금 패물을 어떻게 했습니까? 놀랍게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데 사용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1-6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한 마디로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백성들이 그가 죽은 줄로 알고 금 고리를 바치게 하여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자신들을 인도할 신으로 숭배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라고 주신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는데 쓰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금 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에 은금과 패물을 드리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35장 20-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는 성막을 짓는데 은금과 패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같이 애굽에서 은금 패물을 가지고 나왔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대상이 달랐습니다. 혹자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데 사용하고, 혹자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그것은 마음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불평과 원망이 가득한 자들은 은금 패물을 금송아지 형상을 만드는 일에 사용하고,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회막을 짓는데 사용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마음의 상태와 헌금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마음과 헌금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면 재물을 주님께 드리지만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가지면 우상숭배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원망과 불평으로 채우지 말고 감사로 채워야 합니다. 잠언기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드리느냐 적게 드리느냐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유지하므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들을 다시 주께 드림으로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다가 패망에 이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기 전, 모세에게 베푸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함께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출 11:3). 사실 모세는 애굽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원수였고 가장 먼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들에게 ‘아주 위대한 자’로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 즉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명령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당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바로는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었으므로 그와 싸워서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다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모세가 바로 앞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린 후에야 바로가 손을 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수들에게조차도 ‘아주 위대한 자’로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아주 귀한 존재로 만들어주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서도 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극악한 죄인이라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지새우며 기도하실 때에 “아버지여 할 만 하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소서”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아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을 3일 만에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있는 것과 땅 아래 있는 것과 땅 위에 있는 모든 자들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부탁하신 일에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들 앞에서 높여주시고 위대한 사람으로 칭송받게 하십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있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세상에 나가서 제자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 삼기 위해 먼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D3왕의사역’이라는 제자훈련시스템을 개발하여 국내외적으로 목회자와 성도들을 섬기는 것은 바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지상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끝까지 순종하면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 성도들부터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많은 사람을 제자 삼으려고 하지 말고 단 한 사람이라도 제자 삼겠다고 생각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모세도 평생 한 사람, 즉 여호수아를 제자 삼은 일에 성공했음을 기억하고 한 사람이라도 제자 삼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세가 10가지 재앙을 예고했지만 여전히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을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9-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바로가 너희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하셨고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위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출애굽기의 저자인 모세가 한 말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한 말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이 모든 기적을 바로 앞에서 행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그 나라에서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재앙을 내리신 것은 바로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내보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에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언뜻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지 않은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정말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조장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바로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도록 그냥 버려두셨다는 뜻입니다. 바로가 계속되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자 하나님께서 그가 마음대로 하라고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서 1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로마서 1장 24,26,28절을 읽겠습니다. 세 구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버려두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주 말씀하셔도 사람들이 귀담아 듣지 않고 정욕대로,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대로 살라고 버려두십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하지만 고집피우고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우선은 야단을 치기도 하고 협박하기도 하고 매를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자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네 맘대로 해!” 이 말은 자식에게 자유를 선언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더 이상 자녀의 삶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두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시면 어떻게 됩니까? 끝나는 것입니다. 혹 부모가 내버린 자식은 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버린 자는 영원한 패배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떻게 하고 계신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간섭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내버려두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 욕심, 내 자존심, 내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이런 결단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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