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혹 나를 삼가라고 하시면 어쩌나 눅20장 45-47절 2018.2.18

//주께서 혹 나를 삼가라고 하시면 어쩌나 눅20장 45-47절 2018.2.18
주께서 혹 나를 삼가라고 하시면 어쩌나 눅20장 45-47절 2018.2.182018-12-03T23:41:2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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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기관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모든 백성이 들을 때’입니다. 즉 예수께서 제자들과 있을 때에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모인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쪽에는 방금 전까지 예수님과 논쟁을 벌였던 서기관을 포함한 유대지도자들이 서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서 있는 상황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이란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백성들이 들으라고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들이 얼마나 모욕감을 느꼈겠습니까? 그들은 평생 처음으로 이런 일을 당했을 것입니다. 어느 누가 감히 서기관을 조심하라고 말할 자가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많은 백성들이 들으라고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서기관들을 반면교사 삼도록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즉 제자들이 교회의 영적 지도자가 되면 서기관들처럼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하고 사람들에게 거룩한 자로 인정받기를 원하고, 그들의 직위를 남용하여 타인의 재물을 가로챌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미리 경계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데도 제자들은 내내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을 벌였고, 서로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었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회만 나면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과시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주목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에 예수께서 이런 상황에서 말씀하신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때가 언제인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께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전입니다. 예수께서 그런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기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 않고 곧바로 심판하시지 경우는 없습니다. 따라서 혹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거나 뜻하지 않은 사건과 사고를 당할 경우는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신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그들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긴 옷’이란 종교적인 직무를 행할 때 입는 흰 옷을 말합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직무 때만 입어야 할 옷을 평상시에도 입고 다녔다는 것입니다.
    둘째, 시장에서는 문안받는 것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시장이 어떤 곳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왜 사람들이 시장에 갑니까? 물건을 사러 갑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문안을 받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에 앉는 것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장 높은 자리는 ‘모세의 자리’라고 명명된 곳으로 랍비들이 이 자리에 앉아서 백성들에게 성경을 낭독하고 말씀을 전했고, 잔치의 상석은 최고로 높은 사람이 앉는 곳인데 서기관들은 그런 자리에 앉는 것을 즐겼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내용은 다르지만 실제적으로는 같은 것입니다. 그들이 긴 옷을 입고 다니고, 시장에서 문안을 받고,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에 앉은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과시한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이렇게 자기를 과시하는 서기관을 삼가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드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전 10:31절). 따라서 주님께 아무리 대단한 헌신을 해도 자신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영광을 가로채기 때문에 각종 다툼과 분쟁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죽도록 충성을 해도 사도 바울처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47절을 읽습니다.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당시 서기관들의 두 가지 행태를 거론하시면서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날에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삶이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7절을 읽습니다.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알다시피 서기관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임과 동시에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적용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과부의 재산을 삼킬 수 있었을까요? 당시 과부들은 그들이 존경하는 서기관들에게 부친에게 받은 결혼지참금을 맡겨 관리하도록 했는데 그들이 이를 착복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서기관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서기관들이 다른 사람들의 재산도 아니고 과부의 가산을 삼켰을까요? 과부는 가산을 빼앗겨도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권세자나 힘 있는 자들의 재산을 꿀꺽하면 보복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기관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면 속으로는 힘없고 연약한 과부들의 가산을 강탈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을 과시하는 사람은 이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과시하는 것은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중적인 삶은 당시 서기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주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외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인데 실제적으로는 그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예배는 이중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어느 목사가 부흥회로 여러 교회를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부흥사가 얼마나 말을 재미있게 하는지 성도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물론이고 목사님들도 그 부흥사의 사모는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습니다. 하루는 그 목사가 그 부흥사의 아내를 만나게 되어 물었습니다. “사모님은 이렇게 훌륭하신 목사님과 함께 사시니 아주 행복하시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모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우리 목사님은 말만 잘해요.” 저도 말만 잘하는 목사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들은 외식으로 기도를 길게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7절을 다시 읽습니다.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다는 말은 레스토랑에서 외식할 때에 길게 기도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실 기도는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신 4:7). 그런데 예수께서는 서기관들이 기도를 길게 했는데 오히려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사실 믿음이 자라게 되면 점점 더 기도하는 시간도 길어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범사에 하나님께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인생의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전도는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은 이런 이유로 오랜 시간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 같이 보지지만 사실은 사람에게 자신을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신도는 기도를 길게 하고자하는 유혹을 크게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평신도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자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여야 자신이 평신도들과 다르고 자신을 신령한 자로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도를 많이 하는 자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유혹을 받습니다. 이전에 제가 동신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새벽과 저녁 기도회를 했을 때였습니다. 저녁에는 함께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갔기 때문에 기도하는 시간이 같았습니다. 그러나 새벽에는 설교를 하고 각자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성도들보다 더 많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시간에는 가장 늦게 일어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먹은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대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도들에게 “우리 목사님은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이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실하게 자신을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왜 다윗이 사람을 죽이고 간음죄를 범했어도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셨을까요? 그가 하나님께 진실하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진실하게 기도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과연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진실한 것일까요? 그것은 회개하는 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은 진정성이 결여된 기도입니다.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후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고 기도한 것이 시편 51편입니다. 특별히 그는 17절에서 어떻게 고백합니까?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미사여구로 기도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마음을 찢고 통회하며 회개하기를 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회개하는 기도를 하는 자라야 진정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기도를 점검해야 합니다. 정말 마음을 찢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자신을 과시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생활 속에서는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되고 신앙적으로는 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와 함께 죽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를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만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진실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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