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복음전도를 위해 로마를 준비하셨다 사도행전 28장 22-31절 2020.10.4

//주께서 복음전도를 위해 로마를 준비하셨다 사도행전 28장 22-31절 2020.10.4
주께서 복음전도를 위해 로마를 준비하셨다 사도행전 28장 22-31절 2020.10.42020-10-04T10:01: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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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8장 11-22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간단히 살피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누가가 바울이 로마에 입성할 때 우리라는 대명사를 사용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독보적인 복음 전도자인 것을 분명하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함께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복음화를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고 또 자신만이 그 일에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세계 복음화는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이 압비오 광장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마중 나온 자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담대함을 얻은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마중하러 64km와 48km나 되는 곳에서 오려면 시간과 돈과 육체의 고통이 요구되므로 그렇게 했다는 것은 희생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런 희생이 바울에게 감사한 마음과 담대함을 갖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하려면 희생해야 합니다.

    셋째로, 바울이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쇠사슬에 매였다는 것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뜻인데 이를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자유의 제한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감옥에 갇힌다는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자유를 제한당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포기한 만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넷째로, 지금껏 유대인들은 바울을 핍박했는데 로마에서 초청한 자들이 바울에 대해 어떤 부정적인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과거에 복음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형통’이라는 씨줄과 ‘곤고’라는 날줄로 엮어져 있어서 언제 어떻게 상대방의 마음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바울이 로마에 입성하여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옥살이를 했기 때문에 높은 지위에 있는 유대인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바울이 초대한 자들이 로마에서 신분이 높은 자들인데 어떻게 바울의 말을 듣기 위해 미팅 일정을 잡을 정도로 많이 왔느냐는 것입니다. 22을 보면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그들이 많이 온 것은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지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이유를 뭐라고 말합니까? 당시 그리스도교가 가는 곳마다 반대를 받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많이 받아들이므로 이를 듣고 싶어하면 몰라도, 반대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를 듣고 싶어한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말의 이면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가 사람들에게 반대를 받지만 뭔가 이끌리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적으로는 반대를 받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 전도와 관련하여 한 가지 힌트를 얻어야 합니다. 비신자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싶도록 하려면 그들에게 감동시킬 만한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개인과 교회와 기업은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면 이 문제를 갖고 고민해야 합니다. 이번에 국민의 힘 청년위 대변인인 주성은이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 자유 보수 정신의 대한민국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왜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조차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까? 그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내용이지 일반 사람들을 향해서 할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초청받은 자들에게 전한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다시 23을 읽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바울이 그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먼 미래에 도래할 나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니이까 묻자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먼 미래에나 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이라는 것입니다. 즉 현재 우리의 마음에서 경험되어지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려면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들은 어떻게 전도했는가’의 첫 장에서 다룬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과 교회의 관계입니다. 한마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거듭난 자가 모인 곳이 교회이고, 교회가 복음을 전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건설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둘째로,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의 말로 예수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바울이 다른 것을 이용하여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을 가지고 가르쳤습니다. 모세와 율법과 선지자란 한 마디로 구약성경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진 성경을 ‘타나크’라고 부릅니다. 즉 바울은 타나크를 통하여 예수님을 가르쳤습니다. 타나크는 모두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시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제가 ‘3시간 30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를 집필했는데 어떻게 엠마오가 절망에 빠진 두 제자가 예수님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밤늦게 다시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구약성경에서 자신과 관련하여 말한 구절을 일일이 찾아서 설명하자 그들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가르친 것은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가르치신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가르치자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음을 전하자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면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도 이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16:15-16).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를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25-28입니다.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을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을 바울이 인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에 사는 유대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방인에게로 넘어간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구원의 복음을 유대 땅에 오셔서 3년 동안이나 전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탄생도 성령의 강림도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이 이방인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어도 가는 곳마다 먼저 유대인 회당에 가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뿐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도 복음을 거절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자들도 거부하자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복음을 이방인에게 보내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말할 때 당시 로마가 어떤 상황에 있었습니까?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도록 로마를 통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첫째는 도로입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이 세계를 통치하기 위해 닦아 놓은 도로를 이용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작년에 바울이 밤빌리아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 걸어간 길을 걸은 적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돌을 깔아서 길을 만들었습니다. 2000년이 지났어도 일정 구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당시 로마가 도로를 얼마나 잘 준비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당시 언어입니다. 당시는 헬라어가 공용어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헬라어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는 치안입니다. 당시 ‘팍스 로마나’, 즉 BC 1세기 말 아우구스투스로부터 5현제 시대까지 약 200년간 계속된 평화의 시대였기 때문에 전도자들의 여행과 활동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과 항공의 발달을 허락하시는 것은 환난이 본격화되기 전, 전 세계에 D3를 빨리 보급하여 평신도들을 말씀으로 무장하여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2년 동안 어떻게 전도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0을 읽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이 셋집에 가택연금 된 상태에 있었지만,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역했습니다. 그가 로마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주로 어떻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찾아가서 전했습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다닐 수가 없게 되자 자기 집에 사람들을 초청해서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전도전략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껏 다닐 수 있을 때는 찾아가서 전했지만, 감옥에 있을 때는 마음대로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러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상황이 바뀌었다고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에 맞게 전도를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전도하지 않습니까? 지금보다 전도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지금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핍박을 받아 흩어졌을 때 복음을 전했습니다. 코로나19라고 전도에 주저하면 안 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누가는 사도행전의 끝을 어떻게 맺고 있습니까? 다시 31을 읽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행전의 끝이 일반 서신서의 형식과 전혀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성경은 인사나 축복의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바울이 계속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예수께 관한 것을 가르쳤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이렇게 끝맺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바울이 비록 쇠사슬에 매였으나 복음은 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쇠사슬도, 감옥도, 로마 군인도 바울의 복음 전파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합니다.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도행전 29장을 기록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전도행전을 써가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써갈 때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집니다.

     

    참고로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이태 동안 복음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그 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데 그 후를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바울이 이태 동안 로마 감옥에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당시 소송 제도를 살펴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으려면 원고와 피고가 함께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재판에 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법정 고소 만료 기간인 18개월 안에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까지 기다리다가 궐석재판을 받고 풀려났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출소해서 어디로 갔을까요? 로마서 1523-24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15:23-24). 이 말대로 바울은 감옥에서 해방된 후 일단 서바나로 전도 여행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으로 다시 돌아와서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딤전 1:3). 그리고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다시 체포되어 마지막으로 옥중에서 디모데후서를 쓰고 순교했을 것으로 봅니다. 바울의 전도는 순교로 끝났습니다. 우리의 死因도 순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복음 전도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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