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베푸신 복을 전도의 무기로 삼고 있나요? 사도행전 3장 11-26절 2018년 11월 25일

//주께서 베푸신 복을 전도의 무기로 삼고 있나요? 사도행전 3장 11-26절 2018년 11월 25일
주께서 베푸신 복을 전도의 무기로 삼고 있나요? 사도행전 3장 11-26절 2018년 11월 25일2018-12-04T00:00:4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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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화려하고도 웅장한 성전을 대단하게 생각했지만 그 안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앉은뱅이 거지에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자 나면서부터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 안에 갇혀 계시지 않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들과 함께 하셔서 새 일을 행하십니다. 따라서 기적을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음껏 사용하라고 주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과 기적은 비례합니다. 갓난아이가 부모를 부르면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움 받듯이,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삶의 모든 문제에서 구원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라는 이름의 ‘백지수표’를 주셨으므로 이를 자주 사용하여 기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거지가 일어나 뛰게 되자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1절을 읽습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자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고, 모든 백성은 크게 놀라서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것은 앉은뱅이는 앉은뱅이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의 능력으로 앉은뱅이 거지를 고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앉은뱅이 거지가 일어나 뛰게 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의 개인적인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 거지를 향하여 단지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자기 주변에 몰려든 백성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12절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한마디로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것은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시선을 주목하게 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베드로는 이것과의 싸움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던 분들이 추락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이 싸움에서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영광을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권면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며칠 전, 이재록 목사 성폭행 1심 판결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성폭행 이재록 실형에 신도들 눈물바다” 그리고 하단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재판 방청권을 얻기 위해 새벽 3시부터 장사진을 쳤고 방청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법원에서 대기했다.” 그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상습준강간’입니다. 어떻게 이재록이 한 두 명도 아니고 8명이나 되는 20대 여성들을 수년 간 4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했을까요? 사실 검사가 기소한 것만 그렇지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성령의 능력으로 많은 사람을 치유한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으로 착각하여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돈을 잘 벌고, 명예를 얻을 때, 그것이 자신의 능력으로 되었다고 착각하여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하다가 결국 추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가 3년 6개월 동안 비오지 않기를 기도하자 비가 오지 않고, 또 비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비를 내리게 한 엘리야를 ‘우리와 성정이 같은 자’라고 말한 것을(약 5:17)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큰 능력을 행해도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고, 한낱 죄인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3-26절은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설교와 관련하여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베드로가 어떤 상황에서 설교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까지 베드로의 설교가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설교는 오순절에 120여 명이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각국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을 때에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 째 설교는 성령충만을 받은 후 나며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걷고 뛰게 하는 기적을 행하자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일 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베드로가 설교한 때는 모두 그가 행한 기적을 인하여 사람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였을 때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자신이 행한 기적으로 사람들이 집중할 때에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각종 기적을 베풀어주시는 것은 그것을 무기로 주님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적 중의 최고의 기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아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마땅히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이미 구원받은 것에 대해 감사하여 주일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드릴 뿐 삶 속에서 그분을 증거하지 않습니다. 또한 각종 문제에서 구원해주셨어도 감사헌금 몇 푼 내는 형식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끝이지 그것을 무기로 삼아 전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각종 문제에서 건져주시는 것은 단지 감사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감사만 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께 받은 복이 도리어 화가 됩니다. 우리는 전직 두 장로 대통령을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대통령 모두 집권 초기에는 국민들의 기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기뻐하고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청와대 안에 만들어 놓은 우상하나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했고 동네 사람들에게조차 귀향을 거절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 자신의 배만 불리는데 급급하다가 철창신세를 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전보다 더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높아지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명예를 얻을 때에 하나님께만 감사하지 말고, 그것을 무기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앉은뱅이 거지가 일어나 걷고 뛰게 된 것은 ‘어떤 믿음’으로 된 것이냐는 것입니다. 13-16절을 읽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한 마디로 이 말씀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일어나 뛰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믿음의 원천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으로 인하여 갖게 된 믿음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 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앉은뱅이 거지를 낫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 것을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 저주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거짓 그리스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짧은 설교로 예수께서 거짓 그리스도가 아니라 진짜 그리스도라고 믿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래서 앉은뱅이 거지가 가진 믿음은 엄청난 것입니다. 지난주 부천새샘교회에서 D3행복축제를 했는데 참석한 90여명의 새신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2명이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겠다고 스스로 결심서에 이름을 쓰고 사인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돈을 구원자로 생각하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 데 불과 15-20분짜리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영접하겠다고 직접 결신카드에 사인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저와 여러분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死狀(사장)시키지 말고 사용하므로 기적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베드로의 설교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회개하고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죄 씻음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본문에는 ‘새롭게 되는 날’이 이전 개역판에는 ‘유쾌하게 되는 날’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되는 날’을 헬라어로는 ‘카이로이 아나 프케오스’라고 하는데, 이는 ‘다시 숨을 불어넣는 때’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다시 숨을 불어 넣는다”는 말을 들으니 무엇이 생각납니까?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말씀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창 2:7).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 안에 생기, 즉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생령이 되었듯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들이 회개하면 다시 새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무슨 말입니까?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그 방법을 20-26절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세와 사무엘을 걸쳐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가 예수님을 보내실 것을 증거하고 있고, 때가 차서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신 보내셨는데,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20절). 그렇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는 유일한 길은 회개하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원자이심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1907년은 우리나라에 성령의 역사가 대단히 강하게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당시는 일본이 우리 조선왕조를 거의 장악하고 있던 시기라 백성들은 거의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령의 역사를 주도했던 분들 중에 김익두와 길선주 목사가 있었습니다. 연초에 평양 장댓재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는데 성령께서 오순절 다락방 때처럼 강하게 역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고 찔리게 하였습니다. 특별히 길선주목사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는 소문이 평양 시내로 퍼져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방은덕’이라는 순경이 그 소문을 듣고서는 죄를 자백하는 내용을 듣고 죄인을 잡으려고 장댓재교회의 부흥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길선주 목사가 “지옥을 취하랴, 천국을 취하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것만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도 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죄를 회개하십시다.”라고 했는데, 방 순경이 그 말씀을 듣고서 마음에 찔려 견딜 수 없어 몸부림을 치다가 쓰러졌습니다. 설교를 중단하고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된 방 순경을 위하여 기도하자, 그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새롭게 되는 첫 걸음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죄 문제를 해결받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이 은혜에서 제외된 사람이 하나도 없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한 마디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저와 여러분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베드로의 설교를 청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베드로처럼 담대히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은 것을 단지 감사하는 선에서 멈추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 지위 등을 전도의 무기로 삼아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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