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두득두와 은혜 갈 6:7-8절 2:21절 201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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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두득두와 은혜 갈 6:7-8절 2:21절 2012. 3. 252018-12-03T19:13: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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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중에 눈치가 빠르신 분은 요즈음 제가 복음 설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제가 왜 지속적으로 복음설교를 할까요?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해결 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초이며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만 아직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못했다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구원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마가복음 9장 47-49절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복음을 믿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것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종두득두와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속담에 종두득두(種豆得豆), 즉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의미로 일정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비슷한 한자 숙어로는 자승자박 ․ 自繩自縛,(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은 잘못된 결과에 스스로 괴로움을 당한다는 뜻) 자업자득 ․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자기가 받는 다는 뜻)이 있고, 불교용어로는 인과응보 ․ 因果應報(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다는 것)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속담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 즉 ‘종두득두’는 모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습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왜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갑자기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합니까? 정비불량이든지, 조종사의 실수이든지, 기상악화이든지, 외부공격이든지 그럴만한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교회는 부흥을 하고 어떤 교회는 부흥을 하지 못할까요? 부흥하는 교회는 전도에 집중하기 때문이고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전도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정국이 총선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4.11 총선 등록을 마감한 결과 전국 246지역에 927명이 등록을 해서 평균 3.8대 1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은 당선이 되고 어떤 사람은 낙선을 할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은 당선을 하고, 어떤 사람은 낙선을 할까요? 떨어지는 사람은 지역 주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고, 당선이 되는 사람은 지역 주민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김연아가 피겨여왕이 될 수 있었습니까? 자유를 반납하고 구슬땀을 흘려가며 3,000번 이상이나 엉덩방아를 찧는 혹독한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즉 혹독한 훈련이라는 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종두득두, 즉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모든 삶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콩 심은 데서 팥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원인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착한 사람이 잘 되어야 하는데 악한 사람이 잘 되기도 하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 성공해야 하는데 실력이 없는 사람이 성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전 9:11)”라고 말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우리의 인생에 종두득두, 즉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며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쏟아 붓습니다. 혹자는 세상이 공평하지 못하다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사기(史記)의 저자이며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사마천은 “천도란 있는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는 종두득두의 법칙과 그 예외 법칙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는 정 반대의 법칙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법칙이 무엇일까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은혜의 법칙’입니다. 은혜의 사전적인 의미는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뜻합니다. 즉 은혜란 일정한 원인이 없는데 좋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은혜의 연속입니다.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이 만들지 않은 세상에서 공짜로 삽니다. 햇빛을 쪼이며 마음껏 공기를 마십니다. 또한 아무 대가없이 부모의 손에 의해 길러지고, 스승, 선배, 친구, 이웃 등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죽은 후에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걸음마다 자욱마다 다 은혜입니다. 인생은 은혜로 시작해서 은혜로 끝을 맺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고기는 혹 물을 떠나서 살 수 있어도, 인간은 은혜를 떠나서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마치 ‘은혜의 법칙’이라는 씨줄과 ‘종두득두의 법칙’이라는 날줄로 잘 짜여진 천과 같습니다. 그중 어느 한 법만 중시하면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수고한 대로 거두는 ‘종두득두의 법칙’과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는 ‘은혜의 법칙’이 함께 어우러져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종두득두의 법칙’보다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은혜의 법칙’을 앞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종두득두는 은혜를 앞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마데우스’를 통하여 ‘은혜’와 ‘종두득두’가 서로 비교가 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마데우스는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와 궁정 음악가 살리에리와의 갈등을 그린 영화입니다. 당시 살리에리는 가장 유능한 음악가였지만 모차르트의 출현으로 자신의 존재가 묻히게 되자 열등감을 느껴 결국은 그를 죽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두 사람의 갈등이 빚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살리에리가 선천적으로 천재적 재능을 타고 난 모차르트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종두득두는 은혜를 이길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은혜는 자신보다 높은 차원에서 내려오지만, 종두득두는 자신이 힘으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시 127:1)라고 한 것입니다. 카네기 공대에서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는 데 전문지식과 그에 대한 소양은 15%만 기여하고, 나머지 85%는 사람과 더불어 사는 능력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지만 자신의 수고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고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가운데 최고의 은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 사함의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죽은 다음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재물을 얻고 부귀 영화를 누릴지라도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진짜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지만 왕위에 앉은 것 때문에 행복하다고 하지 않고 자신이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뛰어 넘어야 할 장벽들이 있습니다. 오늘 그 장벽을 뚫고 구원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모르는 사람은 죄 문제를 해결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즉 죄 사함을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담의 죄와 자신의 죄가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하지 않아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잘못해서 사업에 실패를 하면 부모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녀들도 똑같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는 가정을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6년간 식민지로 살았지만 천황이 항복하므로 일본의 압박으로부터 우리 민족이 해방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천황 한 사람이 항복했는데 전일본이 항복한 결과를 가져왔습니까? 천황이 일본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과 축구경기를 볼 때에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면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수들이 우리를 대표해서 경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범죄가 우리의 죄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담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담이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곧 우리가 먹은 것이며, 아담이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도 저주를 받은 것이며, 아담이 죄의 대가로 죽음에 이른 것은 우리도 죄 때문에 한 번은 반드시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담의 운명은 곧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종두득두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죄 값을 치러야 할 운명에 있는 사람은 결코 행복한 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수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아 의인이 된 자가 정말 복된 자인 것입니다. 혹 여러분이 죄 사함을 받았다면 누가 뭐라 해도 최고의 은혜를 받은 것이고, 가장 행복한 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그 복을 이 땅에서 누리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두 번째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저 역시 이것을 믿지 못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혹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처녀의 몸에서 생명을 낳게 하시지 못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제 교회에서 설교 준비를 하다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 가려고 하데 중고등부 아이들과 회장인 장성실이가 교회 현관에 있었습니다. 성실이가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님이 신림9동에서 고시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녁을 먹여 보내려고 안 가겠다고 하는 아이를 반 강제로 저의 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가 준비되지 않아 잠시 스타킹이라는 TV프로를 보았는데 마침 ‘BRT”(Brain Reset Therapy) 시술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BRT는 무술인 임헌식씨가 사람의 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우리 몸의 특정한 장소(health switch)에 자극을 주면 우리 몸의 CPU격인 뇌가 반응을 하여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40여 년 동안 연구하고 실험하여 체계를 세운 치료법입니다. 저도 BRT를 체험해보았지만 참 신기합니다. 제가 안양성결교회에서 D3왕의사역 세미나를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성대가 상해서 강의하기 힘들었는데 참석하신 분 중에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시더니 저의 몸을 몇 군데 톡톡 쳤는데 훨씬 목이 나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어제도 스타킹에서 BRT 시술을 하자 평소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던 사람의 허리가 굽혀지고 허리를 뒤로 젖히지 못하던 사람이 뒤로 젖히자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결 같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아해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 아니고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처럼 사람도 믿기 어려운 일을 하는데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까짓 처녀의 몸에서 생명을 잉태하실 수 없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없겠습니까? 혹 아직도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에게서 탄생하신 사실이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지지 않았다면 오늘을 계기로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의 선택만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즉 최고의 은혜인 죄 사함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러나 우리가 최고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생각과 뜻대로 살아온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그렇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로마서 10:9).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다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그렇게 하기로 마음에 결단하는 분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바로 은혜의 날이고 구원의 날입니다. 동신교회에 들어오시는 모든 분들은 인생의 최대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 구원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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