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그리스도인의 추석 고전 10:19-21 201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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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그리스도인의 추석 고전 10:19-21 2012.9.232018-12-03T19:51:2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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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는 우리 민족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입니다. 여러분은 ‘추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마도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주부의 입장에서는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될 것이고, 고향이 먼 사람은 부담과 기대감이 있을 것이고, 취직을 못한 사람은 친척을 만나기 싫을 마음이 들 것이고, 사업하는 분들은 보너스 지급 등으로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모처럼 쉴 수가 있어 기대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추석에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이런 저런 이유로 헤어졌던 가족들을 한 자리에서 만난다는 소망과 기쁨일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추석 명절에 온 가족이 기쁨으로 만나야 하는데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은 시댁을 먼저 가냐, 친정을 먼저 가느냐의 문제로, 어떤 가정은 얼마의 돈을 양가 부모님께 드려야 하느냐의 문제로 다투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큰 갈등은 제사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수록 제사로 인한 갈등이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제사문제로 갈등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한동안은 제사문제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제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하자 7년 만에 온 가족이 주님께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가문이 되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추석을 앞두고 제사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단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제사는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선악과이기 때문에 결코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족과 다투기 싫어서 제사상에 절을 하면 잠시는 가족 간에 화목하고 평안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음을 맛보았듯이, 그리스도인이 제사를 드리면 영적인 죽음이 찾아옵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제사의 정체가 무엇이며, 제사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고, 추석모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제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사가들은 조상제사의 유래를 고려조 이전까지는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조상제사가 시작되었을까요? 고려 말엽부터입니다. 고려조 말에 중국의 유교가 낳은 ‘주자학’이 전래되었는데 그 때 조상제사 의식도 함께 유입이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제사는 공자 이전의 시대인 하나라와 상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실제로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주나라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당시 조상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살아있는 종손을 높이는 의미에서 높은 곳에 앉혀놓고 제사형식의 예를 갖추는 행사였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황제에게만 적용했는데, 제사를 잘 지내야 훌륭한 신하가 나온다는 유혹에 제후들까지도 제사를 지내게 되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사회질서가 무너지면서 평민들의 지위가 향상되자, 평민들도 자기들의 신분을 높이기 위하여 ‘너희 부모만 훌륭하냐 우리 부모도 훌륭하다’는 반발심에서 자기들의 생존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다가, 나중에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제사를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주자학’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특수한 사람만 제사를 지내다가 유교를 국교로 삼은 이태조에 의해 민간에까지 널리 장려된 것입니다. 즉 조상제사는 전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외래문화요, 본래는 죽은 조상이 아니라, 산 사람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제사가 이태조에 의해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을까요? 한 마디로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성계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국호를 변경하므로 정권의 정통성과 도덕성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민심이 이반되자 정권유지를 위해 정치적 술수로 조상제사를 권장한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성계의 아내가 고려의 귀족 출신인데 자신을 멸시했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뒤 아내와 그 집안에 대한 복수책으로 ‘유교와 주자가례’를 수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교는 군사부일체의 사상이 강하기 때문에 제사문화를 통하여 남자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반면 여성의 지위는 격하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우리 조상들이 드렸던 제사법을 보면 제삿날 여자들은 죽도록 음식만 장만하고 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가 오면 부정을 타서 조상신이 오지 못한다고 하여 제사 지내는 장소에는 여자를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 그토록 제사 횟수가 많았던 것은 이성계가 민심을 돌리기 위해 무학대사에게 자문을 구하자, “조상에 대한 효가 극진한 백성이라 조상제사를 장려하여 제사를 많이 드리게 하면 이반된 민심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다”고 조언하자, 기일, 설날, 한식, 추석, 봄, 여름, 가을에 시사제등을 드리게 했던 것입니다. 또 제사상에는 반드시 대추, 밤, 곶감을 올리도록 했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대추는 씨가 하나입니다. 씨가 하나밖에 없는 대추를 올린 것은 훌륭한 임금 한 분만이 나와 계속 통치를 하라는 뜻이고, 씨가 세 개인 밤을 올린 것은 삼정승을 의미하고, 씨가 여섯 개인 감을 올린 것은 육판서를 의미하는데 그것들을 올린 것은 그들이 왕을 잘 보필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영문도 모르고 제사시마다 세 과실을 제사상에 올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제사는 어떠했을까요? 유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민족 고유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제사는 중국에서 건너온 제사와 달랐습니다. 우리 제사는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리지 않고 깨끗한 마음으로 물 한 그릇을 떠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면 깨끗하게 단장한 아낙네가 물을 떠 놓고 달밤에 정성을 다해 빌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전쟁에 나갈 경우는 사슴이나 돼지나 소를 제물로 잡아드렸습니다. 그런데 짐승을 잡아 죽이는 경우도 까다롭지 않았고 제물도 단출했습니다. 산 짐승과 술 정도만을 드렸습니다. 마치 구약시대에 양을 잡아 산채로 제단에 올리고 각을 떠서 하나님께 올렸던 제사법과 아주 흡사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우리가 드리는 제사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성경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심지어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를 귀신에게 하는 것이고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말씀할까요? 그것은 제사를 드릴 때에 쓰는 지방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에는 반드시 지방을 쓰는데, ‘故 아무개 神位’라고 씁니다. ‘神位’라는 것은 ‘죽은 사람의 영이 의지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이렇게 지방을 쓰는 것은 단순히 죽은 사람에게 절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는 것입니다. 즉 조상을 단순히 사람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의 제1계명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따라서 죽은 사람을 신격화하고 그에게 절을 하는 제사는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즐거워야 할 날 너무 믿음만을 앞세워서 제사를 거부하면 서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제사를 드리되 지방을 쓰지 말자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런 말을 덧붙이면 좋습니다. “요즈음은 일반적으로 제사를 드릴 때에 지방을 쓰지 않고 음식만 차려놓고 지내는 추세다”라고 하면서 지방을 쓰지 않도록 설득하면 됩니다. 왜냐하면 지방을 안 쓴 상태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제1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예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이지만 부득이 한 경우는 이렇게 해서라도 귀신에게 절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인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믿음이 약해서 제사를 드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믿음이 없어서 죄를 범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사를 지낸 것도 일종의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평소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추석에 제사 지낸 것 때문에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을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의 전략에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살아야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라는 안전장치를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상에 절을 했을 경우는 회개하면 됩니다. 주님은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도 회개할 때에 용서하셨고 그를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사상에 절을 하지 않도록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제사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왜 우리와 같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고 같은 기독교인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데 개신교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천주교도 우리나라에 맨 처음 전래될 당시에는 조상제사를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로 인하여 당시 조정으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791년에 있었던 ‘신해박해’입니다.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전라도의 윤지충, 권상연 등이 부모의 장례를 치룰 때에 유교적 의식을 거부한 이유로 조정으로부터 극형인 참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801년에는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천주교 순방을 온 주문모 신부가 그 일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무수한 신자들이 제사문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교황이 1939년 일본의 압력을 받아 ‘제사는 하나의 전통문화일 뿐 종교의식이 아니다’는 칙서를 내려 조상제사와 신사참배를 허용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왜 같은 기독교인데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지내는데 우리는 못 지내게 하느냐고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는 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생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그 길만이 영원한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제사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고린도전서 8장과 10장에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린도교회가 처한 상황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말씀을 그대로 삶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시장에서 파는 육류는 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시장에서 사는 육류 중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사나 차례를 드리고 난 후 차례상에 놓았던 음식을 먹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여러분이 제사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서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위로 상대방을 실족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먹어도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기도로 거룩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먼저 추석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절기를 주셨는데 그들은 절기가 되면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은 각종 절기를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을 키우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추석등과 같은 명절을 단지 조상들을 추모하는 날로만 생각지 말고 아직 믿지 않는 친척들을 주님께 인도하고 믿음이 약한 가족들에게는 믿음을 격려하는 영적부흥을 이루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체보다 마음이 중요하고 마음보다 영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신의 가족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영적인 가족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가족은 이 세상에서 살 동안에만 함께 살지만 영적인 가족은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들에게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제자들 중에 누군가가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서 예수님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라고 하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마 12:46-5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추석을 통하여 믿음을 키우고 육신의 가족을 영적인 가족으로 만드는 일에 온갖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독교는 부모님께 효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대한 최고의 효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분들이 살아생전 예수님을 영접하여 돌아가신 후 천국에 입성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일단 부모가 돌아가시면 할 수 있는 것은 장례식을 치뤄 드리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일에 모여 아무리 거창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추모예배를 드린다 하여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혹 믿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려도 고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고인의 좋은 점을 본받고 삶의 결의를 새롭게 다질 뿐입니다. 즉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유가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고인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금번 추석에는 제사문제로 시험에 드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말로만 전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으로 동기간에 넉넉히 선물을 하시기 바랍니다. 금번 추석이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기쁨이 충만하고 전도의 열매를 맺는 명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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