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부활을 믿는다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고전 15장 1-11절. 20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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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활을 믿는다면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고전 15장 1-11절. 2018.4.12018-12-03T23:45:0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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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우리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이란 본문 말씀처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구약 66권 중에서 복음을 이렇게 정의한 곳은 고린도전서 밖에 없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는 영적인 은사의 남용과 오용 그리고 영적인 자만 등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런 교회에 복음을 정확히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할까요? 복음으로 돌아가면 교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십자가와 부활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가치는 자기 희생과 겸손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거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문제는 욕심과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고린도교회에 분쟁이 일어난 것도 육신의 정욕대로 행하고 영적은사로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람들마다 교회가 건강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자의 목소리를 냅니다. 혹자는 소그룹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소그룹을 활성화시키면 세포가 살아나기 때문에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혹자는 평신도가 사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 역시도 모든 평신도들이 사역해야 교회가 건강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혹자는 모든 성도들이 전도하면 교회가 건강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전도는 영혼의 운동이기 때문에 전도하면 영적인 근육이 생겨 교회가 건강하게 됩니다. 그러나 소그룹을 활성화 하든지, 평신도가 사역하게 하든지, 모든 성도들이 전도하게 하던지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 사실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구약 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3-4절을 다시 읽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바울이 ‘내가 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회심한 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직접 계시 받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 받아 그대로 전했던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이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설명하면서 거듭해서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성경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사실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44절을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여기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이란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구약성경에서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모세의 율법’에서 예수께서 고난당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을 찾아보겠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서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은 마귀의 공격으로 예수께서 고난당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예수께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쳤지만 다시 돌려받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만 다시 살아나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함께 읽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다음은 ‘선지자의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요나서 2장 6절입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니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이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것 중 일부입니다. 요나가 이 기도를 마치자 곧바로 하나님께서 그를 육지로 토해내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표적을 보여 달라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갇혀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12:39-40).
    다음은 ‘시편의 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고난당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은 시편 22편입니다. 특별히 15-16절에 등장합니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다음은 예수께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 말씀은 시편 16:9-10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누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성경이 이미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사실임을 증거하는데 이미 성경에 예언된 것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할까요? 그것은 성경의 절대적 확실성 때문입니다. 다른 책은 혹 틀릴 수 있을지라도 성경은 하나도 오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짜 뉴스를 믿지 않고 진짜 뉴스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면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참고적으로 성경이 예수께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것과 부활신앙을 갖는 것은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믿음이 생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따라서 우리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기 위해서는 성경을 자주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믿음이 생기고 이성과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를 성경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여자들이 먼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놀라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베드로와 또 한 명의 제자가 그 말을 듣고 놀라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빈 무덤을 보고도 베드로는 그 즉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그 된 일을 기이히 여기며 집에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하여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요 20:9). 무슨 말입니까? 이미 구약성경에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을 예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베드로가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알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5-8절을 다시 읽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5-8절).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시기까지 이 세상에 40일간 계시면서 최소한 10여 차례 이상 자신을 보여 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보여주신 자들을 차례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게바, 즉 베드로를 포함한 열두 제자가 있습니다. 그 후에 500여 형제에게 보이셨는데 바울 당시까지 대다수가 생존해 있었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 모든 사도와 바울에게까지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모세의 율법은 두세 사람의 증인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신 19:15). 그런데 왜 바울은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을 수없이 많이 등장시키고 있을까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몇 몇 사람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본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고 있고 부활의 증인이 수없이 많아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자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자들 중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신하는 자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잡지 ‘리더십저널’이 기독교출판사인 ‘존더반’이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들은 여론조사를 통하여 다섯 종류의 크리스천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첫째는 활동적 크리스천입니다. 이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고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며 성경을 꾸준히 읽고 전도에 대한 의무감을 가지는 사람들로서 응답자의 19%에 달했습니다. 둘째는 고백적 크리스천입니다. 이들은 구원받은 것을 확신하지만 소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로 응답자의 20%에 달했습니다. 셋째는 형식적 크리스천입니다. 이들은 禮典(예전)에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만 주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에는 무관심한 가톨릭 교인들로서 응답자의 16%로 달했습니다. 넷째는 개인적 크리스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지만 거의 교회출석과 사회봉사를 거의 하지 않는 젊은 층의 사람들로 응답자의 24%에 달했습니다. 다섯째는 문화적 크리스천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을 유일한 구원자로 보지 않을 뿐더러 하나님께 가는 길이 많다고 생각하는 자들로 응답자의 21%로 달했습니다.
    이들 중에 과연 어떤 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활동적 크리스천’만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는 마땅히 그분을 증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말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신하지도 않고 이를 증거하지도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배후에서 마귀의 공격이 맹렬하기 때문입니다. 왜 마귀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못하게 하고 증거하지도 못하도록 방해를 할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아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천국에 입성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이런 말을 남겼던 것입니다. “내가 만일 기독교의 적이었다면, 나는 부활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핵심은 곧 부활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만 이를 증거하지 못하는 것은 마귀와의 영적전쟁에서 졌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오늘 부활절 예배를 통하여 영적전쟁에서 이기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두 가지 사실을 통하여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주장하다가 갑자기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9-10절을 함께 읽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자였지만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주의 일에 수고하였던 것은 주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주의 은혜가 어떻게 임했습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 바울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에 정통했고 당대 최고의 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생이었고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던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된 거짓 메시아로 알고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진짜 메시아라고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일에도 기꺼이 증인으로 참여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서는 그들을 잡아오는 일에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어떤 일이 발생했습니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바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고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박해자에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바울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하면서 갑자기 이것을 이야기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은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11절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11절). 본문에서 ‘나’는 바울이고, ‘그들’은 복음 전도자들이고 ‘너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믿게 된 것은 바울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복음을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저와 여러분은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담대히 전파해야 합니다. 이를 새롭게 결단하는 2018년 부활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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