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눅9:1-6 201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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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눅9:1-6 2016.5.222018-12-03T23:07:0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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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열 두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시면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으로 설교를 준비하던 중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설교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 본문에 관련하여 제대로 된 설교를 한편도 만나볼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처럼 능력전도를 하지 않거나 그것에 대해 관심조차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설교한다는 것은 그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능력전도에 대한 설교가 거의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그런 주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사역의 모델이시므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먼저, 1-2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 보내시며”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12제자를 전도하러 내보시기 전에 그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전도 방법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전도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전도합니까? 일반적으로 말로 전도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면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렇게 전도하라고 하셨을까요? 거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전도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의 수하에 놓여 있는 자를 어떻게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빼내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보여주면 상대방이 복음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 영이시므로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신이 쫓겨나가고 각종 병이 치유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되어 그만큼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 16:20)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상대방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를 수 있습니다. 단지 말로만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경우와 능력전도로 받아들인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믿음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전도에 의해 구원을 받은 경우는 이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세상의 철학자들처럼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복음을 전했지만 나중에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가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복음을 잘 전하지도 않고 혹 복음을 전해도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안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는 화중지병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돈을 많이 갖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있으나마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어도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의 거장들이 능력 전도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한결 같이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권위가 있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김정현 집사 간증).
    우리가 알다시피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에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거지가 구걸할 때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그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고 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왜 베드로와 요한이 날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에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거지를 봤어도 그냥 지나갔는데 그제야 비로소 그를 걷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예수의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를 향하여 구걸하는 많은 종류의 앉은뱅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빌게이츠처럼 가진 것은 없으나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도움을 청하는 자들에게 그 이름을 사용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각종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느냐는 것입니다. 믈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이 방법을 통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하지만 그들은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공동체를 위해 내놓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벌벌 떨었지만 그들은 순교의 제물로 드려질 때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찮은 일로 원수관계를 맺지만 그들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까지 용서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삶과 자신들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닫고 주님께 돌아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사도행전 2장 43-47절, 특히 47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처럼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능력전도를 해야 할까요? 이미 능력전도를 해야 할 세 가지 이유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유 말고 또 다른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대상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서로 아는 사이이고, 다른 하나는 전혀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은 복음 전도자가 예수를 믿고 어떤 변화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로 어떤 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까? 이곳저곳 다니면서 전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는 곳마다 능력전도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고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도 대상자에 따라 방법을 다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서로 아는 사이에서는 삶의 변화를 보여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전도자가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그가 전하는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뿐더러 예수를 영접하지도 하고 그의 제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전혀 모르는 자들에게는 능력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외에 나가서 대중전도집회를 하면서 능력전도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전도여행 시 어떤 점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4절입니다.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 여기서 ‘여행’은 흔히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뜻합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전도를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전도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인데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피곤하신 가운데서도 항상 기도하셨을까요?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기적을 경험한 자들이 즐비한데 왜 우리는 기적을 많이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까요?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고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진 것과 아는 것을 통하여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어달려 기도할 때에 일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적적인 인생의 주인공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아는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기도의 응답이 빨리 오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 있습니다. 아마도 기도의 응답이 빨리 왔다면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일을 게을리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침묵하시는 것은 도울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바울도 기도의 무응답이 축복의 통로임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질병을 인하여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간구해도 응답을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주님의 능력이 자신 안에 머물게 되었다며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실망을 안겨주지만 주님은 의지하면 할수록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 되십니다. 따라서 없는 것을 인하여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주님께 더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유대인들은 이방 지역을 통과하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신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관습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예수께서 복음을 영접하지 않을 경우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고 한 말을 그런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이렇게 하라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구원에 대해 전도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한 것을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할 경우”라고 제한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을 향해 발의 티끌을 떨어버리고 떠났던 것은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쫓아내었기 때문입니다(행 13:49-52). 즉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접적으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할 의무만 있지 상대방이 구원받고 안 받고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복음을 전할 의무만 있습니다. 믿고 안 믿고는 복음을 들은 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믿지 않을 거라고 예단하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마귀에게 속임을 당한 것입니다. 요사이 떠돌아다니는 전도관련 영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날마다 전도했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간증이 줄을 잇고 있다는 영상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열매는 주님께서 맺게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6절을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촌에 두루 행하여 처처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능력과 권위를 받고서 각 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로부터 능력을 받고 받은 한 장소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곳저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당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서’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가라는 말은 단지 특정 지역으로 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의미로 이해한다면 목회자 이외에는 이 명령에 순종할 자가 없습니다. ‘가라’는 말은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하라는 뜻입니다. 즉 직장과 학교와 일터를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지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님께 불순종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말로만 전하지 않고 능력으로 전해야 합니다. 전도의 결과를 주님께 맡기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전도를 통하여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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