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상징, 주의 십자가를 다시 살핀다 갈 3:13 201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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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의 상징, 주의 십자가를 다시 살핀다 갈 3:13 2018.3.252018-12-03T23:44:3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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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부터 한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합니다. 왜 이번 주간을 그렇게 부를까요? 예수께서 2000년 전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는데, 대제사장과 장로들로부터 모함을 당하여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채찍질 당하시는 등 갖은 고난을 당하시다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종려주일’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에 무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예수님을 열열이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예수께서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메시아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는 줄로 생각하여 일종의 대관식을 행했습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무리들은 종려나무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깔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죽으시러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는데 모든 백성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추대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도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넓은 길을 가고 싶은데, 주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살고자 하는데, 주님께서는 죽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고난주간의 시작은 하나님과 인간의 생각이 전혀 다른데서 시작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십자가는 로마에서 잔인한 죄인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형벌 중의 하나였습니다. 원래 이 같은 사형집행은 로마인들이 최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십자가처형은 양 손과 발에 못을 박아 나무 십자가나무에 매달고 나무에 달린 채로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로 고통을 당하다가 72시간 만에 죽게 만드는 처형입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이렇게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13). 성경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감당하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저주를 받아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를 로마서 5장 12절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그렇습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가 죄를 범하여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한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함께 창세기 2장 16-17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먹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마귀의 뜻에 따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이 범한 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뜻과 생각대로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단지 과일 하나 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기 뜻과 생각대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토록 큰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두려움 가운데 살고, 죄 가운데 살고, 고통가운데 살고, 한번은 반드시 죽어야 하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서 고통을 크게 당할 경우 마치 지옥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은 아무리 큰 고통일지라도 곧 사라집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지옥에 던져지면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고통을 영원히 피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인인 모든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예수께서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죄인을 사형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여기서 ‘나무에 달리셨다’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과 관련하여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까지 지고 가신 십자가를 열십자가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는 십자 모양의 십자가가 아니라 아주 무거운 통나무였습니다. 예수께서 이것을 지시고 골고다 언덕까지 가셔서 이미 세워졌던 나무에 이것을 가로 질러 박고 그 위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 의해 붙잡히시자마자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그러자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무리들을 충동하여 바라바를 달라고 합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라.” 그러자 그들은 다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유대 백성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주장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를 잘못 이해하여 애굽에서 자기 민족을 구원한 모세처럼,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한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메시아가 오면 로마의 속박에서 해방되고 자기 민족이 세상을 통치하는 나라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처음에는 로마의 제국에서 압박당하는 그들을 구원할만한 자처럼 보였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어떻게 돌변하셨습니까?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처럼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자들에 의해 붙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에 갇히셨습니다. 이는 그동안 예수께서 보여주셨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께서 진정으로 메시아인가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되어가자 백성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니고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그를 십자가에 못 박자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굳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자고 했을까요? 그것은 신명기 23장 21절에 있습니다. “…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거짓 메시아로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하여 십자가에 처형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원수로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실례를 바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기기 전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성경을 열심히 읽었는데 하나님을 대적하였을까요? 그것은 구약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는 것보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읽어야 합니다(요 5:39). 예수께서 모든 성경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요 5:39)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끼고 읽어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예수께서 거짓 메시아로 착각하여 십자가에 처형한 것은 어마어마한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우리를 저주에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누가 감히 이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까지도 섭리하셔서 그분의 뜻을 이루십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어떻게 이루실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성취하실 것입니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세상을 더 사랑하고 점점 타락해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정한 시간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저주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은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주에서 속량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저주를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임을 알고 우리는 현대판 선악과를 먹지 않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선악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도록 유혹하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들과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과의 싸움에서 지면 아담처럼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또 다시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와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바로 고난입니다. 따라서 오늘 만을 고난주간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주간이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편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를 질 생각을 하고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받으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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