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드린 예배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삼하24장 18-25 201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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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드린 예배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삼하24장 18-25 2014.2.162018-12-03T21:14: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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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다윗이 갓 선지자의 말대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7만 명이나 죽이신 전염병 재앙을 멈추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왜 7만 명이나 전염병으로 죽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남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여 점점 주변의 적들과 전쟁을 하여 영토를 넓히더니 7년 만에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 왕국을 이루고 국내외적으로 안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게 한 것은 피상적으로는 백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군대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되는가를 조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강력한 군대를 지휘하는 성공한 지도자라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압장군은 다윗의 명령을 따라 9개월 20일에 거쳐 인구조사를 하고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자가 팔십만 명이고 유다에서는 오십만 명입니다”(삼하 24:9).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 왕에게 계속 쫓겨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다윗이 아둘람 굴로 도망하자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안 식구 뿐 아니라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수가 사백 명 가량이었습니다(삼상 22:1-2). 4백 명이 다윗 정권을 창출하는 모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만에 칼을 빼는 군사만 130만 명이나 된 것입니다. 3,500배나 많아진 것입니다. 몇 배도 아니고 3,500배나 많아졌으니 다윗이 얼마나 과시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매우 괘심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갓 선지자를 보내서 다윗에게 보내서 세 가지 재앙, 즉 칠 년 기근이냐, 석 달 동안 원수에게 쫓겨 도망할 것이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한다고 하며, 세 번째 재앙, 즉 사흘 동안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려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세 가지 재앙 중에서 전염병을 선택한 것은 고대인들은 전염병을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시는 형벌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백성들 가운데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자그마치 7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다윗은 자기 한 사람 때문에 아무 잘못이 없는 백성들이 그토록 많이 죽임을 당하자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삼하 24:17). 이에 하나님께서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셔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다윗이 갓 선지자의 말대로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올라가서 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재앙을 멈추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이 인구조사로 이스라엘백성 가운데 7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임을 당한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위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이 얼마나 큰 죄이기에 그토록 혹독한 형벌을 내리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볼 때에 전혀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토록 혹독한 재앙을 내리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사람이 많은 시대에도 한 번에 7만 명이나 죽는 일은 엄청난 재앙입니다. 이것은 유럽에서 1347-1352년 사이에 흑사병(선페스트)으로 유럽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400만 명이 죽은 것과 맞먹는 재앙입니다. 도대체 인구조사가 얼마나 큰 죄악이기에 하나님께서 그토록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을까요?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교만은 죄 중의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교만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혹독한 형벌을 불러옵니다. 교만하면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든 비신자이든 상관없이 심판을 받습니다. 혹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높아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의 교만을 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직접 심판하시지 않고 백성들을 심판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다윗이 직접 심판을 당하는 것보다 백성들이 심판당하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가 잘못했을 경우 부모를 심판하시지 않고 자식을 심판하심으로 고통을 더 크게 느끼게 하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도 과거에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 중에 가장 중요한 언약은 메시아 언약입니다. 그 언약이 삼하 712-13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이 언약은 한 마디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계승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사실상 성취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어떻게 성취하셨습니까?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예수를 탄생시키심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 언약이 이루어지려면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다윗이 죽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가 죽으면 그를 통하여 그의 후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그를 죽이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죄를 지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20: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밧세바와 함께 죽임을 당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밧세바가 죽임을 당하지 않고 대신 다윗의 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왜 다윗을 죽이시지 않았습니까? 역시 그를 죽이면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약속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 것을 절대적인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과 맺은 절대적인 언약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와 여러분에게는 잘못을 해도 하나님께서 취소하시지 않는 언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취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지은 죄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셨다면 죄 문제는 이미 해결 받은 것이고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다윗은 재앙을 당한 후, 갓 선지자의 명을 받고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갔습니다. 그가 그곳에 간 것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윗이 어떤 상황에서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가서 제단을 쌓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기 위해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올라간 때는 3일간의 전염병으로 7만 명이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한 때였습니다. 다윗이 그동안 수없이 많은 환난을 당했지만 이보다 더 크게 고통스러운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소에도 예배를 잘 드려야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더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그토록 사랑하셨던 이유는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크게 들어 사용하신 것도 당시 아합 왕이 왕비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을 파괴하고 바알 신당을 여기저기 세우고 온 국민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는 상황에서도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아직도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배 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인 청교도들이 영국에서 미국 대륙으로 건너간 것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마음껏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 대륙으로 건너가서 그들이 거할 집이나 공부할 학교부터 짓지 않았습니다. 교회부터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시고 지금까지 미국을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혹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배를 드리는데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가운데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예비하신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요즘 소치에서 동계올림픽이 한창입니다. 한국에 첫 금메달을 안겨준 이상화 선수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고 올림픽 2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화 선수가 그렇게 2번이나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하지정맥류가 허벅지까지 퍼졌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훈련을 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상화 선수가 하지정맥류 때문에 훈련을 게을리 했다면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겠다고 하자 아라우나가 어떻게 했습니까? 삼하 2422-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아뢰되 원하건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아라우나는 자신의 타작마당을 사용하겠다는 다윗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윗에게 공짜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제물이 필요한데 소를 제물로 사용하라고 드렸고 제물을 태울 나무로는 마당질 하는 도구와 소의 멍에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라우나가 이런 것을 다 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살 길이 막막해집니다. 소 없이, 농기구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라우나가 어떻게 다윗에게 그의 타작마당뿐만 아니라 번제에 필요한 소와 땔감들을 내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드리는 번제가 어떤 제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이 드리는 제사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사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우리의 생명, 물질, 시간, 몸을 기꺼이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비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을 육체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을 주시고. 우리가 짧은 시간을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고, 우리가 하찮은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차고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경옥 권사를 통하여 5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극한 환난과 가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물질을 믿음으로 심는 권사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그분의 남편인 장로님과 만나서 이야기 하면서 제가 그 권사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부인이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기 가정도 풍족하지 못한데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목회자 이야기를 들으면 뭉칫돈을 헌금을 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강남에서 잘 살다가 망해서 시화로 가서 폐지를 줍는 등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그 권사의 고모를 그분의 집에 모셨는데 그 고모가 돌아가기 전 그를 양녀로 입적을 하고 그가 가진 재산을 모두 그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전에 소천을 했습니다. 그 권사 받은 유산액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현금만 57억 원이고 은행에 있는 개인 금고와 부동산을 합한 금액이 400억이 넘습니다. 부동산을 공시지가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요지와 서울 은평구 뉴타운 지역에 가깝기 때문에 실제로는 500억은 족히 넘을 것입니다. 그 남편 장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시는 아내가 그렇게 주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결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울수록 하나님께 많이 심어야 합니다. 가난할수록 저금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작년에 많은 부채를 갚을 수 있었던 것도 어렵지만 매달 적금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제가 작년 12월 초에 필리핀 2차 선교사역을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고 온 교회의 목사님이 페이스북으로 여러 차례 예배당 확장 공사를 하니 기도와 물질로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러더니 지난 주 목요일에는 공사를 하다가 돈이 없어서 공사를 중단했으니 물질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하나님께서 뭔가 큰 것을 주시기 위해서 나에게 심으라고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확신이 왔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가서 얼마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그 목사님이 원하는 금액을 모두 송금해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뭐가 부족해서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헌신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 후일에 어떤 장소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솔로몬 성전을 짓는 터가 되어 이스라엘의 지명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드렸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라우나가 타작마당과 번제에 쓰일 소와 땔감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하자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왕은 아라우나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 하리라”(24). 다윗은 호의를 거절하며 아라우나에게 은 50세겔을 주었습니다. 은 한 세겔은 노동자 4일 품삯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하루 노동자 품삯을 10만원으로 계산하면 은 50세겔은 약 2,000만 원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상에는 제단을 쌓는 땅값과 소값으로 금 600세겔을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대상 21:25). 금 한 세겔은 노동자 60일 품삯에 해당되기 때문에 금 600세겔은 약 36억 원에 해당합니다(대상 21:25).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지불했던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희생이 없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희생을 치루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가족이 눈치를 주고 핍박을 해도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러 가지 헌금을 드리는 것도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대가를 지불하고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아라우나 타작마당으로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모두 여덟 구절입니다. 그중에 다윗의 이름은 네 번 나오는데 비해, 아라우나의 이름은 다섯 번이 나옵니다. 본문에서만큼은 그가 주인공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라우나가 어떤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여부스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부스 족속은 가나안 7족속 가운데 하나입니다. 즉 이스라엘백성들의 원수입니다. 또한 우리가 본문을 읽어서 알지만 아라우나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아들 넷을 데리고 농사지어 먹고 사는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다윗에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가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전후문맥을 아무리 살펴봐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내린 한 가지 결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가 다윗으로 하여금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으로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절할 수 없는 은혜가 가장 대적하는 바울을 꺾어서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 되게 하셨던 것처럼 아무런 자격이 없는 아라우나의 집을 성전 터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제단을 쌓게 하신 것은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삼아주실 것에 대한 예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아무 자격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 은혜를 깨닫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아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이시대의 아라우나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지불한 대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 은혜가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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