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 잔치 열렸네 눅15장 1-17 20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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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잔치 열렸네 눅15장 1-17 2012.2.192018-12-03T19:10:5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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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3월 11일 ‘손에 손잡고’라는 행사명으로 ‘온가족초청잔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 초청잔치는 6월 3일에 있을 상반기 총동원전도행사인 ‘D3행복축제’와는 다소 성격이 다릅니다. 온가족초청잔치는 자신이 모르는 사람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가족과 영적인 가족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즉 가족 중에 나오지 않고 있는 분이나 동신교회에 다니다가 이러저런 이유로 중간에 쉬고 있는 분을 집중적으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족이 아닌 사람은 초청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따라서 육신의 가족이나 영적인 가족 중에 전도 대상자가 없는 분은 다른 사람을 초청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세리는 세금을 징수하여 일정 금액을 납부한 후 나머지는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에 세리들은 과다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리들을 민족의 피를 빨아 먹는 자로 생각하여 그들을 죄인으로 여겼고 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 초청을 받아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수군거렸습니다. 바로 이때에 예수께서 그들의 수군거림을 들으시고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들을 죄인으로 취급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을 잃었다가 찾은 양으로 생각하시고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를 통하여 잃어버린 영혼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한 사람이라도 잃은 영혼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잃은 양을 찾은 목자의 비유’는 한 마디로 목자가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 양을 들에 놔두고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목자가 이렇게 한다는 것은 한 마리라도 양을 잃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즉 한 마리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곳저곳에서 ‘하나’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8장 5절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18장 6절은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5장 41절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2011년 10월 현재 지구촌 인구는 69억 7천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인류도 첫 사람 아담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1월 현재 세계 기독교인들이 약 23억 2550만 명이나 되는데 이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중요성을 알고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많이 낳아도 한 자녀 한 자녀를 귀히 여기듯이, 하나님께서도 지구촌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잃어버린 한 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합니다. 소위 전도 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처음부터 수천 명, 수만 명씩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을 소홀히 여기면 결코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이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이다. 난 한 사람을 붙잡는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 2천 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 물과 같다. 하지만 만일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 만큼 줄어들 것이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신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지 시작하는 것이다. 한 번에 한 사람씩…”

    그런데 여러분, 목자가 찾아 나선 한 마리 잃은 양은 어떤 양이었을까요? 건강하고 잘 생기고 말을 잘 듣고, 성격이 온순한 양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양은 힘이 없고 비실비실 대고 고집이 센 양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떼를 이루어 갈 때에 힘이 없어서 중도에 탈락했든지, 아니면 목자가 이끄는 대로 가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가다가 길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바로 그 양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 전도하면 안 됩니다. 젊고 건강하고 멋있게 보이는 사람이라고 전도하고 가난하고 늙고 병든 사람이라고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경은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약 2: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전도대상자임을 알고 전도해야 합니다. 어느 날 흑인이 여러 교회를 찾았지만 단지 자신의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어느 교회도 받아주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교회 문밖에 서서 울고 있었는데 환상 중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자기의 어깨를 만지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애야, 울지 마라 나도 이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밖에서 서 있단다.” 교회라고 다 주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교회가 주님의 교회입니다. 동신교회는 바로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해서는 손해나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목자는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99마리를 들에 두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짓입니다. 왜냐하면 99마리 양을 남겨 둔 곳이 우리가 아니라 들판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맹수가 나타나서 그것들을 헤칠지 모릅니다. 언제 양들이 자기 멋대로 다른 곳으로 가다가 늪에 빠져 죽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강도가 와서 99마리 전부를 도둑질해 갈지도 모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목자는 99마리의 양을 들판에 두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나섰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이나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산모가 한 생명을 탄생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감수해야 하듯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험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 광신고등학교 건너편에 있는 ‘명성유치원’을 심방했습니다. 원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그분이 우리교회 새벽기도회에 어떻게 나오게 되었고, 유치원을 어떤 목적으로 운영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기도하고 싶으면 낮 시간대에는 성림교회 교육관에 가서 기도를 하고, 새벽에는 아름다운교회에 가서 새벽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치원 직원 중에 한 분이 왕성교회 권사님인데 그분이 동신교회에 목사님이 새로 오셨는데 말씀이 너무 좋다고 권해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새벽기도회에 말씀의 은혜를 받아 당면한 문제를 한 순간에 해결 받았다고 하며 받은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유치원은 어린이집과는 달리 교육인적자원부 소관이라 원장이 교육청에 교육방침을 신고하면 그대로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유치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학부모들에게 수업시간표에 기독교 신앙교육을 넣겠다고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비신자들 학부모들이 반기를 들더랍니다. 결국 여러 사람이 유치원을 떠나갔고 경영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일로 너무 힘들어서 갈등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교회 첫 날 참석하여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자신의 몸이 감전이 되는 것 같아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마침 순종을 해야 한다고 설교했는데 그 말을 주님의 음성으로 듣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계획한 대로 추진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반대하는 자들이 지금은 오히려 협력자가 되었고 원아가 150여 명이나 되었고, 기독교에 관심을 보이는 학부모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부모를 면담하다가 거주지가 우리 교회와 가까우면 우리 교회로 인도하고, 아름다운교회 쪽에 가까우면 그쪽 교회로 인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러한 열매는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전도를 하다보면 손해를 보기도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영혼을 구원하는 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였습니다(눅 15:6). 그런데 잃은 양 한 마리의 가격과 잔치를 치루는데 든 비용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는 희귀 양이 한 마리에 25억여 원에 판매되었고, 영국에서 4억여 원에 판매되기도 했지만 중동지방에서는 양 한 마리의 값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2-3만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하려면 적어도 20-30 만원은 듭니다. 그런데 목자가 잃은 양한 마리를 찾았다고 벗과 이웃을 불러다가 잔치를 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돈보다 찾은 양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물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우리가 전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3월 11일 온가족 초청잔치를 하고, 6월 3일 ‘D3행복축제’를 하려면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잔치를 계획하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논리만 앞세우는 사람과 교회는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정말 복된 자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오직 돈을 버는데 관심을 갖고 있지만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온갖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중국에서 선교를 하던 허드슨 테일러가 고국에 돌아가 다음과 같이 선교 보고를 하였습니다. “허드슨 테일러가 상해에서 영파로 가기 위해 배를 탔는데 승객가운데 피터라는 중국인 청년이 같이 탔습니다. 그런데 그가 뱃전에서 장난을 치다가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졌습니다. 그 순간 허드슨 테일러는 깜짝 놀라서 근처에 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향하여 “어서 그물을 던져 바다에 빠진 청년을 건져 달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렇지만 어부들은 “오늘 고기 잡는 일이 바쁘니까 그럴 수 없다”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하도 다급하여 지금 당장 30원을 줄 테니 어서 건져달라고 다급하게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10원 만 더 얹어달라며 늑장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40원을 주겠다고 하자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그물을 던져 그 청년을 건져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고 말았습니다. 애써 인공호흡을 시켜보았지만 살아나지 못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청중가운데 몇 사람이 자리를 박차며 소리를 쳤습니다. “세상 천지에 그런 야박한 놈들이 어디 있소! 죽어가는 청년을 두고 몇 푼돈으로 흥정을 하다가 기어코 죽도록 만들다니 그런 날벼락 맞을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손을 저어 청중을 진정시킨 후 차분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자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그 청년을 죽도록 만든 어부들의 야박한 태도를 들으면서 통분을 터뜨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활한 중국 땅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채 한 달이면 1백만 명 이상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1년이면 1천 2백만 명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엄청난 비극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조차 두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혹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영혼들이 지옥을 행해 달려가고 있지만 우리는 죽

    어가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전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자만 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녔습니다”(4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잃은 양은 찾을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목자가 잃은 양을 끝까지 찾아나서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양을 찾는 과정에서 깎아내린 벼랑과 험준한 계곡을 넘을 때도 있고, 맹수를 만날 수도 있고, 밤길에 넘어져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작정한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상대방에게 무시를 당할 수도 있고, 큰 손해를 입는 경우도 있고, 큰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전도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구원을 받기까지 계속해서 전도해야 합니다. 만일 여인이 아이를 낳다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포기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포기하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산모와 아이가 다 위험합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면 우리나 전도 대상자나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도하다 포기하면 전도의 열매가 없게 되어 하나님께 큰 책망을 받게 될 것이고 또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도대상자를 선정했다면 끝까지 전도해야 합니다. 상황이 어렵다고 중도에 포기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우유통에 빠진 두 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두 마리가 점프를 하다가 그만 우유 통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 개구리의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한 마리는 우유통이 깊고 벽도 미끄러운 것을 알고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여 몇 번 팔다리를 저어보다가 얼마 못가서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우유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마리는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우유 속에서 팔다리를 저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유가 굳어져 어느새 버터가 되었고 개구리는 단단하게 굳은 버터 위를 디디고 기어 나와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전도하는 사람만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가족이 있어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까?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영혼 구원은 주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구원하실 줄 믿습니다. 이번 3월 11일이 그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무려 65년 간을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그의 친구를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어느 성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강해설교자인 제임스 보이스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얼마나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 저는 우리 동네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을 때까지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만일 저에게 이와 동일한 질문을 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삼성동과 관악구와 서울시와 대한민국과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믿을 때까지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흥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장차 크게 부흥될 것을 꿈꾼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부흥을 갈망하고 꿈을 꾼다고 저절로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잃은 양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3월 11일은 온가족을 초청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고, 재물보다 영혼을 사랑하며, 전도하기 위해 손해나 위험을 감수하고, 끝까지 노력해서 아직 까지 나오지 않는 가족과 동신교회를 잠시 떠난 자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잃은 양을 찾아 주님께 인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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