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죄인입니까? 큰 죄인입니까? 딤전 1장 14-17절 201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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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죄인입니까? 큰 죄인입니까? 딤전 1장 14-17절 2013.9.292018-12-03T20:52:5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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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 병법 모공편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상황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면 백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말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말로 와전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손자가 이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신을 알고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신을 알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희랍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을 델포이 신전의 흰 대리석 벽에 깊게 새기고 그들의 생활 지침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나름대로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왜 자신을 잘 알 수 없을까요? ‘주관적인 나만 존재하지 않고 객관적인 나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것은 주관적인 나만 조금 알 뿐입니다. 몇 해 전에 샘물교회 목사 박은조 목사님이 아프가니스탄 사건으로 사임을 표했지만 공동의회를 열어 94%의 재신임을 얻어 다시 담임목회를 하다가 작년에 은퇴하였습니다. 그가 피랍사건이 마무리 된 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피랍사건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너무 괴로워했는데 지금은 그들의 비난이 이해가 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추진했지만 비난 받을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잘못 판단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부족하고 연약하기 때문에 자신을 알아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번에 박대통령이 기초연금 대선공약을 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와 세수 부족을 이유로 공약 후퇴에 대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어르신들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과했습니다. 왜 약속과 신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까? 공약 당시는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세수가 부족할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장래 일을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부족을 모르거나 장래의 예측을 잘못해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몰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만 영향을 미칠 뿐 다음 세상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확히 모르면 이 세상과 내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고통과 저주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죄는 이 세상의 삶과 내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 문제만큼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가 추방된 것도 죄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도하거나 성경공부를 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80-90%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정할지라도 죄에 대한 생각은 다 같지 않습니다. 단순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죄 때문에 장차 죽으면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정도로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죄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완전히 다릅니다. 자신을 작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신앙생활을 잘하고, 선을 베풀고, 착하게 살면 죄 문제를 해결 받아 의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기전, 바울이 바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은 율법을 지키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의롭게 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죄송하지만 여러분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고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자신을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자신의 선행과 노력으로는 결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 이에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비록 구약시대의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51:5)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했고 모친이 죄 중에 출생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존재의 뿌리가 죄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죄인이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에게서 구원 받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오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큰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운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모세가 장인 이드로의 양 무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모세의 눈에 떨기나무에 불이 붙은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떨기나무가 타지를 않자 딸기나무에 가까이 가서 보려고 하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야 모세야하시면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하자 하나님께서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네 신을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때에 모세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을 뵙고서 두려운 마음이 들자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을 숨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6장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갑자기 스랍들이 나타나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라는 소리치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성전에 연기가 가득했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서 이사야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망하게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51-11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후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고기가 잡히지 않아 그만 잡으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베드로는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고 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이 잡혔고 다른 배에도 가득 채워 배가 물에 잠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때에 베드로가 어떻게 합니까? 예수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고기를 많이 잡았으면 예수님과 동업을 하자고 했어야지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떠나가시라고 했습니까? 베드로는 그 일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는 방법을 모르면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그러자 도마는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이때에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본 사람은 곧 하나님을 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는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할 때에 하나님을 만남으로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이 죄인 중의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라고 고백한 것은 그가 만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전 매우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자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3:2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죄를 범하지 않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단순히 지적으로 동의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자신이 의롭기 때문에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신에게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이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큰 죄인입니까? 아니면 내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착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은 죄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른다면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자신이 주님을 만남으로 큰 죄인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죄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까요? 누구 말대로 착하게 살면 해결 받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우리의 선행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나면서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죄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굴빛이 검은데 깨끗이 씻고 화장을 한들 얼굴빛이 희게 바뀔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또한 우리가 남자인데 여장을 한다고 여자가 될 수 있습니까?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죄인이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2절은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려주시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 용서를 받으려면 우리 대신 누군가가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사람들이 죄 용서를 받기위해서 죄 없는 동물이 대신 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죄 사함 받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그리고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이 죽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친히 인간으로 오셔서 단번에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 순간 모든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든, 지금 무슨 죄를 짓고 있든지. 또 미래에 우리가 어떤 죄를 짓든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죄 때문에는 지옥에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여러분의 죄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되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바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분당에서 목회할 때에 성도 중에 고병인집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여 오랜 세월을 형무소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출소한 후 교도소를 나온 사람들 중에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제가 10년간 청송감호소에 가서 설교할 때에 그분이 주로 운전을 감당했습니다. 분당에서 경매로 교회의 문을 닫게 되어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몇 해만에 그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통화를 하다가 그 집사님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목사님, 저는 지금 부자입니다. 제가 7년 전에 서울에서 전주로 내려갈 때에는 15천만 원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주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고, 최고로 비싼 차를 타고 다니고 부인은 미스 코리아 출신입니다. 그리고 장수에 대지 십만 평이 넘는 곳에 방이 수백 개나 되는 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내려오시면 최고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지를 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에게 그 비밀을 전해주어 부자가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한 두 가지 예를 들어 부자가 되는 비밀을 이야기 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최고로 대접해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봉사하는 수용시설에 치매환자가 있었는데 자기가 집에 들어가면 기쁘게 맞이하면서 집이가 최고야라고 하며 자기를 칭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매우 좋더랍니다. 그래서 혹 그 집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폭행하거나 해코지를 하면 그를 보호해 주었다고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봉사하던 수용시설에서 강아지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그중에 유별나게 자기가 집에 돌아오면 반기는 강아지가 있다고 합니다. 짐승이지만 자기를 유별나게 반기는 강아지가 너무 좋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남으면 꼭 싸다가 그 강아지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두 예화를 말하면서 자신도 하나님이 최고입니다라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보호해주시고 사랑해주셔서 지금처럼 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최고로 높여 드리고 그분을 사랑하면 그분이 우리를 높여주시고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집사처럼 주님을 최고로 대접해 드리고, 주님을 사랑하려고 하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 집사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최고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최고로 대접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가장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임을 깨닫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죄 사함을 받은 감격과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작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해도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닫고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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