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활을 설득시키고야 마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35절 2018년 8월 26일

//자신의 부활을 설득시키고야 마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35절 2018년 8월 26일
자신의 부활을 설득시키고야 마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24장 13-35절 2018년 8월 26일2018-12-03T23:55:2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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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과 예루살렘에서 시몬에게 보이신 사건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보이신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제자가 예루살렘을 떠나서 엠마오로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면서 최근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문의를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해석이 다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문의하다’는 것은 영어로 ‘reasoned’로 되어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뜻이 ‘…에 대하여 조리있게 논하다. 생각하다. 추론하다’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며 내린 결론을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평소 하신 일을 보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히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고, 5병2어로 5000명을 먹이셨고, 물 위를 걸으셨고, 군대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왜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느냐” 그들은 서로 이 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무엇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에 그들의 대화에 예수께서 끼어 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18-24절을 읽겠습니다.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말과 능한 선지자였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을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실 줄 알았지만 대제사장과 관리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그룹 중에서 어떤 여자들이 새벽에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본 것과 천사들이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말을 듣고 와서 하는 말을 또 다른 제자들이 듣고 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의 이야기기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이를 확인하지 못해 이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글로바의 말을 듣고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5-26절을 읽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예수께서는 먼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성경에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칭찬도 하셨고 책망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칭찬과 책망의 원인은 모두 같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는 칭찬하셨고 믿음이 없을 때는 책망하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책망을 받은 것도 그들이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즉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있으면 칭찬하시고 없으면 책망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믿음이 없으면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믿음이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올해가 다가기 전 한 사람을 전도해서 제자 삼으면 됩니다.
    예수께서 두 제자들을 책망하실 때에 그들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두려움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선지자들의 말을 더디 믿는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위로가 필요한 제자들을 책망하셨을까요? 그것은 마땅히 믿어야 할 것은 믿지 않은 상태에서 위로하면 그들이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위로가 아니라 책망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환난 중에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중 두 교회는 칭찬하시고 나머지 교회들을 책망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위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경우에 필요한 것이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으로 주님의 위로를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들이 더디 믿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26절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는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이 당연합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기에 죽으신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무엇만 알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즉 부활하신 것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전도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으로 끝이 아니라 죽으신 후 살아나셨다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것을 설득해야 할까요? 이것을 믿지 않으면 한 사람도 죄 문제를 해결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죄는 그대로 있을 것이고 우리의 믿음 역시 헛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책망하신 후 어떻게 하셨습니까? 27절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여기서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즉 구약성경 중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쓴 것을 찾아서 자세히 설명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성경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복음 24장 27절의 말씀과 요한복음 5장 39절이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모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이 둘의 상이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직접으로 관련된 것을 말한 것이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에 관해 직접적으로 기록한 것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기록한 것까지 모두 포함해서 말한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이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300여 곳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가복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2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예수께서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주시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마음을 움직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마음이 움직입니다. 단지 성경을 머리로만 이해하면 마음이 뜨겁지 않아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없습니다. 존 웨슬리가 세계적인 복음전도자로 쓰임을 받은 것은 그가 35세에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영향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자주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뜨거워져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주신 곳이 어디였습니까? ‘길에서’입니다. 한마디로 노상에서입니다. 예수께서 길을 걷는 중이라 말씀을 찾아볼 수 없는데 어떻게 말씀을 풀어주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평소 성경을 자주 읽으셔서 마음 판에 새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신앙지침서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성경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까이 해서 마음판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이 성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도록 훈련하는 것이 바로 ‘온가족튼튼양육 1과, 지금 구원받아야 합니다’와 ‘3분복음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가 모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있는데 ‘온가족튼튼양육 1과’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고 전하도록 훈련하는 것이고, ‘3분복음메시지’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도하도록 훈련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둘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 삼으면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두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어주시는 동안 엠마오에 도착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냥 그 마을을 지나치려고 하셨지만 그들이 날이 저물었다는 것을 핑계로 예수님을 붙잡자 그곳에 머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30절입니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예수께서 그들과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그런데 음식만 잡수시지 않으셨습니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마지막 성찬식을 연상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입니다.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들은 예수께서 떡을 떼어 주실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이렇게 하신 것을 회상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바로 앞에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회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한 달에 한 번만 했지만 다음 주부터는 매주하겠습니다. 그런데 성찬식에 참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 때나 아무 장소에서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3분복음메시지’와 ‘지금 구원받아야 합니다’를 개발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을 반복하여 심비에 새기고 있으면 항상 예수님을 잊지 않고 ‘가서 제자 삼으라’는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떡을 떼어주시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을 읽습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본문은 예수님의 몸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지금 그들과 대화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께서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하셨을 때는 사람의 눈에 보이시지 않은 모습으로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를 보면 예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손에 못 자국이 박힌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주장할 때에 성경의 한 구절만 인용하여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마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손에 못 자국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부활 시에도 죽기 전의 모습으로 부활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기 전의 모습으로 부활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내세에 관련 된 영적 진리들은 상대적으로 계시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자신이 경험한 것만 맞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을 비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고서 어떻게 했습니까? 33-35절을 읽습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3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자 곧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한 제자들과 함께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라고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제자들이 그렇게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증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두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에 그곳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성전수비대와 로마 군사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면 이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증거 하지 않는 것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아직 그것을 믿지 않거나 혹 믿는다 하더라도 확실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일로 낙담한 두 제자가 엠마오로 가던 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함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깨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부활의 증인이 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그들로 하여금 부활의 신앙을 갖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인간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일방적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따라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깨닫게 복음을 증거했듯이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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