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누가복음 18장 35-43절 2017.11.26

//인생의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누가복음 18장 35-43절 2017.11.26
인생의 장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누가복음 18장 35-43절 2017.11.262018-12-03T23:36:2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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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말씀은 한 맹인이 여리고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뜨게 된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만 이 기적을 기록하지 않고 마태와 마가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이 기적이 일어난 장소를 다른 복음 기자와 다르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맹인이 눈을 뜨는 기적이 여리고를 떠날 때에 일어났다고 말하지만, 누가는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눈을 뜬 자가 두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마가와 누가는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적이 일어난 장소를 정 반대로 이야기하고 있고 눈을 뜬 사람의 수도 다르기 때문에 혹자는 이 기적의 진정성을 의심합니다. 그런데 세 복음서 모두 맹인이 눈을 떴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이를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맹인이 눈을 뜨는 기적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본문 35-38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누가는 맹인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길에서 구걸하다가 만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구걸하던 중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마치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맹인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계획아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맹인을 찾아가셨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맹인이 구걸하는 장소로 지나가셨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오가실 때에 여리고를 들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여리고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가실지라도 반드시 맹인이 구걸하는 장소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맹인이 구걸하는 곳을 지나가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그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는 기적은 맹인이 주님을 먼저 불렀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맹인을 찾아가셨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찾아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사람과 만나려면 밑에 사람이 윗사람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광보좌를 다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맹인이 눈을 뜬 기적 자체를 놀라거나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고 그 사랑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께서 왜 맹인을 찾아가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께서 맹인을 찾아가신 것은 그분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은혜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36-38절을 읽습니다.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 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맹인은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 중에 어떤 자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맹인은 즉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쳤습니다. 맹인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얼마나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인을 찾아가신 것은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아무에게나 찾아가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자를 찾아가십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를 만나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계속해서 만나려고 해야 합니다. 주님을 한번 만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주님과의 만남이 계속해서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마음이 식어지면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믿을만한 것이 못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에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까?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모하고 그 말씀을 심비에 새겨놓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귀의 유혹에 쓰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큐티를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큐티를 한다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말씀을 묵상할 때에 마귀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맹인이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자마자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어서 알고 있듯이 무리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맹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을 뜻하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부를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귀가 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걸해서 먹는 자였기 때문에 길가에 앉아 이 소리 저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셨다는 말을 듣자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메시아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소리가 있지만 다른 것은 아무리 들어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구원하신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두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이 가까이 해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맹인처럼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하므로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장애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9절입니다.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그가 큰소리로 예수님을 부르자 앞서가는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이것은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는 과정에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장애물이었습니다. 맹인은 자신을 도와 주님께 가까이 가게 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각지 않은 장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이 주님을 만나는 데 장애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우리가 주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고 이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맹인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더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장애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장애를 만났을 때에 동일한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맹인이 어떻게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38-39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비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함께 38-39절을 읽습니다.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 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맹인은 무리들이 맹인에게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맹인은 더욱 소리를 높여 다시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맹인이 이렇게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임을 굳게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굳게 확신하면 장애물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께서 그리스도시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확신하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온 천하에 다니며 훈련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초대교회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도하고 가르치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반복해야 할까요? 그것을 반복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어도 실제로 삶 속에서는 돈을 구원자로 믿고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면 죽임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에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헌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훈련을 받아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으면 어떤 장애가 있어도 주님 따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생명처럼 여기는 돈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이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자 어떻게 하셨습니까? 40절입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예수께서는 맹인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맹인을 가까이 데려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걸으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맹인을 만나주셨습니까? 맹인이 장애가 있음에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구원자이심을 믿고 장애가 있어도 간절히 구하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문제가 있음에도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가 간절히 간구하지 않고, 기도하다가도 조그만 장애가 생기면 쉽게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께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먹고 살만하다고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영적으로는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의 위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나아질수록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는 것은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만한 것입니까? 교만하면 망합니다. 더욱 번성할수록 하나님을 찾아야 물질의 시험을 이기고 끝까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맹인을 부르셔서 그의 눈을 고쳐주시기 전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1-42절입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예수께서 맹인을 부르시고 “네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맹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뻔한 것을 물으셨을까요? 그것은 그의 입술의 고백을 받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냥 주시지 않고 먼저 우리가 그분께 나아가 도움을 청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주님께서 우리와 대화하시기를 목말라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 모든 것을 가지고 대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맹인이 주님께 나아가 눈을 뜨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43절입니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맹인이 눈을 뜨자 맹인 스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따랐고 이를 본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눈을 뜬 자나 이를 본 자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도 문제 앞에서 주님을 찾으면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이를 본 자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은혜와 복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조금도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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