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죠 요3:16-17 2013.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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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시죠 요3:16-17 2013.6.162018-12-03T20:32:1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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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 자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4:8).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악인이 형통하는 것을 보고만 계시냐고 합니다. 즉 악인이 왜 잘 되도록 버려두시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이 정말 형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악인의 형통은 잠시 뿐입니다.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한 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 결국은 죄가 드러나 철창신세를 지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이 세상에서만 죄가 드러나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잠시 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한 것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그냥 보고만 계시냐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 당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이 각종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시 107:10-1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또 혹자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그까짓 선악과 하나 먹었다고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실 수 있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은 것은 그까짓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하셨는데,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한 가지를 거역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를 저주하신 것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이유로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거나 회의를 품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0.1%라도 의심하게 되면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성격이 어떠하고 우리가 그 사랑을 맞이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성경 32,173구절 중에서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마치 어둠이 어둠을 숨길 수 없고 빛이 빛을 숨길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존재방식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을 숨기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에 주목하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땅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자들이 어떤 사람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죄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지식과 교양과 선한 행실로 거룩한 척 꾸미지만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 욕심과 시기와 질투와 음란과 호색과 각종 악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렘 17:9)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우리가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 것을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요소가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원수로 행동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결박하여 핍박하고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기독교를 뿌리채 뽑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온 세상에 전파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십니까? 오늘 우리의 눈에 원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크게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께 전혀 도움이 안 되어도 하나님께극진히 사랑 받는 존재임이 깨달아져야 합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믿는 자들을 크게 박해하였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1만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쳐서 죽게 하여 한강물을 피로 물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잠두봉이 목을 자른다는 뜻을 가진 ‘절두산’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고, 10대안에 들어가는 교회가 5개나 있고, 선교사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파송하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수십 년 전만해도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가난 속에 있던 이 민족이 이토록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습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에게도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심으로 사랑하셨다는 말은 하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내놓을 수 있습니까? 아니 10자녀가 있을지라도 그 중에 하나라도 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주셨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어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버립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순국열사라고 합니다. 또 혹자는 위기에 처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던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살신성인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순교자라고 합니다. 저 역시 순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어차피 한 번 죽는 것인데 사고사나 병사나 자연사로 죽지 말고 주님의 일을 하다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생자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독생자를 주시는 방법을 선택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구원 받기 위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하는데 죄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치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 중에는 그럴만한 자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손이 아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말 사랑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돌아가셔야지 왜 그의 외아들을 내주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자신이 희생을 합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고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 내주셔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육신을 가진 사람처럼 후손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광보좌를 다 버리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래서 바울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7-8)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증거라고 말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만물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대신 돌아가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라고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사랑을 깨달을 때에 찬송가 304장처럼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하나님의 크고 넓고 높고 깊은 사랑을 기록할 수 없고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이미 이토록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며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 뿐만 아니라 그 죄에서 건짐을 받았고 자신의 주인이 주님이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맛 본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아십니까? 그러나 그 큰 죄에서 건지심을 받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여러분의 죄에서 건지신 분이 여러분의 인생에 진짜 주인이심을 믿습니까? 우리에게 이 확신이 없다면 반드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됩니다(요 3:17) 그렇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요구하시는 것은 돈이나 선행이나 학식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9절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선한 행실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자신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며 오직 믿음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의심이 가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복된 소식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을 복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구원의 조건으로 죽을 때까지 매월 십일조를 1억 원씩 해야 하고, 주일은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지켜야 하고, 전도는 매일 하루에 한 명씩 일 년에 365명을 해야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 가운데 구원받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오직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것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가 살다가 이혼을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부인이 자꾸 이혼을 하자고 요구하는데 남편은 도저히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다 주었고 많은 것을 아내에게 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이 좀 달랐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지만, 꼭 필요한 것 한 가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자신입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선행이나 물질이 아니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이것이 믿어지면 여러분은 이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죄송하지만 아직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후에는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우리의 행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거나 십일조를 드리거나 봉사를 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하여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자주 변합니다. 돈이 있고 건강할 때에는 사랑하는 척 하지만 그것이 떠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우리도 한 때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각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습니까? 혹자는 원수관계로 혹자는 용두사미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변한다는 것은 그 사랑이 일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기에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배신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부모가 속을 썩이고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듯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그분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속히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한 사람도 멸망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벧후 3:9).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혹 넘어졌을지라도 다시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다시 예수께로 돌아가 그분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이는가 하면 혹자는 거절을 합니다. 그러나 영접과 거절의 결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죄 가운데 살다가 죽은 다음 심판 받아 지옥에 던져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여 이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살다가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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