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회는 놓치지 마세요 행 26장 19-29 201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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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회는 놓치지 마세요 행 26장 19-29 2012.12.232018-12-03T20:05:5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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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말씀을 듣기 전, 주님께 이렇게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 해결해야 할 문제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분이 계십니까? 그래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감사로 예배를 드리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총독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원래 1절부터 읽어야 하지만 시간 관계상 19절부터만 읽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바울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또 그가 가는 곳마다 전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유대교 바리새파로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자였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다가 죽이는 것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자였습니다. 하루는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정보를 알아내고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들을 잡아올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던 도중 갑자기 예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하자, 예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에 그는 자신이 핍박하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회심하여 그분의 충실한 종이 되었고 이후로 전 세계에 다니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곳저곳 다니면서 무엇을 전했습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한 마디로 구약성경이 예언한 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곳저곳 다니면서 복음, 즉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비신자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전하지 않고 다른 말을 해서 교회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말을 합니까? “우리 교회에 한 번만 와 달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왕 전도하려면 성경적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성경적인 방법으로 전도를 할 수 있을까요? 복음을 전할 때까지 반복해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식은 죽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일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 강조할 때에 ‘식은 죽 먹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식은 죽을 먹는 것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갓난아이가 처음부터 자기가 알아서 밥을 먹습니까? 아닙니다. 어머니가 먹여주는 과정을 통하여 점점 혼자서 밥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식은 죽을 먹는 것도 반복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훈련 받지 않으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비신자들을 만나도 입한 번 벙긋하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나가서 담대히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반복해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벧전 3: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번, 평신도사역자들이 주일 오후 예배시간마다 3분복음스피치를 발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을 계속 반복하도록 한 것은 복음을 자꾸 말하고 들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누구를 만나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에 우리교회의 허리에 해당하는 스테반 회원들이 양육과 제자훈련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오늘 수료증을 받습니다. 새해 첫 주부터 3개월간 사역자훈련을 해서 누구를 만나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강하게 훈련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일은 못해도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은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이 가는 곳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을까요? 그것은 복음을 듣고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선한 일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전 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율법을 잘 지켜야지만 의로와지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는 순간 그것이 허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라 복음을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찾아다니며 은혜의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의의로 바울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간이 착한 일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인간 안에는 근본적으로 선을 행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선행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는 말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뭔가를 해야지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은 종교적 행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예수께서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이유는 종교적 행위들이 구원을 받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주일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는 것이 구원을 받는데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정말 복음을 믿는다면 혹 죄를 짓거나 주일을 지키지 못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의인이 될 수 없고 우리의 행실은 구원에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구원 받고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하심이라”(엡 2:8-9)고 말씀하고 있고,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총독은 바울의 이야기를 듣더니 바울에게 ‘미쳤다’고 했습니다. 왜 베스도총독이 바울의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말을 했을까요? 지식인답지 않은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양대 학파가 있었는데 하나는 온건파인 힐렐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강경파인 샴마이 학파입니다. 그런데 가말리엘이 바로 힐렐의 수제자이고,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즉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말은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공부를 많이 하고 똑똑한 사람이 당시 십자가에 저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삼일 만에 살아났고 그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이성과 배치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거절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에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세일즈맨으로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합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이고, 실패하는 사람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평신도 시절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전도를 중단한 적이 있었습니다. 전도를 나가 문을 두드리면 대부분 거절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욕을 하기도 하고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위해 벨을 누르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나가서 전도하자 두려움을 극복하게 되었고 누구를 만나도 담대하게 복음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에 그들이 보인 마지막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30-32절을 읽어보십시오.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바울이 어떻게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지만 그들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런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셔서 자신의 종으로 삼으신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행 9:15). 그래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죄수의 몸으로 법정에 서게 함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을 통하여 총독과 왕앞에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시 최고의 석학이고,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만난 최고의 복음전도자를 통해 복음을 들었지만 그 기회를 놓쳐버렸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처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쳐 버린 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 최대의 축복의 기회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붙잡은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빌립보 감옥의 간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준 일로 발이 차꼬에 채워져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감옥에 갇혔지만 한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서는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더 여기 있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간수는 감옥 안으로 뛰어 들어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을 데리고 나가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바울이 말한 대로 자신 뿐만 아니라 온 가족들도 함께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을 기회를 놓친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그와 못지 않게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옥에 갈 사람을 구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회를 놓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지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해서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가면 그 피값을 묻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겔 3:16-21). 여러분은 과학기술처 장관과 호서대 총장을 역임한 정근모 장로를 잘아실 것입니다. 그가 지금도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고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김재익 박사에게 복음 전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김재익 박사는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정근모 장로는 친구인 김재익 박사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피일차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재익 박사가 대통령을 수행하고 동남아로 떠나기 전에 또 한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만 망설이다가 결국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미얀마에서 급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아웅산에서 폭파사건으로 여러 각료들이 죽고 그 중에 김재익 박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근모 장로는 이 소식을 듣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절친했던 한 친구가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에게 예수님을 전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전하지 못해 그를 지옥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러 호남선 열차를 타고 여수를 향하여 달리고 있었습니다. 잠을 자려고 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있는데 순간 성령께서 옆 노인에게 전도하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문을 열고나서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화를 내면서 “이제 보니 예수쟁이로구먼. 내가 뭐가 답답해서 예수를 믿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전도를 하자 노인은 순찰중인 안내원을 불렀습니다. “이봐요. 내 돈 내고 편히 가려고 일등 칸에 탔는데 이 예수쟁이가 날 보고 자꾸만 지옥에 간다고 공갈을 하니 더는 못 참겠소. 차비를 물어주든지 이 예수쟁이 입을 막아 주든지 하시오.” 그래서 더 이상 전도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포기하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소주를 한 병 사가지고 오더니 “아까는 미안했소. 소주나 한 잔씩 하며 이야기하십시다.”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어르신 그렇게 술만 좋아하시면 건강에 해롭습니다.”라고 거절하고, 그 노인과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포기하자 노인은 술병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방금 전 호통을 치던 승무원이 다급하게 달려와 목사님을 깨우며 물었습니다. “아까 그 노인을 아시나요?” “아니요. 모르는 분인데 그냥 전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안내원은 “그 노인은 술에 취해서 승강장 난간에 있다가 그만 실족해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은 그 노인에게 더 강력하게 전도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회개했다고 합니다.

     

      독일의 극작가 파울은 “기회가 두 번 다시 당신의 집 문을 두드리라고는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놓치고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특별히 영혼을 구원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 전도하지’ 라고 미루면 그 기회를 영원히 놓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이 그때까지 살아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지구의 종말이 언제 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금년 성탄절을 ‘비신자와 내 가족을 초청하는 날’로 지킵니다. 이 날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교회로 초청해야 합니다. 초청에 대한 거절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지지하는 대통령후보는 자랑하고 후원하면서 예수님을 믿자고 독려하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서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한 영혼이라도 주님께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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