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감사해보세요 합 3:17-18 20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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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감사해보세요 합 3:17-18 2015.11.222018-12-03T22:58:3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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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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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종이에 감사할 이유를 하나하나 적어간다면 몇 가지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대충 생각하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모두 감사의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공기나 햇빛을 우리가 마음껏 마시고 쏘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병원에 입원해서 하루 종일 산소를 마신다면 얼마를 지불해야 할까요? 약 960달러나 든다고 합니다. 1,100원으로 환산해도 하루에만 백만 원을 지불해야 합니다. 일년만 산소마스크를 써도 3억 6천 5백만 원이나 됩니다. 십년이면 36억이나 됩니다. 평균수명 80이라고 잡고 계산하면 약 3천억 원이나 됩니다. 그러면 80세까지 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또 햇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햇빛이 없다면 식물이 광합성을 하지 못해 다 죽게 되고 식물을 먹는 동물이 먹이를 먹지 못해 다 죽게 되어 생물체가 사라집니다. 또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서 물이 다 얼기 때문에 비가 내리거나 태풍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한 가정 당 한달 평균 전기사용료가 1,175달러라고 합니다. 1년이면 14,100달러입니다. 1,100원으로만 계산해도 1천 5백만 원이나 됩니다. 우리나라도 그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햇빛이 없어서 모든 것을 전기로 해결한다고 해보십시다. 그 비용은 천문학적인 금액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공짜로 사용하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처럼 감사해야 하지만 감사하지 않고 사는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감사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감사거리를 찾아야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도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감사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1620년 신앙의 자유를 찾아 102명의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긴 항해 끝에 미국 동부에 있는 플리머스에 도착했습니다. 항해하는 동안 44명이 죽었고, 첫 농사를 짓는 동안 풍토병과 인디언의 습격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듬해 첫 열매를 거두었지만 곡식은 거의 수확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푸성귀 조금하고 칠면조 몇 마리를 놓고 추수감사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들이 감사할 상황이라 감사한 것이 아니고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도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그동안 감사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지금까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된 것만을 감사하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뜻대로 안 된 것이 결과적으로는 도리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종종 살면서 좋은 일 같이 보였지만 불행하게 되고, 불행한 일처럼 보이지만 좋은 일로 끝을 맺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혹 여러분의 소원대로 뭔가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지금보다는 돈을 좀 더 벌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사회적으로는 좀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도 있고, 명예를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불행하게 되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성공했지만 불행으로 마친 사람들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는 역사상 가장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그는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왕이 되기 전에는 거룩한 삶을 살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칭찬을 받았지만, 왕이 되고나자 타락하므로 그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소원하는 대로 되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전부가 아닙니다. 그리고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좋게 끝날지 안 좋게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것을 좋은 결과로 끝맺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감사를 보시고 화를 복으로 바꿔주시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가 형들에게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 옥중에 갇혔습니다. 게다가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우리는 대개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수렁에서 건지셨고 결국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대로 당장 성급하게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기고만장하지 말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어제 큐티를 모두 여러분에게 보냈습니다.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조금’ 참지 못해서 다투고 혈기를 부리고 원망하고 화를 쏟아내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도네이션이 우리의 계획과 뜻대로 빨리 이루어지 않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만일 도네이션이 빨리 이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우리의 생각과 계획대로 재정을 사용해서 주님께 호되게 책망을 받거나 아예 공동체가 와해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셔도 넘어지지 않을 때에 반드시 되게 하실 것입니다. 자신이 소원하는 일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로, 지금까지 주님께 드린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헌금을 드리면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고백을 합니다. 즉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헌금을 드립니다. 그런데 감사예물을 드리고 난 후에는 드릴 때에 가졌던 감사한 마음을 곧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드리고 난 후에도 드린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며 감사했습니다(고전 15:10). 바울만이 아닙니다. 솔로몬도 그랬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번 추수감사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지금까지 주님께 헌금을 드리고 몸을 드린 것을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심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반드시 복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받으시기만 하는 분이 아닙니다.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저는 이것을 종두득두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법칙이 세상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열심히 사업을 경영하지만 생각대로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자영업자들을 보십시오. 자영업자들 중에 사업을 대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하는데 대충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숨을 걸고 합니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의 성공률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7년 안에 문을 닫는 곳이 70%라고 합니다. 또 학생들이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공부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모두 들어갑니까? 들어갈 성공률이 극히 적습니다.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그토록 헌신하지만 부모의 기대에 미치는 자식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과거에 상수동에서 목회할 때에 전도하러갔다가 어떤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자기 자식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오직 큰 아들을 성공시키겠다고 온갖 일을 다해가며 뒷바라지를 해서 일류대학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서 결혼하더니 돌변해서 자기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는 종두득두의 법칙이 100%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두득두의 법칙이 100% 적용되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심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린 시간과 물질과 몸에 대해 철저히 보상하십니다.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도 잊지 아니하시고 갚아주십니다. 갚아주실 뿐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잠깐’을 드리지만 주님께서는 ‘영원’을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갚아주심을 바라보고 힘든 가운데서도 주님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심은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자신의 약함을 감사해야합니다. 약함이란 병이 들거나 건강치 못한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약한 것을 감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자신의 약함을 기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우리 함께 성경을 찾아서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10절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신의 육체에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탄의 사자’가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논쟁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의 눈이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빛가운데 주님을 만났을 때에 빛이 너무 강렬해서 시력에 장애를 입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3-15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말한 것은 바울의 눈이 나쁘기 때문에 눈을 빼주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까지라도 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자기를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어떻든 바울은 ‘사탄의 사자’라는 약함을 통해서 온전해졌고 강한 자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기뻐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건강해야 온전하고 강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으로 강하게 되고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우리의 약함을 인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약함으로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므로 전능자의 능력을 힘입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혹 자신의 약함으로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소위 말하는 일류대를 나오지 못하고, 혹 가진 것이 없고, 혹 몸이 건강치 않는 것 때문에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삼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머물게 하므로 온전해지고 강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넷째로, 불행당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불행한 일을 당했어도 감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욥입니다. 욥이 당한 불행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불행이 아닙니다. 그는 한 명도 아니고 열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재산의 일부만 잃어버리지 않고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몸의 일부만 아픈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어야만 했습니다. 한 마디로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인류 역사이래 욥처럼 불행한 일을 짧은 기간에 불행을 당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불행가운데서도 욥은 단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의 고백을 한번 함께 읽겠습니다. 욥기 1장 21-22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1-22)
    어떻게 욥이 불행가운데서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하여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그가 당한 엄청난 불행도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불행을 그냥 보고만 계시지 않고 섭리하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은 감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하박국은 없고, 없고, 없고, 또 없었지만 감사할 것을 찾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거리를 찾아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화를 변하여 복으로 바꿔주시고,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주십니다. 전천후 감사가 저와 여러분의 삶의 방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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