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알고 전도하세요 눅14장 16-24절 2012.5.27

//이것은 알고 전도하세요 눅14장 16-24절 2012.5.27
이것은 알고 전도하세요 눅14장 16-24절 2012.5.272018-12-03T19:18:42+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이것은 알고 전도하세요 눅14장 16-24절 2012.5.27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5

    드디어 D3행복축제가 한 주 남았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전도를 위해 그동안 힘차게 달려온 우리교회에 행하실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소망이 넘치고 기대가 됩니다. 서로 인사합니다. “6월 3일은 태신자를 교회로 인도하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큰 잔치 비유’라고 합니다. 이 비유는 청함을 받았지만 계속 거부하는 자는 결국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하여 전도할 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전도대상자의 자존심을 살려주어야 합니다. 16-1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본문을 보면 주인이 손님을 어떻게 초청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초청을 한 번만 하지 않고 두 번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잔치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종을 보내서 1차 통보를 하고 잔치 준비가 끝난 후 다시 2차 통보를 하여 다시 초대하였습니다. 이렇게 잔치에 두 번이나 초청을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습관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초청을 두 번이나 한 이유는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한 번만 초청하면 잔치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초청을 이중으로 한 것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마음의 문을 열 수 없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말하거나 무시하면 안 됩니다. 혹 부모가 자식을 전도하는 경우라도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인격을 존중하고 마치 다른 사람을 전도하듯이 해야 합니다. 아니꼽고 치사해도 꾹참고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야 합니다.

    성경에는 ‘오라’는 단어가 무려 1,900번이나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하나님께서 이처럼 우리에게 ‘오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초청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우주를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 마음대로 우리를 움직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토록 우리에게 ‘오라’고 초청하시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추신 것도 바로 우리의 자존심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영혼을 구원하기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여주고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위해 자신을 낮추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십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자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위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비신자의 거절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 18-20절을 보십시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혹자는 ‘밭을 샀으매 나가봐야 한다’고 했고, 혹자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야 한다’고 했고, 혹자는 “장가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 것은 모두 핑계에 불과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밭이나 소를 산 사람이 그냥 샀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검토하고 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돈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또 장가를 든 사람도 혼인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인사하기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잔치에 와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 받은 사람들은 모두 이유를 대며 초청을 거절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도를 하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거절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우리의 삶이 그들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에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 자들이 잘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태안면 원유사건). 혹자는 죄를 많이 져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병이 많아서 의사에게 가지 못하겠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고 죄인을 부르러 오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너무 바빠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쁩니다. 초등학교 학생으로부터 전업 주부에 이르기까지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중요한 것을 먼저 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면 그분과 관계 맺는 일을 가장 먼저 할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전도를 거절하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당장의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장차 벌어질 잔치에 대하여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오직 이 세상만 생각하고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복음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후의 세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심판을 받아야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비신자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는 이렇게 비신자들이 죽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복음을 거절한다는 것을 알고 낙심하지 말고 그들이 영의 눈이 열릴 때까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셋째로, 먼저 찾아가야 할 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초대받은 자들이 거절하자 주인은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종들이 그대로 하자 그들이 잔치에 응하였습니다. 그런데 잔치의 초청에 응한 자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가난한 자, 몸이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힘들게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고 등이 따듯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고통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려운 상황은 최적의 전도시기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에는 많은 종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분파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입니다. 그들이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신앙은 180도로 달랐습니다. 바리새파는 부활과 영과 천사가 있다고 믿었지만, 사두개파는 이 모든 것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왜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신앙이 전혀 달랐을까요? 그것은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삶이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두개파들은 주로 세상에서 든든한 기반을 잡고 있었지만 바리새파는 주로 세상적에서 신분이 낮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천국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될 때는 주님이 빨리 오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뭔가 잘 안되면 빨리 세상의 종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혹 주변에 사업이나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분들이 우선적으로 전도할 대상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고기는 아무 때나 낚시꾼이 던진 미끼를 먹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야 미끼를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을 전한다고 아무 때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일이 마음 먹은 대로 안 되어야 인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줄 깨닫고 절대자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야 마음이 무너져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공수부대원들이 땅에 있을 때는 전도하면 자기 주먹을 믿으라고 하며 거절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중에서 낙하하기 전에는 다 기도해달라고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혹 낙하하다가 잘못해서 죽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의 주변에 사업에 실패하거나 병이 들거나 여러가지 문제를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까? 바로 이 때가 전도할 때임을 알고 찾아가야 합니다.

    넷째로, 전도는 강권해야 합니다. 22-23절을 읽어보십시오.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우리는 여기서 ‘강권하여’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억지로 권하여 데려온다’는 말입니다. 즉 상대방이 싫어해도 설득해서 데려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는 상대방이 싫다고 그만 두면 안 됩니다. 단호히 거절해도 끝까지 설득해서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거절한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강권해서라도 비신자들을 주님께 데려와야 할까요?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은 결국 죽은 다음 심판 받아 지옥에 가야 합니다. 비신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지옥을 향해 특급 열차를 타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얼마 전 시속 430km/h를 달리는 고속열차 해무를 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145km/h가 빠른 575km/h 시속으로 달리는 고속열차가 있습니다. 그런데 비신자들이 지옥을 향해 달리는 특급열차는 프랑스 고속열차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강권해서라도 주님께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강권해서라도 전도해야 하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로, 비신자가 죽으면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비신자가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으면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진다는 것을 정말 확신한다면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과 친척을 어찌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아침에 가정마다 부모와 자녀들 간에 실랑이를 벌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식사를 하게 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자녀들은 밥 맛이 없느니, 늦었다니 하면 아침을 먹지 않고 그냥 가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자녀들이 먹지 않겠다고 하는데 부모는 억지로라도 먹이려고 할까요? 아침을 먹지 않으면 건강에 아주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을 먹지 않아도 건강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굳이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해서 먹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비신자가 사후에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절감한다면 강권해서 전도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은혜의 교리’를 잘못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원은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은혜 사상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교리를 전도에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하나님께서 전도를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전도해야 합니다. 공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심리를 빗대어 만든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여객기로 개조된 B29 전투기가 운항 중에 그만 엔진이 고장 나고 말았습니다. 하는 수없이 낙하산으로 비상착륙을 시도해야 하는데 다들 겁이 나 뛰어내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장이 안 되겠다 싶어 독일인 승객부터 불렀습니다. 그는 독일인 승객에게 ‘히틀러의 명령이니 뛰어내리시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이, 히틀러’하며 뛰어내렸습니다. 그 다음에 일본 사람을 불러 ‘천황 폐하의 명령이니 뛰어 내리시요’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우데스까?’하며 뛰어내렸습니다. 프랑스 사람에게는 ‘저 아래 낙하산이 펼쳐질 것을 상상해보십시요.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습니까? 당장 뛰어내리십시요’했더니 두말 않고 뛰어내렸습니다. 미국 승객에게는 ‘이미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뛰어내렸으니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당신도 뛰어내리시오.’라고 했더니 군말 없이 뛰어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이 남아있었습니다. 기장이 그를 가까이 불러서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소곤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한국인이 ‘정말이죠?’ 하며 뛰어내렸습니다. 기장이 귀속 말로 뭐라고 했기에 한국사람이 즉시 뛰어내렸는지 아십니까? ‘뛰어내리는데 돈 안 받아요. 공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공짜로 받았지만 가만히 있어도 잃어버린 영혼이 자동적으로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전도해야 합니다. 자신은 한 사람도 전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6월 3일은 우리가 처음으로 실시하는 D3행복축제의 날입니다. 이 날 행사에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족이든 친지든 한 사람씩은 반드시 초청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작정하신 분이 없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음주에는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6월 3은 D3행복축제의 날입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