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까지 참아야 합니다 눅 22:47-53 201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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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까지 참아야 합니다 눅 22:47-53 2018.6.172018-12-03T23:50:0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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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다 마치시기 전, 가룟 유다를 앞세운 한 무리가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47절). 여기서 ‘무리’는 대제사장과 성전의 경비대와 장로들을 가리킵니다(52절). 그런데 그들이 직접 예수님을 잡으러 오지 않고 왜 가룟 유다를 앞세워서 입맞춤을 하게 하고 체포하려고 왔을까요? 일반적으로 가룟 유다가 예수께서 어디에 계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앞세웠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를 앞세워 예수를 파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그들이 직접 체포하면 민중 폭동이 일어날 확률이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만 해도 예수님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체포하면 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는 대충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틈을 노리다가 공격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영혼을 구원해내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합니까? 전도를 제대로 하지도 않지만 혹 해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고 되는 대로 합니다. 육신의 자녀도 10개월이라는 준비과정이 있는데 어떻게 준비를 하지 않고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초대교회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기 전에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와 마귀는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귀에게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치밀함과 준비성입니다. 예수께서도 그것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뱀같이 지혜로워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뱀은 아무 때나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기회를 엿보다가 가장 넘어뜨리기 쉬운 때에 공격합니다. 바로 우리가 전도할 때에 이 방법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마귀가 금지된 선악과를 아담에게 먹도록 했습니까? 미리 치밀하게 연구하고 아담의 약점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너무 사랑하는 것을 알고 먼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게 한 후 그녀가 그것을 아담에게 주면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자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오자 예수께서 그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48절입니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이 질문은 사복음서 중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따라서 누가는 어떤 의도를 갖고 기록한 것이 분명합니다. 누가는 어떤 의도를 갖고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그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2장 21-22절을 읽습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눅 22:21-22).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유월절에 저녁 식사를 하신 후 성찬을 제정하실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누가가 예수께서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300여개 있습니다. 그런데 재림에 관한 예언을 제외하고는 모든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예언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예언하고 있지 않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죽으면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않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지옥에는 한 명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30123007000’의 비전을 갖고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49-50절을 읽습니다.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지라.” 무리들과 함께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입을 맞추자 제자들은 곧 예수께서 체포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라고 말하는 동시에 제자 중의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의 오른쪽 귀를 칼로 베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그 중의 한 사람’을 시몬 베드로라고 증언합니다(요 18:10). 한마디로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체포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행동하면서 나름대로 그들의 용맹스러움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들이 가룟 유다를 앞세워 예수님을 체포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칼을 휘두르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주님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칼을 휘둘러서 말고의 귀를 베어버린 것도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님의 뜻을 거역할 때가 많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해도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열심히 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이 책망을 받는 날이 아니라 칭찬을 받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1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그런데 ‘이것까지 참으라’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참으라’는 단어를 해석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까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첫째, 참지 못할 이유가 있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칼을 휘두를 이유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체포를 당하시는 상황인데 가만히 있을 제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런 이유가 있어도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것까지 참으라’는 말은 참지 못할 이유가 있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상대방을 향하여 미움의 칼을 들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우리를 공격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우리에게 손상을 입혔기 때문에 등등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가 있을지라도 참아야 합니다. 참을 수 없는 이유가 많았지만 참았기 때문에 진정한 승리자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링컨에게 정적이 많았지만 그를 가장 험악하게 대적한 자는 ‘에드윈 스탠톤’입니다. 그는 링컨이 무슨 정책을 내 놓던지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고 심지어 그를 ‘저질광대’라고 공격했습니다. 하루는 ‘스탠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탐험가 차일루가 아프리카로 고릴라를 잡으려고 간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미조리 스프링필드에서 아주 쉽게 고릴라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스탠톤이 말한 ‘고릴라’란 링컨을 가리킨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얼굴에 털이 많다고 ‘오리지날 고릴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이렇게 혹독히 중상과 비방을 당했지만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링컨이 대통령이 된 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오히려 정적인 스탠톤을 국방장관의 자리에 임명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링컨에게 취소할 것을 종용하였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이 시대에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사람은 그 사람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가 말한 대로 스탠톤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링컨이 워싱톤의 워너극장에서 괴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을 때 모두가 총성에 겁을 먹고 피하였지만 스탠톤은 맨 먼저 쓰러진 링컨에게로 뛰어 갔고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누워 있는 이 분은 인류가 소유할 수 있는 최고의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 NIV는 “이것까지 참으라”를 ‘No more of thi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를 직역하면 ‘이것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신 것이 언제였습니까? 베드로가 말고의 한쪽 귀를 잘랐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것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은 오른쪽 귀를 짜른 것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말고의 왼쪽 귀까지 잘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의 목을 베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현재 범하는 죄 그 이상은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죄를 멈추고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냥 버려두라는 말입니다. “이것까지 참으라”를 헬라어 성경은 ‘에아테 헤오스 투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이들을 내버려 두라’는 뜻입니다. 즉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하는 것을 막지 말고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이 체포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에 예수께서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들에게 붙잡혀 죽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수없이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을 막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리고 억울하게 옥살이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일을 통하여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실 것을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시고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떨어진 귀를 수술도 하지 않고 손을 만지기만 했는데 붙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낫게 해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떨어진 귀를 수술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붙게 해 줄 자가 어디 있습니까?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제자들의 믿음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전에 행동하실 때와는 달라지셨기 때문입니다. 이전 같으시면 엄청난 능력을 행하실 터인데 곧 체포될 자처럼 가만히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것을 깨우치게 하시기 위해 이런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어디에 힘을 사용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시고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데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우리가 힘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힘을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서 많은 사람들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끝까지 사랑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는 지금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자, 즉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원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낫게 해주신 것은 원수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자신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2-5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52-53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계속해서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치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것은 그들의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악한 일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악한 일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안다면 때를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순순히 그들의 체포에 응한 것은 그 때를 분별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어느 때입니까? 지금은 곧 주님이 재림하실 때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때를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은 악한 때이기 때문에 빛을 보아야 소망이 있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지금은 말세 중에서도 마지막 때인 줄을 알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소망을 두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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