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준비과정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는다 눅22:7-13 20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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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 준비과정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는다 눅22:7-13 2018.5.62018-12-03T23:47:0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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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신 장소를 어떻게 마련하셨는지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이 다가오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보내시며 유월절을 준비하여 먹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디에 준비하길 원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너희가 도시에 들어가면 물 항아리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날텐데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선생님께서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냐고 물으면 정돈된 큰 방을 보여 줄 것이니 거기서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대로 순종했더니 유월절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유월절을 지킬 장소를 구하는 과정에서 제자들과 나눈 내용이 매우 독특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답하는 식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째로, 유월절 장소가 준비된 과정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에 세 번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첫 번째 절기는 유월절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기 전날 밤 좌우인방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서 장자가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절기는 칠칠절이라고 하는데 그날에 밀과 보리를 처음으로 추수하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절기는 ‘수장절’로서 추수를 모두 끝내고 저장한 뒤에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로서 일주일동안 초막을 짓고 그 속에서 기거하면서 광야의 장막생활을 회고하였기 때문에 ‘초막절’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나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세 절기를 모두 지킬 수 있었지만 각국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스라엘백성들이 세 절기를 지키기 힘들어서 일 년에 한 번 유월절만이라도 지키려고 모여들었기 때문에 당시 예루살렘은 절기를 지키려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5만 명 정도였는데, 유월절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모여들어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럽게 예수님과 12제자들이 함께 유월절을 지킬만한 넓은 장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제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유월절 장소를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성경을 통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사역의 순서를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첫 조상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들을 만드셨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신 후였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먼저 만드신 후 세상의 모든 만물을 만드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어 곧 죽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40년간 농사를 짓지 않았는데 어떻게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시지 않았다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었을 것입니다. 또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웠기 때문에 밤낮으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광야에서 추위와 더위로 죽는 자들이 속출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생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앞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삶을 위해서만 준비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 이후를 위해서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을병에 걸려 3개월밖에 살지 못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목사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하여 자기가 죽으면 장례식을 어떻게 치러야 할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은 죽었고 드레스가 입혀진 채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왼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포크가 하나 쥐여져 있었습니다. 포크와 장례식! 장례식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왜 그녀의 오른손에 포크가 쥐여져있는지를 궁금해 했습니다. 드디어 목사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왜 이 집사님이 포크를 쥐고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을 던진 후 그녀가 죽기 전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다녔고 교우들과 많은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식사를 마쳤는데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더 좋은 것이 안 나왔거든요. 포크를 계속 들고 있으세요. 부드러운 초콜릿 케이크나 사과 파이 같은 것이 있어요.’ 그날 마지막에 나온 요리는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포크를 쥐고 잠드는 것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준비하신 최고의 것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야 맛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천국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 2:9)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이별, 고통, 죽음 등과 같은 쓴맛을 피할 수 없지만 하늘나라는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천국에 입성하신 믿음의 선배들은 이 맛을 영원히 만끽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축복이 장차 천국에 준비되어 있음을 믿고 늘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준비해놓으신 것을 제자들에게 직접 찾도록 하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이미 준비해놓으신 곳으로 가셔서 유월절을 지키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고 제자들을 보내서 유월절 장소를 직접 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할까요? 주님께서 준비하신 것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은 순종을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을지라도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주님의 명령은 우리의 이성이나 경험과 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10-12절을 읽습니다.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그가 자리를 마련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준비하라 하시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쉬웠을까요? 예수께서 성내로 가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어떻게 물 한 동이를 이고 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또 그를 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 장소를 요구하면 이미 마련한 큰 다락방을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는 사람으로 가득차서 숙소를 구할 수도 없었고, 사전 예약도 없이 13명이나 되는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즉석에서 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따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서 즉시 나가서 집 주인을 만나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3절). 우리가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이레’라는 단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때는 100세였습니다. 자그마치 25년이나 기다려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얼마나 애지중지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번제란 산 짐승을 각을 떠서 하나님께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어떻게 100세에 얻은 아들을 자신이 직접 죽여서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누가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아들을 결박하여 칼로 아들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12).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눈을 들어 살펴보니 수풀에 한 숫양의 뿔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고 그 사건으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의 ‘여호와 이레’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할 때에 ‘여호와 이레’를 맛볼 수 있었던 것처럼 주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에 주께서 준비하신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즉시 순종하여 유월절을 준비한 것을 보면서 주님께 즉시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순종만이 살 길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말해도 순종이 없으면 거짓입니다.

    셋째로, 집 주인이 제자들의 말을 듣고 즉시 큰 다락방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주경학자들은 다락방의 주인을 마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신약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가는 12제자 중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가가 제자들의 말을 듣고서 유월절을 지킬 수 있는 큰 다락방을 내어놓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께서 자신의 주인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주인이신 것을 제대로 모르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주님께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실 때에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시험에 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물질과 시간과 몸의 진짜 주인이신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신 구원자만 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분만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신 주인이십니다. 오늘이라도 주께서 부르시면 아무리 할 일이 많고 가진 것이 많아도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마가는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자신의 다락방을 사용하시겠다고 하자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가 단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았기 때문에 큰 다락방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가가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미리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문등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인이 옥합을 깨어 자신의 머리에 부은 사건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 옥합을 깬 일을 두고 가룟 유다는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지 않고 허비했다고 그녀를 호되게 비판했지만 예수께서는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그녀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억하게 하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베다니 여인을 칭찬하셨습니까? 그녀가 옥합을 깨어 자신의 머리에 부은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준비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더처치를 사용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평신도들이 전도하고 양육하여 제자를 삼게 할 수 있을까를 수십 년 간 고민하고 이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민에 답을 얻고 이를 시스템화 한 것이 바로 ‘D3전도중심제자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마가가 주님께 드린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큰 다락방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집을 빌려서 주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다락방을 주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내어드렸습니다. 즉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드렸습니다. 주님께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을 오직 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몸이든 주님께서 원하시면 드려야 합니다. 주님께 쓰임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마가가 다락방을 주님께 내어 드리지 않았다면 그의 다락방은 성경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께 드리자 그곳이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신약시대 최초의 교회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을 만나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여호와 이레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짓밟고 즉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주인이시기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즉시 드려야 합니다. 잠시의 순종을 통하여 영원한 영광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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